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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창] 성수동이 수제화의 역사를 품을 수 있다면

발행 2023년 01월 04일

박해영기자 , envy007@apparelnews.co.kr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수제화 공동판매장 모습 / 사진=성동구

 

성수동 하면 ‘수제화 메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면, 80~90년대 이전 세대일 것이다. 현재 성수동을 찾는 MZ세대 상당수는 이곳을 수제화 거리로 기억하지 않는다. 불과 3~4년 사이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국내 수제화 제조 인프라는 서울역에 인접한 염천교 일대에서 시작됐지만 도시개발에 떠밀려 성수동에 새로 터를 잡았다. 성수동 수제화의 전성기는 80년대로, 미소페, 탠디, 소다 등 살롱화 브랜드들이 생겨나고, 백화점에 입점하기 시작한 시점과 맞물려 있다.

 

소공인이 만든 구두가 브랜드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경쟁이 과열되면서 ‘탠디’를 시작으로 맞춤 제작 서비스도 시작됐다. 이들은 제작 기간과 배송 거리를 고려해 강남에 인접한 성수동을 최적의 입지로 낙점했다.

 

전 세계 유일의 독특한 맞춤 구두 시장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성수동의 역할은 지대했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을 하는 금강, 에스콰이아, 엘칸토 등의 기성화를 살롱화 브랜드들이 넘어서게 된 계기가 됐다.

 

세라, 미소페, 엘리자베스, 고세, 바바라 등이 모두 성수동에 본거지를 두고 성장한 브랜드들이다. 이후에는 디자이너 슈즈, 온라인 프리미엄 슈즈 인프라도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결과적으로 성수동은 제화 소공인들이 브랜드로, 시장 브랜드에서 백화점 브랜드로, 수제화가 고급 브랜드로 발돋움하는 기반이 됐다.

 

하지만 몇 해 전부터 명품, 패션, 뷰티, 카페 등이 경쟁적으로 진출하면서 굽, 가죽을 취급하던 가게, 구두 공방들이 외곽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여기에 2017년 성수동 수제화 공임 인상 사태는 브랜드 업체들이 중국으로 생산지를 옮기는 빌미가 됐다. 결국 구두 제조 인프라는 급속도로 사라져, 전성기 시절의 10%만 남아 있는 상태다.

 

제화 제조 기능은 점차 상실, 현재 미니엄 오더 200~300족도 소화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나마 남은 제화 공장들은 재계약 시점에 내쫓길 운명에 놓여 있다. 건물주들은 제화 공장과 상점들을 몰아내고 빌딩의 가치를 올릴만한 카페, 패션 브랜드에 자리를 내어 줄 것이다. 성수동은 도심형 공장이 위치한 곳으로 여전히 넓은 면적에 낮은 밀집도의 상업 시설이 들어서 있어, 앞으로 대형 플래그십 스토어 진출도 더 거세질 전망이다.

 

하지만 성수동은 제화 산업의 뿌리이고, 동시에 국내 구두 제조의 마지막 보루이기도 하다. 제화 인프라 붕괴에 대한 대비책을 지금이라도 마련해야 한다. 성수동이나 구두 원부자재 인프라가 있는 신설동, 기성화 제조 인프라가 남아 있는 경기도 성남시 등에 공장형 아파트 등 일종의 클러스터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임대나 관리비, 설비 지원 등을 통해 가죽, 장식, 굽 원부자재 업체부터 신발 장인들을 한 곳에 끌어들여 원스톱 제조 환경을 구축하면 된다. 이후 온오프라인 기반 구축 사업을 실행한 후 디자이너, 1인 기업들을 위한 세일즈 공간까지 열 수 있다. 재래 시장의 청년몰이나 아티스트 창작 공간처럼 말이다.

 

서울시가 패션위크처럼 성수 제화 위크 등 국내외 이벤트를 마련하고, 트레이드쇼를 기획할 수 있을 것이다.

 

일련의 프로젝트는 지자체, 제화 업계, 정부지원 프로젝트, 신발이나 디자인학과를 운영 중인 대학들이 함께 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물론 국내 사례도 있다. 부산시는 시의 재경으로 부산 기반 신발 제조 업체를 육성하기 위해 부산신발협회를 운영하고, 신발 산업의 온오프라인 인프라를 만들어 공장, 첨단 시설, 세일즈 등을 지원하고 있다. 부산 신발 산업 인프라가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구심점이 되고 있다.

 

수제화 산업이 성수동을 기반으로 성장했듯, 성수동은 수제화에 대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상권이 발전한다고 해서 그러한 과거의 역사와 이야기를 버려야 할까. 그 시절의 이야기를 품고 함께 발전한다면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 지금도 늦지 않았고, 누구라도 실행하기를 바란다.

 

박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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