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마당 - 박일왕

패션과 섬유 산업은 한 몸이다

섬유산업은 크게 원사를 생산하는 업스트림과 제직, 편직, 염색을 담당하는 미들스트림, 그리고 봉제 및 브랜드를 담당하는 다운스트림으로 나뉜다.
이를 다시 두 가지로 분류하게 되면, 섬유 산업과 패션 산업으로 나뉘는데, 한 때 일본에서는 패션 산업을 섬유 산업의 2차 산업으로 분류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생산 분야보다는 유통 분야의 마진이 대폭 증가하면서 섬유 산업 전체에서 패션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짐에 따라, 지금은 섬유 산업과 패션 산업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국내 섬유 산업은 1980년 이전까지 해외에서 원사를 수입, 편직 및 제직에 머물렀지만, 1980년 이후 화섬 생산 기반이 형성되면서 섬유 강국의 기틀을 마련했다.
패션 산업 또한 80년대 자유화와 민주화, 그리고 97년 IMF 이후 복장 자율화를 거치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지금 국내의 섬유와 패션은 상당한 괴리감을 가지고 있다. 패션 산업은 80년과 비교하면 비약적인 성장을 한 반면, 섬유 산업은 IMF 때 환차익으로 큰 이익을 본 이후 성장세가 지지부진하다. 이전 섬유 산업은 해외 수출에 크게 의존하였으나, 내수 시장의 비약적인 성장과 함께 현재는 내수 의존 비중이 커졌다.
문제는 현재의 섬유 산업과 패션 산업이 내수시장에서의 이해관계가 크게 상충되는 모양새를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일부 브랜드에 국한된 이야기겠지만, 국내 내수 시장은 원가 구조 개편, 혹은 원가 절감, 가격경쟁력 강화라는 미명하에, 국내 소재 업체에 원가를 오픈시키며, 바이어가 정한 마진 외에는 인정하지 않는 풍토가 조성되고 있다.
공인된 시험기관, 또는 객관적인 기준에 합격한다 하더라도 기술지도 담당자, 혹은 생산 담당자의 말 한마디에 합격과 불합격이 결정 되며, 소재가 내포한 위험성을 아무리 사전에 설명했다 하더라도 제품에서 발생한 각종 클레임을 소재 업체는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게 현실이다.
또 내수시장의 결제 시스템은 법정 고시율을 초과한 장기간의 여신, 혹은 영세한 프로모션의 장기 결제 여신으로, 불합리한 결제구조의 최하부 층에 놓여 있다.
시각을 잠시 원점으로 돌려보자. 섬유산업이 없는 패션산업이 존재할 수 있을까. 패션산업이 없는 섬유산업은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할까.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 3대 패션쇼는 밀라노, 파리, 뉴욕컬렉션이다. 뉴욕의 경우, 섬유산업의 기반은 약하지만, 세계 제일의 소비 시장을 가지고 있기에 패션으로 인지도가 높다.
밀라노와 파리는 패션 뿐 아니라, 섬유 강국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이미 오래전부터 섬유 대국의 자리를 포기하고 섬유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며 오랫동안 쌓은 노하우를 이용해 섬유와 패션의 융합을 시도하고 있다.
그 결과 중 하나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니클로’라는 브랜드가 탄생했다. ‘유니클로’의 성공 배경에는 도레이(Toray)라고 하는 강력한 협력 업체가 존재하기에 가능했다. 커다란 섬유 소비 시장을 가지고 있지 않는 한, 패션과 섬유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동반자적인 협력 관계를 구축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무언(無言)의 교훈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직 필자에게 섬유강국 코리아, 패션강국 코리아라는 말은 낯설기만 하다. 멀지 않은 미래에 섬유패션 강국 코리아라는 말에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에스비텍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