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창 - 일류 기술의 세계화를 가로막는 장벽

발행 2020년 03월 09일

박해영기자 , envy007@apparelnews.co.kr

박해영 기자

 

[어패럴뉴스 박해영 기자] 지난달 열린 프랑스 파리 섬유 소재 전시회 프레미에르 비죵에 참가한 국내 천연 염색 전문 기업 비전랜드의 부스는 전시 기간 내내 해외 바이어들로 북적였다.

 

섬유 산업이 일으키는 환경오염은 염색 과정에서 50%, 나머지 제조 과정에서 50% 발생하는데, 비전랜드는 친환경 공법으로 그 50%의 환경오염 요인을 제거했다.

 

세계 최초로 비건 다잉, 보태니컬 다잉이라는 장르를 개척하고 대량 양산에까지 성공했다. 석류, 강황, 소나무껍질 등 천연 원료를 사용해 다양한 원단에 컬러를 입히고 디자인까지 할 수 있는 게 핵심 기술이다. 천연 염색부터 봉제, 트렌드, 디자인 개발까지 전 과정을 자체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기업인 셈이다.

 

패션 산업에서 ‘지속가능성’이 필수 조건이 되면서 원재료 확보전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비전랜드는 현재 나이키, H&M 등 글로벌 기업들과 거래중이며, 프레미에르 비죵 라스보드 대표도 비전랜드의 독보적인 기술력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전시장에서 만난 김기완 비전랜드 대표는 요즘 고민이 아주 많다고 토로했다. 본인 손으로 식물을 채집해 염료를 연구하고 개발한그는 대구와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에 천연 염색 공장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그동안 600억 원을 쏟아 부었고, 덕분에 2년 대량생산 시스템을 갖추는데 성공했다고 했다.

 

국내 유일의 천연염색 장인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고 하니 가격 경쟁력과 수요 부족, 즉 볼륨화의 벽에 부딪히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여전히 유럽, 미국, 일본 등 선진국 바이어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데, 최근 2년 사이 늘어나는 주문만큼 캐파를 소화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예전보다는 단가가 낮아 졌지만 아직도 업계 기준으로는 다소 높아 성에 차지 않는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자금 여력은 부족한데, 투자를 안 하자니 원천기술이 넘어갈까 불안하고, 중국에 따라 잡힐까 노심초사하는 날들의 연속이라고 했다. 원천기술을 지키기 위해서는 해외 기업으로부터 투자를 함부로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국내 기업에게 선뜻 손 내밀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최근 국내 투자 시장은 2000년대 초반 벤처 열풍 때처럼 훈풍이 불고 있다. 투자에 관련한 규제가 완화되고 다양한 채널을 통해 자금이 풀리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스타트업, 온라인, 신진 디자이너에 편중돼 있다. 투자 사업에 손을 뻗은 패션 중대형사들의 타깃도 이와 유사하다.

 

그래서 실제 패션 산업의 생산, 소재 등 언더스트림 관련 투자 사례는 극히 드물다. 지속가능 소재 스타트업 기업인 아코플래닝이 사실상 거의 유일하다. 소재 기업의 보수적이고 폐쇄적이고 성향과 외부 투자를 꺼려하는 경향도 물론 저해 요인 중 하나다. 기술 유출이나 카피에 너무 예민한 나머지 국내 업체의 방문을 꺼리고 100% 소유를 유지하려는 업계 특성이다.

 

하지만 앞으로 패션 산업의 디자인 변별력은 더 떨어지게 되어 있다. 결국 승부처는 소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일류 기술력과 지속가능성, 미래 성장성까지 갖춘 소재, 소싱 기업에 대한 투자야 말로 지속가능하다.

 

정부 차원에서도 일류 기술을 선별해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 저작권자 ⓒ 어패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면 뉴스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