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창] 패션 대형사들, 이제 ‘브랜드 유통사’가 되기로 했나

발행 2021년 08월 02일

조은혜기자 , ceh@apparelnews.co.kr

출처=게티이미지

 

수입 패션 시장이 활기를 띄었던 2000년대 초, 국내 업체들의 브랜드 도입 경쟁이 점입가경으로 치닫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끼리의 경쟁은 해외 브랜드 몸값을 올려놓는 결과로 이어졌고, 한국은 글로벌 ‘봉’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그때도 지금처럼, 재벌 대기업의 패션 계열사들이 수입 브랜드 도입 경쟁의 선봉에 있었다. 현재는 수입 전문 업체들은 거의 사라지고, 내노라하는 수입 브랜드 대부분이 3-4개의 패션 대형사 지붕 아래에 있다.

 

팬데믹이 터지자, 명품과 수입 패션은 다시 금값이 되었다.

 

천재지변이든, 팬데믹이든 대재앙은 본래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무엇이 터져도 상위 몇 퍼센트의 부자들은 힘들게 없고, 오히려 경제 질서가 재편되며 부를 증식할 기회를 잡는다.

 

반면 중산층 이하는 그 반대의 상황에 놓인다. 그래서 외환위기 때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부자들은 부를 증식했고, 유동성은 확장됐으며, 소수의 그들에 의해 유지되는 명품과 수입 시장은 쑥쑥 자라났다.

 

그러자, 그들 덕에 먹고 사는 백화점은 아주 당연히도, 유일하게 성장하는 이 ‘종목’을 키우기에 올인하고 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분주해진 곳이 패션 대형사들이다. 최근 만난 한 대기업 관계자는 “비상식적인 인력 유출과 상도의를 벗어난 브랜드 빼내기가 심해졌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얘기인즉, 몇 달 전 A사 수입 편집숍 CD가 다른 대기업인 B사의 임원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주력 MD는 물론 팀원들을 빼간데 이어 공들여 키워온 해외 브랜드까지 손을 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좁디좁은 패션 업계에서 사람들은 돌고 돌지만, 그마나 일정 기간을 두고 직을 옮기는 정도의 예의는 지켜왔다. 그리고 자기가 몸담았던 회사의 영업 전략 내지 기밀, 직원, 거래처는 손대지 않는 상도의도 어느 정도는 지켜져 왔다. 그런데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그것도 이름만 대면 전 국민이 아는 대형사들이 말이다.

 

삼성, 한섬, 신세계, LF, 코오롱 등 대기업들은 수입브랜드 매출 비중이 전체의 1/3에서 절반으로 올랐다. 이들이 보유한 수입 브랜드를 인큐베이팅하는 편집숍은 보다 많은 브랜드를 확보해야 하는데 작년 팬데믹 이후 신규 발굴이 쉽지 않다. 그래서 단독 전개를 염두에 두고 웬만큼 키워놓은 브랜드를 빼가는 일은 그 기업의 입장에서는 ‘천인공노’할 일이다.

 

인력유출도 마찬가지다. 해외사업 특성상 전문 인력은 컴팩트한데, 빠른 퍼포먼스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이 크다. 그래서 지금 상도를 따질 겨를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큰 본질적인 이유가 있다.

 

대형사들이 수입 사업을 키우는 사이, 남성복, TD 등 대형사를 상징하던 브랜드 사업은 동력을 잃고 기울어, 이제 시장 주도력조차 상실한 상태다. 사실상 성장 동력을 잃은 업체들에게 수입 시장의 활황은 놓칠 수 없는 기회다.

 

본디 패션은 전문업체가 대기업을 이겨 먹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업종 중 하나라고 얘기되어 왔지만, 자본도 있고, 인프라도 있는 대형사들이 변화되어 가는 시장에 대한 별 대안이 없어, 브랜드 유통에 목을 매는 현실은 씁쓸하다. 

 

경제학에서 기업의 최종 목표는 이윤 창출이라고 했던가. 제조 대신 유통 사업을 키우는 것이 이윤을 내기 위한 대안이라면 그것 역시 기업 활동이니 무작정 비판만 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너도나도 어려운 시기, 덩치에 맞지 않는 볼 성 사나운 싸움은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조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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