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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인터뷰 - 마리오 홍성열 회장
“열정과 집념 갖고 100년 기업 만들어 봐야죠”

발행 2013년 01월 14일

오경천기자 , okc@apparelnews.co.kr

신년인터뷰 - 마리오 홍성열 회장

“열정과 집념 갖고 100년 기업 만들어 봐야죠”

 

 
홍성열 회장은 인터뷰 내내 ‘한 우물 파야 된다’, ‘목숨 걸고 했다’는 표현을 자주 썼다. 열정과 집념이 느껴졌다. 사업을 시작할 무렵 낚시를 취미로 했다는 그는 “낚시를 통해 타이밍과 인내와 끈기, 성실을 배웠다”며 “열정과 집념으로 마리오를 100년 기업으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모지웅 기자 mjwphoto@apparelnews.co.kr
 

 

마리오아울렛은 亞 최대 도심형 아울렛 타운

‘까르뜨니트’ 대한민국 니트 자존심 지킬 것

훤칠한 외모에 깔끔한 수트 차림. 행커치프와 클래식한 시계로 포인트. 트레이드마크인 백발. 2013년 계사년(癸巳年)이 밝은지 하루가 지난 2일 가산동 마리오 본사에서 만난 홍성열 마리오 회장(58)의 모습은 그랬다. 패션과 유통 사업을 겸하고 있는 오너답게 홍 회장의 겉모습은 클래식하면서도 패셔너블했다. 여기에 당당하고 호탕한 말투에서는 자신감까지 넘쳐보였다.

고가 니트 시장 점유율 50%, 국내를 넘어 아시아 최대 도심형 아울렛 타운 건설. 패션과 유통 분야에서 성공신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 홍성열 회장은 인터뷰 내내 ‘한 우물 파야 된다’, ‘목숨 걸고 했다’는 표현을 자주 썼다. 강한 집념이 느껴졌다. 지금으로부터 33년 전인 스물다섯 살의 젊은 시절부터 홍 회장의 집념은 남달랐다. 그가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1980년 그의 사무실은 ‘상도낚시’라는 낚시방 근처에 있었는데 그는 하루 업무를 마치고 나면 휴식 대신 매일같이 그 곳을 찾았다고 했다.

“시조회부터 납회 때까지 장마철 2번을 제외하고 하루도 안 빠진 해도 있었어요. 낚시가 너무 재미있어서 매일같이 낚시방을 찾았죠. 남자 성인 2명에서도 들기 힘들 정도의 물고기를 잡은 날도 있었죠. 아마 상도낚시 역사상 가장 많이 잡은 기록일 걸요.”(웃음)

낚시를 하다 물살에 떠내려갈 뻔한 적도 있다. 폭풍우가 몰아치던 여름 제천 백골낚시터에서는 색동피라미 잡는 맛을 놓을 수가 없어 좌대에 물이 끝까지 차오를 때까지 낚싯대를 놓지 않았다. 또 얼음이 풀리고 난 초봄 물고기들이 나오지를 않아 바지장화를 사 입고 저수지를 직접 들어가 낚시를 했다. 97년에는 아예 팔당저수지 근처에 집을 짓고 낚시를 즐겼고, 고향 당진에는 양어장을 2개나 만들어 놨다고 한다.

“무슨 일이든 열정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열정을 가지고 하다보면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죠. 일이든 노는 것이든. 저는 낚시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사업하는데 있어 중요한 지침서로도 삼고 있습니다.”

-낚시를 통해 무엇을 배우셨습니까.

“낚시든 사업이든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물고기들이 밥을 먹는 시간에 낚시를 해야 많은 양의 물고기를 잡을 수 있듯이 사업도 기회가 왔을 때 확실하게 잡아야 하죠. 또 인내와 끈기, 성실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물고기를 잡으려면 지속적으로 밥을 갈아주는 등 세심한 관찰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또 물고기를 잘 잡기 위해서는 그 저수지에 살고 있는 물고기들이 어떤 먹이를 좋아하는지를 파악하고 그 입맛에 맞는 미끼를 줘야 합니다. 사업도 마찬가지에요. 소비자들이 어떤 상품을 원하는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그에 맞는 상품을 공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그의 집념은 사업으로 이어졌다.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형제들에게 빌린 단돈 200만원으로 직원 4명과 대방동 지하에서 사업을 시작해 국내 니트 분야의 리더가 되기까지 그는 오로지 ‘니트로 성공하겠다는’ 집념과 배짱 하나로 버텼다고 했다.

“니트 분야에서 비즈니스를 하다가 창업을 하게 됐죠. 그 당시 저가 니트 시장이 활성화를 이뤘는데 저는 고가 전략으로 차별화를 했죠. 주로 일본으로 수출했어요. 처음에는 OEM(주문자상표부착)으로 했는데 나중에는 우리나라 상표를 부착하고 싶어졌어요. 그래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 다음부터 일본 바이어들에게 배짱부리기 시작했어요. 우리 상표 아니면 안 된다고.”

니트웨어 ‘까르뜨니트’의 시작이었다. 1985년. 홍 회장은 ‘까르뜨니트’를 ‘미쏘니’ 같은 세계적인 니트 브랜드로 키우고 싶었고, 최고 품질의 니트웨어를 만들기 위해 최고의 실을 밤낮으로 찾아다녔다. 소비자들에게 최고의 입맛 나는 니트를 제공하기 위해 열정을 아끼지 않았다.

“모방회사라는 모방회사들은 다 쫓아다닌 것 같아요. 정릉 꼭대기에 경일모방이라고 있었는데 매일 같이 쫓아가서 같이 개발도 하고 그랬죠. 최고 니트 만들어보겠다는 생각하나로. 일본 바이어들에게는 반응이 폭발적이었어요. 나중에는 그 더운 나라 대만까지도 수출됐는걸요.” 품질에 대한 남다른 집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 때 국내 고가 니트시장의 50%를 점유하기도 했다.

아울렛 사업에서도 그의 집념은 이어졌다. 지난 2001년 1관 오픈 이후 2004년 2관 오픈, 그리고 지난해 3관 오픈까지. 올해는 1관을 증축한다.

-지금의 마리오아울렛 명성이라면 타 지역 출점도 가능하실 것 같은데, 가산동에 집중하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최대 아울렛 타운 한 번 만들어봐야죠. 이번 증축공사로 마리오아울렛은 영업면적 4만평을 갖추게 됩니다. 이 정도면 국내를 넘어 아시아 최대 규모의 도심형 아울렛 타운 아니겠습니까.”

-‘마리오아울렛’과 ‘까르뜨니트’의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습니까.

“‘마리오아울렛’은 패션 외에도 뷰티, F&B 등 다양한 콘텐츠를 입점시켜 고객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최적의 아울렛타운으로 구성할 계획입니다. ‘까르뜨니트’는 소재와 디자인 차별화를 통해 지속 가능한 브랜드로 육성할 계획이에요. 옛 명성 되찾고 대한민국의 니트 자존심 지켜나가야죠.”

패션사업 33년, 유통사업 12년, 가산동 인생 25년. 한 우물 100년 파기를 향한 그의 도전은 계속된다.

“100년 기업 만들어 봐야죠. 강한 기업, 유명한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 마리오의 미래이자 비전이에요. 벌써 33년이나 됐어요. 앞으로 50년만 잘 유지해나간다면 역사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는 기업이 될 거에요. 100년 역사를 가진 기업이라면 온 국민이 사랑해주지 않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패션과 유통을 열심히 파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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