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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기] 구찌, 패션쇼를 재발명하다

발행 2020년 11월 27일

어패럴뉴스 , appnews@apparelnews.co.kr

김홍기의 '패션 인문학'

 

'구찌' 7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미니시리즈 서곡(OVERTURE)
'구찌' 7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미니시리즈 서곡(OVERTURE)

 

 

15세기 르네상스 시대, 당시 상인계층은 교역과 금융업으로 부를 축적했다. 


상인 가문의 여성들은 집안에서 트렁크 쇼, 소수를 위한 최신 상품을 소개하는 패션쇼를 열었다. 당시에도 북유럽산 모피와 아랍산 벨벳, 인도산 면, 이집트산 리넨으로 만든 최신 유행 옷이 6개월 단위로 선보였다. 


근대적 자본주의의 토대를 형성하던 르네상스 경제에 큰 버팀목은 직물교역이었다. 양모가공으로 종잣돈을 축적한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이나 최초로 유럽 각국의 패션 정보를 얻기 위한 네트워크를 만든 독일의 푸거 가문 모두 수입산 직물에 대한 품평과 디자인에 예민했다. 상인 가문 여성들의 패션쇼는 시장성 평가와 품질 평이 오가는 자리였다. 


근대적 형태의 패션쇼가 등장한 것은 1860년대이다. 당시 패션 디자이너 찰스 프레데릭 워스는 모임과 옷을 파는 행위를 결합시켰다. 자신의 2층 매장 양쪽으로 고객의 좌석을 배치하고 그 사이 좁은 통로로 모델들이 새로운 옷을 입고 걷게 했다. 


당시 파리 패션을 모방하던 미국인들에게 이 패션 퍼레이드는 옷을 제시하는 참신한 방식으로 비춰졌고 이후 이 개념을 수입해서 발전시켜 나간다. 


1920~30년대로 접어들면서 패션쇼는 다시 형질 변화를 겪는다. 코코 샤넬의 티 내지 않는 편안함에서 스키아 파렐리의 초현실적 실험, 마들렌 비요네의 물 흐르듯 유연한 드레이핑에 이르기까지, 개별 하우스의 패션쇼는 소규모, 개별화 경향을 띠게 된다.


1960년대에 들어 패션쇼는 음악과 모델의 개성이 결합되기 시작했고 이는 당시 청년문화의 결과물이었다. 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며 패션쇼는 조명, 음향효과, 정교한 무대장치로 무장한 일종의 연극이 되었다. 


1998년 이브 생 로랑은 프랑스와 브라질의 월드컵 결승전이 벌어지는 경기장을 빌려 경기 한 시간 전 패션쇼를 열었다. 이 쇼는 17억 명이 시청했다. 이런 역사를 겪으며 패션계는 1년에 5번에 걸친 패션쇼를 여는 걸 깨질 수 없는 규칙으로 받아들였다.

 

최근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서곡(OVERTURE)이라는 제목으로 7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미니시리즈 형식의 컬렉션을 발표했다. 


왜 클래식 오페라의 앞부분에 배치되어 ‘전체 곡의 감성적 흐름과 주제를 설정하는’ 서곡을 제목으로 삼았을까. 미켈레는 패션계가 오랫동안 사용해온 S/S나 F/W 같은 시간표를 허물기 위해 클래식 음악의 어휘를 차용했다. 


서곡, 밤의 서정을 표현하는 야상곡, 즉흥 독주를 뜻하는 카덴차, 각 악기의 음색을 조율하는 교향곡, 세속적인 내용을 여러 성부로 표현하는 성악곡 마드리갈, 춤곡인 미뉴에트에 이르기까지 미켈레는 앞으로도 각 클래식 음악에 섬세하게 녹아있는 리듬감과 감성을 자신의 컬렉션을 구축하는데 사용할 모양이다. 


이런 시도를 통해 패션계가 오랫동안 의존해온 패션 위크와 같은 시간표를 버리고 불규칙적이고, 유쾌하며,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자신만의 시간표’에 따라 컬렉션을 발표하겠다는 것이다. 


그의 논리대로 하면 기존의 런웨이는 사라진다. 패션쇼 특유의 표현방식이 사라질 때, 한 벌의 옷은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될까. 패션의 시즌 개념은 사실상 서구에서 17세기에 만들어졌고, 오늘날의 패션 산업은 이런 개념에 의지해서 발전해 온 것이다. 


이 틀을 던져버린다는 것은 가히 혁명에 가까운 선언이다.


다음 칼럼에서 본격적으로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패션 필름 7편을 분석해보려고 한다.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차세대 소비자인 밀레니얼 및 Z세대와 가장 효과적인 소통을 하고 있는 구찌의 이런 시도는, 예술형식의 실험을 넘어 여기에 사용된 표현방식과 언어, 플랫폼, 감성 모두가 다른 패션기업의 브랜딩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패션을 한 세대의 종교적 열망의 차원으로까지 끌어올린 그의 표현법에서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교의를 발견하기를 소망해본다. 그가 재발명한 새로운 패션쇼는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을까.

 

 

김홍기 패션 큐레이터
김홍기 패션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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