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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 돈벌이 수단 전락한 ‘상(賞)’들은 가라

발행 2021년 05월 21일

박선희기자 , sunh@apparelnews.co.kr

출처=게티이미지

 

“대상은 3천만 원, 금상은 2천만 원, 은상은 천만 원 입니다”...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실상을 파헤친 공중파 한 시사 프로에서 모 경제일간지가 만들었다는 ‘ESG 상’의 실체가 드러났다. PD가 기업체 직원을 가장해, 전화를 걸어 문의하자, 담당 직원은 상의 ‘값’을 줄줄 읊어댔다. 앞서 이 신문사는 컨설팅 회사와 함께 국내 기업들의 ESG 경영을 독려하기 위해 평가 및 인증제도를 만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이내 ‘상’도 만들었다. 


본지의 한 칼럼리스트도 지적한 대로, 어떤 ‘인증’이 권위를 획득하려면 그 객관성과 투명성, 타당성 등에서 먼저 인정을 받아야 한다. 실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인증제들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절차가 까다롭고 복잡하며, 전문가들의 수개월에 걸친 현장 검증이 반영된다. 


신문사나 각종 기관들이 무슨 무슨 상을 만들어 주면, 기업들은 그것을 ‘사서’ 홍보 수단으로 써 온 역사는 아주 길다. 이번에도 역시 돈벌이구나 싶었지만, 시대적 감수성을 이렇게나 못 읽나 하는 생각을 넘어, 소비자나 기업을 무시하는 처사인지, 소비자나 기업에 대한 무지의 처사인지 헷갈렸다. 


이는 선입견 때문이 아니다. 패션유통 업체에 한정되어 있지만, 오래 현장을 다닌 기자 경력에 비추어 볼 때 국내에 과연 ESG 상을 받을 기업이 있나 하고 생각해보면 딱히 떠오르는 곳이 없다. ESG의 세 가지 요소 중 특히 ‘환경’은 국내 업체들에게 먼 나라의, 아주 먼 어떤 것이다. 아직 그런 현실인데, 상을 준다고 하니, 결론은 자연스럽게 ‘돈벌이’가 되는 것이다. 


최근 영국 패션 전문지 BoF는 유명 컨설팅사와 평가한 항목별 점수를 공개하며, 나이키, 구찌, 루이비통 등 세계 최고 브랜드들이 ESG 경영을 ‘하는 척’ 하고 ‘마케팅 구호’로만 써먹고 있다고 공개 비판했다. 이 상식적인 이야기가 국내에서는 반대로 뒤집혀 팔려 나가고 있는 것이다. 


요즘 독자를, 요즘 소비자를 바보로 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ESG라는 주제를 놓고 상을 팔아먹나 하는 생각은, 이들이 왜 이토록 시대 정신과 멀어져 있나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것은 아마도 젊은이들이 더 이상 일간 신문을 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요즘 사람들이 어떤 가치를 중시하고, 어떤 실천을 추구하는지에 둔감하다. 상을 주면 줄을 서 받고, 매장 입구에 POP를 세워두고 장사를 하던, 오랜 고객들에게만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지구’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우리가 지속가능하기 위한 ESG 경영의 필연성에 대한 이이야기는 차고 넘친다. 그보다 나는 이제 그 많은 ‘상’들이 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줬으면 좋겠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가장 대표적인 구태 중 하나로 여겨지는 것이 바로 상(賞)이다. 


매체 사에 있다 보면,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은 ‘상’들이 존재하는지 알게 된다. 나는 지금도 대통령상, 국무총리상, 장관상이라는 이름들이 어색하고 손발이 오그라든다.


수상자들을 선정하는 과정에 몇 번 참여한 적이 있는데, 그 곳에서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대통령상과 대통령은 사실 아무 상관이 없으며, 다만 대통령이라는 명사를 갖다 쓰는 조건으로 정부 기준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같은 기업 내지 사람이 3년 이내에 같은 상을 타면 안 되고, 직원은 몇 명 이상, 업력은 몇 년 이상, 매출은 얼마 이상이어야 한다는 식이다. 


그런데 알다시피, 매년 누구나 인정할만한 히어로 기업이나 경영자가 바뀌어 가며 나타나 줄 리가 없다. 그러니 상은 자연스럽게 돌려막기가 되어 버린다. 본질이 허약하니, 이름이라도 높은 관직에서 빌려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대통령, 국무총리는 기업을 평가하고 상을 내리는 지위나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과 우리는 엄연히 영역이 다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그 이름을 쓴 상들은 권위주의 산업화 시대의 산물이기도 하다. ‘상’ 자체는 잘못이 없다. 진정한 격려와 지지의 표상이 되는 진짜 상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 언제나 필요하다.

 

박선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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