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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김홍기의 패션 인문학 (2)
트렌드의 죽음

발행 2018년 02월 22일

어패럴뉴스 , appnews@apparelnews.co.kr

김홍기의 패션 인문학 (2)

트렌드의 죽음




지금까지 유형의 가치가 중요했다면 앞으로는 무형의 가치가 더 중요하게 될 것이다. 브랜드에 스토리와 정보, 디지털을 융합하여 고객에게 흥미와 체험을 동시에 느끼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적으로 패션이 태어난 것은 르네상스 시대다. 이 시기의 사람들은 ‘내 삶의 주인공은 나다’라는 인식을 갖기 시작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이 가득했다. 중세시대만 해도 사람들은 스스로를 인종, 민족, 파벌, 조합의 일원으로만 의식했다. 이들에겐 ‘개인’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13세기말 베네치아와 피렌체 같은 도시에서 자신의 고유한 매력을 표현하고 개인의 특성을 중시하는 태도가 퍼지기 시작했다. 인간이 전통에 묶여있는 존재가 아니라, 변화를 모색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패션은 지속적인 자기갱신이라는 시대의 목표와 맞물리면서, 인간의 정체성을 만드는 기술로 자리 잡는다.
당시 원양항해가 시작되면서 동방 교역을 통해 서구에는 이전에 볼 수 없던 각종 산물이 쏟아졌다. 옷을 보색대비를 통해 겹쳐 입는 레이어드룩 스타일링도 사실은 터키에서 건너온 것이다. 어디 이뿐인가? 이국적인 직물과 직조방식, 각종 보석류와 향신료는 서구유럽을 일깨웠다. 중세의 껍질을 벗은 사회는 ‘새로움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했다. 새로움은 그 자체로 권력이었다. 자신의 외양을 자주 바꾸어서, 변화하는 시대의 리듬에 맞추는 행위가 ‘멋진 것’으로 인정된 것이다.
변화가 잦은 사회로 변모하면서 문제점도 생겼다. 변화란 필연적으로 예측이 어렵다보니 심리적 불안감도 커졌다. 이 지점에서 트렌드가 등장한다. 트렌드는 변화에 따르는 불확실성을 다루기 위해 인간이 만든 체계다.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트렌드는 생산자에겐 상품을 얼마만큼 만들지 제시하고, 소비자에게는 자신의 요구사항을 정확하게 간추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트렌드란 자본주의적 메커니즘이 없었다면 상품은 팔리지 않고 불만족한 소비자들은 늘어나기만 할 것이다.
결국 트렌드란 산업적인 관점에서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를 줄임으로서 생산과 소비를 부드럽게 연결하는 장치다. 심리적 측면에서 볼 때도 변화에 대해 불안함을 느끼는 자아를 보호하는 장치다. 트렌드를 방패삼아, 집단과 더불어 행동함으로써 고유의 취향을 갖지 못했더라도 타인을 모방하는 것을 용인 받고, 창의적이지 못하다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 트렌드가 가진 미덕이었다.
최근 트렌드란 단어가 점점 힘을 잃고 있다. 대신 취향이란 단어가 사회 곳곳에, 일상의 배면에 스며든다. 패션은 기본적으로 리더와 추종자가 벌이는 게임이다. 패션리더는 자신의 외양에 독특함을 주입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들은 타인과 다른 자신의 개성을 강하게 내세우며 새로운 패션 스타일을 언어로 전달하거나 착용함으로써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패션게임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추종자다. 자신에 대한 열등감을 느끼며 타인이 만든 기준에 동조하려는 욕구가 있는 한 유행추종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들은 자신이 부러워하는 대상을 모방하는 인간의 기본적 심리에 충실하며, 시대의 변화흐름에 동참하고 있다는 평을 듣기 위해 추종자가 된다.
문제는 최근 이 게임의 법칙에 균열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점점 더 스스로 패션 리더가 되길 선택한다. 예전에는 많은 발품을 팔고 다녀야 얻을 수 있었던 패션 정보가 넘쳐난다. 소셜 네트워크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다양한 패션 이미지가 사람들의 가이드가 되어준다. 과거 취향을 지휘했던 에디터나, 스타일리스트, 바이어의 도움이 없이도 사람들은 자기를 쉽게 연출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패션 리더가 되고자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기존의 패션 게임 자체가 허물어진다. 이것이 패션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과거 패션과 취향을 연결해주던 트렌드의 지위를 잃은 것이다. 트렌드가 인간의 취향을 주도적으로 이끌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사람들은 한마디로 자기가 입고 싶은 방향을 스스로 설정한다.
최근 이 집단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SNS상의 패션 이미지들을 보고 생각을 정리해, 무드보드를 만들어 자신의 스타일링에 사용하는 전문가급 소비자들도 엄청나게 늘었다. 이들은 획일화된 미가 아닌 다양성에 눈을 돌린다.
이렇게 취향은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그들의 자신의 섬세한 취향을 채워줄 독립 디자이너와 생산자들을 응원한다. 한 가지 상품 혹은 카테고리에 주력하면서, 각 개별 제품을 컬트처럼 떠받드는 스타일 부족이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이 부족은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다. 이들에게 컬트가 될 수 있는 자! 이들이야말로 패션의 혁신을 이뤄낼 힘을 갖고 있는 자들이다. 취향이 트렌드를 이긴다.

/패션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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