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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훈] 새로운 럭셔리

발행 2020년 04월 23일

어패럴뉴스기자 , webmaster@apparelnews.co.kr

남훈의 ‘패션과 컬처’

 

남훈 알란컴퍼니 대표

 

예전 금융 위기에는 급격한 양극화 흐름으로 오히려 고가 브랜드들이 약진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그런 단순한 예측에 의존할 수 없다. 과거에서 답을 구하던 방식을 넘어 상상력을 가지고 미래를 판단해야 한다.

 

이번 코로나 사태 이전에 메르스라는, 중동과 한국에서만 심각했던 역병이 있었다.

 

낙타를 가까이하지 말고, 낙타 고기를 먹지 말라는 게 정부의 방역 지침이었던, 참 블랙 코미디같은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 경험으로부터 많은 걸 배운 우리는 지금 전 지구를 위협하는 전염병에 맞서는 파이오니어가 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도 많은 외국 친구들이 상황을 묻고, 코로나 관련 물품을 구할 수 있는지를 부탁하고 있다.

 

전 세계가 우리나라의 코로나 진단키트와 마스크를 원한다는 외신 보도는 이미 차고 넘친다. 약이나 패션에 관한 무언가를 구하기 위해 줄곧 해외를 쳐다보던 과거와는 정말 다른 세상이 아닌가.

 

우리는 늘 개발도상국이라는 피해의식 내지 자격지심 속에 살아왔다. 선진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은 어떤가라는 비교를 달고 살아왔다. 미국은 어떤 경제 시스템을, 유럽은 어떤 사회 보장 장치를, 일본은 어떤 질서를 가지고 있으며, 이탈리아의 패션은 얼마나 앞서 있는가를 상수로 생각했다.

 

그들에 비해 우리는 얼마나 낙후되었는가 아니면 선진국의 시스템을 어떻게 따라할 것인가를 국가적으로 그리고 시민 모두가 요구받으며 자란 것이다. 그런데 그 선진국들이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위기에 대응하는 모습은 대단히 후진적이었고, 국가 시스템이나 지도자 리더십은 충격적으로 부실하다.

 

국가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에 여러 나라에서 사재기가 발생하고, 일본의 의료 체계는 붕괴 직전이며, 세계 최강대국이 어딘가로 향하던 마스크를 해적질하는 뉴스를 시청한다. 의도치 않게도, 코로나가 동양과 서양 국가들의 민낯을 그려내면서 장기적으로 세계 질서를 바꿀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우리는 사재기도 없고, 마스크도 충분하며, 통행이 제한되거나, 환자를 치료할 병원이 부족한 상황이 아닌 나라에 살고 있다.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여러 나라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도시 자체가 봉쇄되고, 시민들이 집안에 격리되며, 결과적으로 경제가 마비되는 현상을 매일 목도한다. 실제 전쟁 이상의 상황인 것이다.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을진 모르겠으나, 우리나라 경제도 폭풍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자영업자는 물론이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패션업계도 큰 위기를 겪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이 소유에서 경험으로 근본적으로 바뀌는 과정을 겪고 있었다. 타인에게 과시하는 제품을 갈망하던 시절을 지나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경험을 지향하는 시대로 서서히 진화하고 있었다.

 

그래서 작년까지만 해도 여행과 음식, 인테리어와 미술에 대한 관심이 집중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패션 브랜드들이 그런 변화에 적응도 다하지 못한 어느 날, 불시에 다가온 코로나 바이러스는 이제 럭셔리의 개념까지도 변화시키고 있다.

 

나름의 장인 정신과 희소성으로 뭉친 최고급 제품들은 여전히 우리 앞에 가득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유행하는 지금, 사람들이 갈구하는 가치가 빅데이터 상 여행에서 ‘일상’으로 변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예전 금융 위기에는 급격한 양극화 흐름으로 오히려 고가 브랜드들이 약진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그런 단순한 예측에 의존할 수 없다. 과거에서 답을 구하던 방식을 넘어 상상력을 가지고 미래를 판단해야 한다.

 

이제 럭셔리는 가격에서 가치로 확실하게 진화할 것이다. 그 가치도 물질적인 것을 넘어 심리적인 단계까지 나갈지도 모르겠다.

 

불안한 뉴욕과 이탈리아에 비해 비교적 바이러스에 안전한 한국의 사례처럼, 이를테면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 신뢰할 수 있는 루트의 제품, 사회와 환경을 생각하는 배려, 약자를 대하는 태도,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편안한 일상을 우리는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게 새로운 럭셔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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