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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역사의 삯바느질 … 시대가 변해도 고달픔은 여전”

발행 2016년 06월 30일

종합취재 , appnews@apparelnews.co.kr

글=노완영 영진상사 대표

 

“홀어머니의 삯바느질 수입으로는 아무래도 나는 살아날 길이 없을 듯하다.”(김승옥의 환상수첩) “대하소설 토지 집필이 실패하면 하나 있는 재봉틀을 믿고 삯바느질을 하겠다.”(소설가 박경리)


삯바느질에 대한 애환과 주제는 무수히 많다. 그런데 이 삯바느질(봉제업) 기능공은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최하위 계층으로 최저 임금과 최장 근무시간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70년대 봉제 공장 작업 현장은 참혹했다‘. 라인은 계속 돌아가야 한다’는 원칙은 무시무시했고 자기가 맡은 공정에서 일이 밀리지 않도록 흐름을 유지해야 했다. 그렇다고 허투루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1인치 열두 땀’이라고 바느질 수를 챙길 정도로 품질 관리에 엄격했고, 제품 하나를 끝내면 공장 안 전광판의 버튼을 눌렀다. 자기가 처리한 개수를 세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처리한 일감은 한 시간에 150개, 많게는 250개에 이르기도 했다. 휴식 시간도 없이 하루 종일 컨베이어 벨트에 매달려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불과 반세기 전 우리 봉제 공장의 모습이다.


패션 기업을 다닌다는 요즘 젊은 실무자들도 이런 과거를 아는 이가 많지 않다. 지금이야 인건비가 싼 해외 공장들도 첨단 설비와 깨끗한 작업 환경으로 모두 바뀌었지만 우리의 과거는 그렇지 못했다. 지금도 사정이 크게 나아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삯바느질 일감이 부족해 문 닫기 일쑤이고 그나마 남아 있는 기능공들의 나이도 벌써 60줄에 접어들고 있다. 100년 뒤에는 종적을 감추고 사라질 지도 모르는 게 바로 봉제업의 현실이다.

 

이제 이들에게 진정 ‘저녁이 있는 삶’을 만들어 줘야 한다

 

30년 전 제일모직(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근무 당시 선진 봉제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기술 연수를 떠난 적이 있다.


이탈리아 봉제 공장 동료의 집에 초대 받아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면서 느낀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때 본 문화적 충격은 지금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오후 다섯 시, 온 가족이 집에 모여 각자 식사 준비를 하며 두어 시간 동안 하루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 하고, 먹는 것을 보고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문화에 놀랐다.


당시 이탈리아 봉제 산업은 가까운 영국과 프랑스 등이 밀려들며 위기를 맞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 삶은 언제나 여유로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바로 그런 모습이 100년 넘게 이어져 온 이탈리아 선진 봉제 산업의 근간인 듯하다.


지금이야 인건비가 싼 헝가리나 터키 등 동유럽 국가로 일감이 많이 넘어 갔지만 여전히 이탈리아 봉제업은 가치 있는 산업으로 꼽힌다. 그 당시 우리의 삯바느질 현실은 어땠을까.


기능공들은 날이 저물면 제사처리(실밥 제거) 일감을 잔뜩 안고 기숙사로 퇴근해야 했다. 그나마 규모가 큰 제일모직이 그 정도였으니 작은 회사의 노동 환경이 어땠을지는 대략 짐작할 수 있다.


12시간 근무도 모자라 남은 일을 싸안고 기숙사 방에 들어가던 날들, 수출 선적일을 맞추느라 몇 날 며칠 밤을 새웠던 기억은 지금 생각 하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을 해 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과연 이 삯바느질을 어떻게 경영해야
30년 전 유럽에서 보았던 ‘저녁 있는 삶’이 가능해질까

 

지금 우리는 고실업, 저성장, 수출 감소, 저소득, 인구감소가‘뉴 노멀’이 되어가는 시대 속에 있다.


상상하지 못하던 새로운 일들이 표준이 되는 이런 시대에 삯바느질로 살아가려면 대충 견디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환경을 봐도 체질 자체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임을 짐작할 수 있다.


과거 우리의 봉제 산업은 일을 많이 하면 할수록 생산성이 늘었다. 하지만 많은 공정이 기계화되고 서비스 산업이라고 하는 3차 산업이 주를 이루고 있는 현대에도 아직까지 작업량을 늘려 효율과 생산성이 올라간다고 생각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국내에 몇 남지 않았지만 아직도 영세한 규모의 공장은 법을 무시하며 불법 파견 노동자를 쓰는 게 일상이다. 시간 외 노동을 비롯해 근로기준법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 노동자에게‘일만 하는 기계’로 살라고 강요하는 건 시대착오임이 분명하다.


국내 봉제업이 외국과 달리 열악함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근무 문화에 있다.


통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국내 근로자들의 연간 근무시간은 OECD 회원국 중 멕시코 다음으로 길다. 터무니없는 긴 시간 동안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봉제업은 최장 근무 업종에 꼽힌다. 최소 비용, 최대 효과를 추구하는 기업 논리부터 바꿔야 한다.


잔업과 연장으로 생산량에 매달려 온 국내 봉제 공장 대부분이 정확한 생산 데이터를 구축하고 있지 못 하다.


주문이 들어오는 대로 무턱대고 받아 납기에 쫒기다 보니 야근과 휴일 근무가 반복되고 늘어나는 잔업수당에 허리가 휘고 기능공들의 피로도는 높아지면서 결국 문을 닫는 결과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정확한 데이터를 산출하고 정확한 수량을 주문 받아 시간 내 납품 하는 시스템 산업으로 바뀌지 않으면 더 이상 봉제업의 미래는 없다.


일을 주는 기업도 연간 수량을 정확하게 나눠 봉제 공장이 일년내내 일이 끊어지지 않도록 배려하며 서로 윈윈 해야 한다.


필자도 2년 전부터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의 새로운 체계로 만들었다. 휴일과 연장 근무를 없애고 목표 달성을 하면 급여 외 성과급 지급을 지켜나가고 있다. 과거 우리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뚝심으로 봉제업을 키워왔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삯바느질을 해도 일이 많은 이탈리아와 일이 적은 국내 현실을 더 냉정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이탈리아 어디선가 지금도 미싱을 돌리고 있을 32년 봉제 기능공 안드레아, 그는 지금도 그 세월을 인정받으며 여유가 넘치는 삶을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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