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배너 이미지

[김홍기] 패션의 ‘존엄’을 회복하는 의류 수선업

발행 2022년 09월 01일

어패럴뉴스 , appnews@apparelnews.co.kr

김홍기의 ‘패션 인문학’

 

출처=더 심(The Seam) 홈페이지

 

필자가 옷을 만드는 기술인 재단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르네상스 시대에 발행된 남성복 재단법을 설명한 매뉴얼을 읽으면서다. 의류 수선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도 박물관에서 이뤄지는 전통의상의 복원과정에 푹 빠지면서다.

 

한 조각의 천까지 모두 수거해 과거 자료에 근거해 하나씩 조립해가는 과정은 놀라웠다. 이렇게 복원된 한 벌의 옷은 과거를 읽는 렌즈가 되어 지나간 시대에 관한 우리의 선입견을 회복시켜준다.

 

서구와 동양 모두 기성복이 태어나기 전, 사람들은 자신이 직물을 구매한 후, 의복을 짓거나 기술자에게 디자인 사항을 설명해가며 만들어 입었다. 옷을 꾸미는데 소요되는 장식과 트리밍을 더할 경우 제작에 수개월이 걸렸기에, 옷을 수선하는 데도 많은 품과 비용을 들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의 각 국가는 의류를 배급품목으로 정했다. 전시상황에서 사치를 부릴 여유가 없었기에 ‘기존의 옷을 새롭게 만들어 고쳐 입자’라며 ‘Make do and Mend’ 같은 슬로건을 내걸었고, 당시 군인들은 아내란 애칭을 가진 재봉 키트를 들고 다녔다. 여기에는 바늘과 실, 단추, 가위와 같은 기본적인 재봉 도구들이 담겨있었다.

 

최근 옷장에 묵혀둔 옷들을 되살리고, 낡은 핸드백을 고쳐주는 다양한 기술 플랫폼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볼품없는 의류 수선과 리모델링 사업이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지속가능성 화두의 대두, 의류 폐기물량의 국가적 규제, 의류 렌탈 및 재판매 시장의 성장과 함께 의류 보관이 중요해져서다.

 

의류 수선 관련 플랫폼 중 영국을 기반으로 지역의 재단사와 사용자를 연결시켜 주는 소요(Sojo)와 의류 관리 애플리케이션인 세이브 유어 워드로브(Save Your Wardrobe), 명품의류 수선 플랫폼인 리커버리(Rocovery) 같은 기업들은 각각 수백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한 상태다.

 

이에 맞춰 패션 브랜드들도 수선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유니클로는 런던과 뉴욕에서 올 초부터 지속가능성 의제에 동참하는 의미로 리모델링 서비스를 시작했고, 올 1월에는 핸드백 제조업체인 코치(Coach)도 수선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의류 수선 및 재단 플랫폼인 더 심(The Seam)은 영국 내 2500명 이상의 특화된 분야별 기술을 가진 장인 네트워크를 구축해 지금까지 1만 건 이상의 수리 및 리모델링을 했고, 2020년 창업 이래 고객도 20%가 늘었다. 소비자들은 55파운드의 비용으로 재단사와 예약을 하고 1년에 4번, 옷의 장식용 자수 및 재단을 통해 맞춤형 비스포크 서비스를 만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세이브 유어 워드로브’는 독일의 온라인 소매업체인 잘란도(Zalando)와 장기계약을 맺었다. 수익성을 위해 정평 있는 브랜드, 소매업체와 파트너십을 맺는 것도 현재의 의류 수선 시장을 확대하는 전략이다. ‘세이브 유어 워드로브’는 2023년까지 잘란도에서 팔린 5천만 점 이상 의류 품목의 수명을 확장할 생각이라고 한다.

 

현재의 의류산업은 넘쳐나는 반품과 의류폐기물 처리비용으로 골머리가 아프다. 의류품목 자체의 내구성과 사용빈도 및 기간을 늘리는 것이 관건이다. 하지만 의류수선 분야가 매력적인 산업이 되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지역의 능력 있는 재단사와 각 품목 별 전문가를 연결시키는 문제도 만만치 않다. 기술 장인의 공급량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의류상품 자체의 내구성을 확장하기 위해, 많은 패션기업이 의류수선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살펴봐야 한다. 패션의 지속가능성 및 탄소 중립을 향한 노력은 소비자의 인식변화와 맞물려있다. 디자이너 발렌시아가는 자신의 옷을 여인 3대에 걸쳐 입을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옷을 오래 입는다는 것만큼 브랜드의 내재가치를 높일 수 있는 전략이 또 있을까.

 

지속 가능한 공급모델로 변화하기 위해 바로 이 사고를 내면화시키는 사회적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수선을 뜻하는 리페어(Repair)에는 ‘회복’의 의미가 들어있다. 패스트 패션의 병리적 결과를 치유하고, ‘패션의 존엄’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겐 ‘수선업’의 복원이 필요하다.

 

김홍기 패션 큐레이터

 



< 저작권자 ⓒ 어패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카카오톡 채널 추가하기 버튼
광고배너 이미지 광고배너 이미지 광고배너 이미지 광고배너 이미지
광고배너 이미지 광고배너 이미지 광고배너 이미지 광고배너 이미지

지면 뉴스 보기

지면 뉴스 이미지
지면 뉴스 이미지
지면 뉴스 이미지
지면 뉴스 이미지
지면 뉴스 이미지
지면 뉴스 이미지
지면 뉴스 이미지
지면 뉴스 이미지
지면 뉴스 이미지
지면 뉴스 이미지
지면 뉴스 이미지
지면 뉴스 이미지
지면 뉴스 이미지
지면 뉴스 이미지
지면 뉴스 이미지
지면 뉴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