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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훈] 밀라노 단상

발행 2020년 02월 20일

어패럴뉴스 , appnews@apparelnews.co.kr

남훈의 ‘패션과 컬처’

 

남훈 알란컴퍼니 대표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자신이 지향하는 방향을 정확하게 말하면서 브랜드를 키워가는 이들이 손익계산서만 만지작거리는 브랜드보다 더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느리더라도 세상의 진보는 그렇게 이뤄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비행기는 다시 밀라노에 내린다. 표면적으로는 비즈니스고 여러 브랜드들을 바잉하기 위한 출장이지만, 숙제하듯이 다니기보단 고마운 여행처럼 생각한다. 다양한 컨셉의 브랜드와 패션 인더스트리에 숙련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어디서도 배울 수 없는 살아 있는 공부이며, 그들의 영혼이 담긴 제품은 다시 한국 매장에서 예술처럼 사람들의 눈을 빛내기 때문이다. 


비록 경제적인 면에선 요즘 어렵다는 이탈리아지만, 이 나라의 좋은 점 하나는 거리에 가득한 멋진 남자와 아름답게 패션을 소화한 여자들을 보는 행복이 아닐까. 날렵한 슈트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구두, 그 구두와 조화를 이루는 바지의 절묘한 핏, 그리고 그 신사들과 유쾌하게 대화를 나누는 패셔너블한 여성들. 하지만 이탈리아는 하나의 특성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악동의 면모를 지녔다. 자부심과 부패, 긍정과 부정, 우아함과 불결함, 이 모든 것이 뒤섞여 있지만 그래서 오히려 재미있다. 

 

특히 밀라노는 파리와 또 다른 의미에서 패션의 성지로 불린다. 세계 패션에 깊은 족적을 남긴 ‘Made In Italy’ 라벨을 단 쟁쟁한 브랜드 쇼룸들이 군집한 도시 아닌가. 옆 카페에 백발의 미스터 아르마니가 홍차를 마실 것만 같고, 저녁을 마친 후 들른 어느 클럽에선 늘씬한 티셔츠를 입은 어느 디자이너가 음악을 틀고 있을 것만 같은 도시. 잘 재단된 슈트를 말쑥하게 입은 신사와 등이 깊게 파인 호피 무늬 원피스를 무심하게 걸친 여인이 거리에 공존하고, 쇼윈도우 앞에선 남녀노소 모두 한참 넋을 잃은 채 시간을 보내며, 타인의 멋진 옷에 대한 칭찬은 처음 본 사이에도 그야말로 거침이 없다. “와 멋진데, 그거 어디서 샀어요?” 이건 남성복이 시작된 런던에서도, 여성복이 만개한 파리에서도 볼 수 없는 유일한 모습이다. 


정치나 사회 시스템에 대한 모두의 부정적인 평판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란 국가의 패션이 부상한 것은 그처럼 일상적으로 패션을 즐기고 적극적으로 패션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 때문이다. 물론 밀라노의 패션산업은 지금 힘든 과정을 겪고 있다. 이탈리아 내수도 쉽지 않고, 중국이나 러시아 시장에 의존하던 수출도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이십여 년 이상 밀라노를 다니면서 느끼는 점은, 밀라노는 계속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5년 엑스포 이후에 새로운 식당, 미술관, 전시회, 음악회 등이 계속 열리고, 밀라노를 방문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패션에 관해서만은 좀 아쉽지만 도시 자체는 꿈틀거리며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해가 질 무렵 밀라노 몬테 나폴레오네 거리를 걸으며 여러 브랜드들의 윈도우를 보면 몹시 흥미롭다. 불투명한 미래 전망과 소비 심리의 변화, 기온의 드라마틱한 변화, 그리고 거대한 사회적 격변을 겪고 있는 우리들에게 밀라노는 흥미로운 인사이트를 준다. 


크게 보면 세상에는 제품에서 매장의 윈도우에 이르기까지 두루 신경을 쓰는 브랜드와, 새롭거나 리스크가 있는 일을 피하고 비용을 적극적으로 통제해서 수익을 내는 브랜드가 있다. 둘 다 필요한 일이니 어느 쪽이 옳다고 할 수 없고, 마지막 결과도 미지수지만, 전자들이 세상에 없던 무언가를 창조하려는 쪽이고, 후자는 최대한 보수적으로 관리하는 경우다.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자신이 지향하는 방향을 정확하게 말하면서 브랜드를 키워가는 이들이 손익계산서만 만지작거리는 브랜드보다 더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느리더라도 세상의 진보는 그렇게 이뤄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많은 이탈리아 브랜드들이 그들의 가업을 시장에 내놓기도 하고, 아버지의 사업을 아들이 물려받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브랜드를 클로즈하는 경우도 생겨난다. 이렇게 남성복 시장이 바닥을 치고 있을 때 어느 열정적인 우리 기업이 괜찮은 이탈리아 브랜드를 획득하면 한국 패션 시장의 미래를 위해서도 얼마나 좋은 일인가.


기회는 언제나 위기의 순간에서 발견되는 법이고, 모든 거대한 사업은 작고 미약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하는 게 역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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