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 ‘코로나’가 일깨워준 열등감으로부터의 해방, 이제 우리를 긍정하자

발행 2020년 05월 15일

박선희기자 , sunh@apparelnews.co.kr

 

박선희 편집국장
박선희 편집국장

 

전 세계 국가에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똑같은 시험 문제가 주어지자, 서방 국가들에 대한 환상은 보란 듯이 박살이 났다. 동시에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도 정신적으로는 벗어나지 못했던 우리 안의 열등의식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유명 저서 ‘총, 균, 쇠’로 98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문화인류학자 제레미 다이아몬드 교수는 한국판 프롤로그에 “한글은 현존하는 언어 중 가장 과학적이고 아름다운 언어다. 한글로 책을 출간하게 되어 기쁘다”고 썼다. 그는 6개 국어를 구사하는 언어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총, 균, 쇠’에서 일본의 선조가 한국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지금의 유럽, 서양이 강대국이 된 유일한 이유는 그들이 원주민들에게서 빼앗은 땅이 ‘아주 우연히’ 혹은 ‘운 좋게’ 지리적, 환경적으로 매우 비옥한 곳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모든 인종적 우월주의는 정복자들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 실상은 환경적 우연의 산물일 뿐이라는 얘기다.


이 책이 훌륭한 이유는 인류 문명의 기원과 역사를 자료와 지식, 상상력을 토대로 검증해 나가는 과정에 있다. 더불어 현대 사회에 존재하는 불평등에 대한 물음과 통찰을 던진다.

 

잘나고 못난 개인들의 역사 역시 마찬가지다. 하필 애매한 한국에 태어난 것, 부잣집이 아닌 그저 그런 집에 태어난 것, 머리가 좋거나 나쁜 것, 외모가 탁월하거나 그저 평범한 것 대부분은 ‘우연’에 의한 결과다.


그래서 더 많이 가진 국가, 혹은 개인은 덜 가진 국가, 혹은 개인에게 공동체 의식을 느껴야 하며, 불평등의 구조를 인식하고, 책임에 동참해야 한다. 그런 인문학적 통찰이 없다면, 인간세계는 그냥 ‘동물의 왕국’이다. 강자가 약자를 짓밟는 약육강식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통해 태어나서부터 주어진 열등감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 우리는 개발도상국이고, 저들은 선진국이니 저들을 흉내 내며 따라가야 한다는 열등의식.


지금 생각해보면 그 열등감은 평생 나를 옥죄어 왔고 해외에서 느꼈던 가치관의 혼란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의외로(?) 지저분하고 사람들은 불친절한 프랑스 파리를 목격한 후 뭔가 불편한 심정이면서도 그것을 그들의 자유분방함, 자신감이라 여겼다.


끝도 안 보이는 규모와 황금색으로 치장한 북경 자금성에 대한 솔직한 느낌은 고작 ‘사이즈’로 으스대는 유치함과 천박함이었다. 당시 나는 경복궁과 덕수궁의 수려함을 새삼 깨달으면서도 ‘내가 중국 역사를 몰라서 그렇지, 뭔가 있을 거야’하며 내 느낌을 유보시켰다.


이탈리아 출장길은 가히 클라이맥스였다. 일행들의 캐리어가 공항 수하물 센터에서 찢겨져 도둑질을 당하고, 대형 전시장의 프레스룸에 인터넷이 터지지 않는 괴이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가치관의 혼란은 최고조에 달했다. 선진국은 어째서 선진국인 걸까.


확진자와 사망자가 급증하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이 햇빛을 즐길 권리가 있어요”라며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거리를 활보하는 이탈리아 할머니를 코로나 사태 이전 뉴스에서 봤다면 “그래 저 나라는 개인의 자유가 존중받는 진정한 선진 민주국가야”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공동체에 대한 배려와 연대의식이 없는 개인주의는 그냥 ‘무지’일 뿐인데 말이다.


전 세계 국가에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똑같은 시험 문제가 주어지자, 서방 국가들에 대한 환상은 보란 듯이 박살이 났다. 동시에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도 정신적으로는 벗어나지 못했던 우리 안의 열등의식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미국의 패션 브랜드가 세계를 장악해 온 배경 중에는 분명 그들의 경제력과 문화적 우월성에 대한 동경이 있다. 패션은 세련된 외양의 완성이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환경적 토대가 좀 마련된 것은 아닐까. 물론 그들의 패션 산업에 깃든 역사와 노하우는 부정할 수 없는 팩트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상품과 경향이 세계 패션 산업을 작동시키는 매카니즘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들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제 우리 자신을, 우리의 스토리를, 우리만의 방식을 ‘긍정’해도 될 것 같다는 얘기다. 적어도 그들만의 리그를 구경하고 흉내 내는 지위를 벗어나 ‘우리의 전술’로 함께 뛰어 볼 정도는 된 것이 아닐까.


요즘 몇몇 업체들의 행보는 이런 기대감을 키워준다. 흥하자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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