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 골프, 그 뜨거운 광풍의 기원에 대하여

발행 2022년 07월 04일

박선희기자 , sunh@apparelnews.co.kr

 

골프라는 스포츠에 대한 나의 시선은 늘 좀 삐딱했다. 광풍이라는 표현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지금의 사태를 해석하기에 앞서 나는 이 삐딱함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되짚어 봐야겠다.

 

“박 기자도 골프 좀 배워요. 내가 머리 올려 줄게.” 20년 전 들었던 이 말 때문이었을까. 머리를 올려 준다고? 비기너가 연습장 시기를 지나, 필드에 처음 나가는 것을 두고, 골퍼들은 이런 ‘표현’을 썼다. 다행히도 요즘 젊은 골퍼들은 쓰지 않는 것 같다.

 

돈과 시간이 있어야만 즐길 수 있는 이너서클의 스포츠, ‘머리를 올려 준다’는 표현을 비롯해 골프장 유머에서 읽히는 남성 중심적인 코드. 내가 한국의 골프 문화에서 포착한 것은 성공한(혹은 성공하고 싶은) 남자들의 권력 내지 계급 의식 같은 것이었다.

 

지금은 그 양상이 좀 달라졌지만, 여전히 골프가 대중화되어간다는 말에는 동의하기가 힘들다. 돈과 시간이 아주 많이 들어, 극히 소수만이 즐기던 것이 그 저변이 좀 확장됐다고 보는 것이 정확해 보인다.

 

작년 골프장 누적 내장객은 5천만 명으로 추정된다. 해외여행 등이 막혀 일인당 횟수가 빈번해진 영향이 클 것이고, 골프의 부흥을 이끄는 주체로 거론되는 여성은 전년 대비 12%, 20대는 15%가 더 늘어난 것으로 집계돼고 있다.

 

그런데 사람 수가 늘어난 것에 비해, 비싼 옷이나 클럽이 많이 팔려나가다 보니 시장 규모는 더 빠른 속도로 커졌고, SNS 필드 컷이 유행하면서 착시를 일으킨 측면도 있다.

 

KDX한국데이터거래소와 삼성카드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 이전 대비 다른 스포츠 용품 매출은 16% 증가에 그쳤지만 골프 의류는 무려 60.4%가 늘었다고 한다. 국내 골프용품 전체 시장 규모는 세계 3~4위지만, 의류는 매출액 기준 세계 최고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출처=게티이미지

 

한국에서의 골프 대중화, 어불성설

 

대중화는 보통의 말단 직장인도 즐길 수 있을 때나 가능한 표현이다. 적어도 한국에서의 골프는 그게 가능한 스포츠가 아니다.

 

골프는 6~7km 거리의 18개 홀을 도는 데 네 시간이 걸린다. 넓은 땅을 필요로 하다 보니, 차를 몰고 먼 거리를 오가야 한다. 그린피와 카트, 캐디 비용 등을 감안하면 골프장에 한번 갈 때 최소 30-40만원이 든다. 옷과 클럽 등 장비도 보통 비싼 게 아니다.

 

그 시간과 비용을 따져 보면, 대중화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다만 다른 레저 활동이나 여행을 못 하게 된 젊은층 일부가 명품을 소비하듯 골프를 소비하게 된 것 뿐이다. 원래 골프의 주요 수요층이던 40-60대들이 골프장을 더 많이 방문한 영향도 있다.

 

우리 골프장 이용료가 비싼 데는 이유가 있다. 미국의 골프장은 1만5000개, 한국은 447개로 전 세계 8위다.

 

18홀의 거리를 합하면 5,940미터 이상, 6키로에 해당하고 코스 면적은 100ha 이상을 필요로 하니, 골프장 하나를 짓는데 20만 평이 필요하다. 미국의 한 주(州) 크기에도 못 미치는 땅덩어리의 한국은 그나마 산이 70%다. 골프장을 지으려면 비싼 땅값을 내고 산을 깎는 공사를 해야 한다.

 

반면 미국엔 값이 비싼 명문 골프 클럽도 많지만 대중 골프장도 많다. 캐디 없이 직접 카트를 끌고 라운딩이 가능한 골프장은 20~30달러, 우리 돈 3-4만원이면 충분하다. 장비는 현장에서 대여해서 쓰고, 옷도 골프웨어라는 개념이 딱히 없다.

 

그러니 아마도 우리 영토가 넓어지기 전까지 한국 골프가 ‘대중화’될 일은 없을 것이다.

 

 

영화 '타짜' / 출처= 유튜브 '뭅뭅' 채널

 

중년 세대 비즈니스의 장

 

지금의 40~60대는 젊은 시절 취향을 갖지 못한 세대다.

 

한국에서 20년 이상을 산 독일인 안톤 숄츠는 그의 저서에서 “한국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 일하고, 퇴근 후엔 집에 안 가고 술에 취해 길바닥에 널부러져 있다”고 쓴 적이 있다.

 

장시간 업무에 시달리고, 밤엔 술에 취해 밤낮으로 충성을 바쳐야 했던 세대. 취향, 취미, 저녁이 있는 삶, 워라밸 같은 말이 그들의 시대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그들도 명분을 가질 스포츠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골프다. 왜냐면 골프가 비즈니스의 장으로 소비되었기 때문이고, 매너와 복장을 중시하는 경향도 그 때문이다.

 

골프는 무리 지어 하는 운동이다. 사회적 성공이 인생의 전부였던 중년 세대에게 무리에서의 이탈은 곧 죽음이었으니, 골프는 사업의 연장선이었고, 4시간 동안 6-7키로를 함께 걸으며 대화도 가능했다. 골프장이 비즈니스의 장이 되고, ‘법인카드’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 골프 시장이 이만큼 흥할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골프를 대하는 한국 사람들의 마음 밑바닥에는 계급 의식이 깔려 있다. 중년 세대가 만들어낸 독특한 의식(?)들이 이를 드러낸다. 한 홀에서 1타로 공을 넣는 것을 홀인원이라고 한다. 홀인원을 한 사람들은 홀에 대고 절을 올리고, 상도 받고 트로피도 받는다. 물론 이는 골프장이 만들어낸 마케팅 수법이기도 하다.

 

그런데 홀인원을 기념해 한 턱 쏘는 비용이 얼마나 비싸게 들었던지 한국에는 세계 유일무이의 ‘홀인원 보험’이 존재한다. 기꺼이 보험을 들고 한턱을 쏘는 우리 중년들은 ‘홀인원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도 3년 재수가 좋다’며 즐거워한다. 낚시, 등산과 비교하면 골프는 다분히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다.

 

 

MZ세대 골프 패션

 

MZ의 골프는 명품 소비의 연장선

 

반면 우리의 MZ는 밤낮 회사에 충성하라고 배우지 않았다. 개인 존중은 곧 취향 존중의 시대를 불러 왔다. 요즘 필드를 패션쇼장으로 변모시킨 젊은 골퍼들은 골프를 취향으로 즐긴다. 명품을 소비하듯 골프웨어를 소비하고, SNS를 통해 그 모습을 세상에 퍼트린다. 발이 묶인 팬데믹 시기, 스크린 골프장이 젊은 세대의 골프에 대한 관심과 재미를 환기시킨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비즈니스로, 명품처럼 골프가 소비된다 치더라도, 요즘 골프웨어의 가격을 보면 이렇게까지 비쌀 일인가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티셔츠 30~40만원, 아우터는 1백~2백만원을 호가한다.

 

비싼 골프웨어를 입는 한국 골프의 기원은 생각보다 더 오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18홀을 갖춘 우리나라의 첫 골프장은 영친왕이 지금의 어린이대공원 땅을 골프장 대지로 무상 대여해주고, 경기장 건설비로 2만 원을 하사해 1929년 만들어졌다. 그 이름은 ‘서울컨트리클럽’이었다. 이후 1930년대 경성에 골프팀이 생겼고, 일본인 지도자들을 수입해 훈련했다. 그래서 복장, 매너를 중시하는 일본의 골프 문화 영향을 크게 받았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최근에는 유럽의 천연 소재도 많이 쓰지만, 코로나 이전까지 일본의 고가 기능성 소재가 골프웨어에 주로 쓰인 연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매너의 스포츠라 불리는 골프는 그렇게 권위를 장착했다.

 

외환위기 시절 벙커에 빠진 공을 멋지게 날려 국민을 위로했던 박세리 선수는 멋 훗날 “선수 초기 시절, 여성 선수는 바지 착용을 금지당했다”고 회상하며, 스포츠의 남성 권위주의를 에둘러 비판했다.

 

 

부의 양극화가 골프를 키운다

 

리세션(경기 하강)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지만, 골프 광풍은 당분간 이어질 것 같다. 골프가 대중화가 되어서가 아니라, 명품처럼 소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때도, 코로나 기간에도 명품 매출은 더 늘었다. 재난의 잔인함은 그 자체보다, 이후 벌어지는 부의 양극화에 있다. 재난은 늘 세상의 더 낮은 곳을 덮친다.

 

‘21세기 자본론’으로 세계적 석학에 오른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자본 소득이 근로 소득을 크게 넘어설 때 불평등, 부의 양극화는 크게 심화된다”고 했다. 지난 팬데믹 기간이 우리에겐 그랬다.

 

그렇다 하더라도, 한해 남짓한 동안 신규 브랜드 60개는 분명 거품이다. 이미 매장을 잡지 못한 상당수 브랜드들에서 경고음이 나기 시작했다.

 

박선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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