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 롯데는 어쩌다 3등이 되었나

발행 2021년 11월 05일

박선희기자 , sunh@apparelnews.co.kr

롯데백화점 강남점 / 출처=롯데백화점

 

국내 굴지의 광고회사인 제일기획 최인아 전 대표는 부사장 승진 후 3년 만에 사퇴한 이유에 대해 모 방송 프로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

 

“조직의 가장 큰 비애는 그 자리에 필요한 능력을 갖지 못한 사람이 그 자리에 앉아 있을 때 생긴다. 나는 광고 시장이 온라인 중심으로 바뀌어 가는 이 격변기를 잘 헤쳐나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비애라 표현한 이유를 나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 비애를 피해가기가 그만큼 쉽지 않다는 뜻이리라. 기자 생활을 하면서 나는 그러한 조직의 ‘비애’를 수도 없이 봤다.

 

최 대표와 같이 선명한 자기 인식 능력을 갖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일수록 더더욱 그렇다. 자신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고, 듣기보다는 말하기가 쉬워서, 더러는 자신의 능력이 부족함을 알면서 자리를 지키기 위해, 더러는 그 자체를 몰라 당당하다. 자기 인식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현실 문제와 결부되면 자기 합리화에 빠지기 일쑤다. 자기 합리화가 반복되면 어느 날부터인가는 합리화한 논리를 진실로 굳게 믿게 되는데, 조직의 진짜 비애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어렵게 말할 것 없이 어떤 자리에 오른 자가 자기개발을 멈추고 자리를 지키고자 들면, 그 즉시 꼰대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그런데 세상에는 능력자가 생각만큼 많지 않고, 그렇게까지 형편없는 자도 많지 않다. 그래서 그 자리에 딱 맞는 사람을 찾기 어렵거나, 혹은 그만한 사람을 데려올 능력이 되지 못하거나, 혹은 오너가 그런 안목과 지식이 없거나 하는 어느 경우든, 많은 조직들은 일정 부분 그 비애를 감당한다. 산업이 안정되게 흘러가는 시기에 그러한 비애는 감당할 만하다. 문제는 지금처럼 산업의 양상이 급격히 바뀔 때다. 이런 시기 조직의 비애는 조직의 차원이 아닌 회사 전체의 참담한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달 말 롯데 퇴사자라 주장하는 사람이 직원 게시판에 익명으로 올린 투고문이 업계에 퍼져 나갔다. 롯데는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고, 투고문은 곧바로 삭제됐지만 이미 이 손에서 저 손으로 퍼져 나간 후였다. 그는 롯데가 3등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하고 싶다고 했다.

 

익명의, 공식 문서가 아닌 글의 내용을 지면에 일일이 거론하는 일은 적절치 않다. 하지만, 쓴 이의 진정성과 기자 생활 내내 들었던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들의 확인 같은 느낌이 동시에 들었다. 그리고 여러 데이터에서 드러나는 현재 롯데 상황을 감안하면, 증권가 찌라시 쯤으로 치부할 일도 아니었다.

 

투고문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잘못된 인사, 자리를 지키고자 비용 줄이기에만 혈안이 돼 혁신을 포기한 경영진, 그 경영진에 의한 또 다른 잘못된 인사, 그 결과 오프라인 혁신과 이커머스 육성이라는 시대적 과업의 실패, 조직 깊숙이 퍼져 나간 패배주의와 무사 안일주의 쯤이 될 것 같다.

 

퇴사자라 주장하는 이의 주장은 롯데의 숫자를 다시 보게 만든다. 롯데는 신세계, 현대보다 외형이 2, 3배 이상 크지만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신세계의 3분의 1, 현대의 절반 수준이었다. 2019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롯데는 신세계의 1.7배, 현대의 2.5배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거둬들였었다.

 

대규모 투자를 발표했던 이커머스 사업의 표류, 할인마트 부문의 침체, 용두사미로 끝난 본점 리뉴얼이 상징하는 백화점 혁신의 중단 및 실적 저하 등 롯데가 후진하는 사이, 신세계와 현대는 달려나갔다. 수십 년간 기업을 경영해 온 이들이라면 세월이 던져준 통찰만으로도 마땅히 안다. 팬데믹이라는 이 국면이 큰 위기이자 동시에 다시 없을 절대적 기회라는 사실을.

 

그래서 신세계는 수년 전부터 착수한 쇼핑몰과 백화점의 혁신, 그리고 이커머스 SSG닷컴에 대한 투자를, 현대 역시 더현대 서울이 상징하는 오프라인의 혁신과 한섬닷컴으로 대표되는 이커머스 육성의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것이다.

 

신세계는 지난달, 두 달이나 앞당긴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사장단을 전원 교체하는 인사를 서두른 이유에 대해 위드 코로나 시대에 대한 전략을 앞서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 인사에는 수십 명의 외부 채용 임원들이 포함됐다. 그 규모를 볼 때 모르긴 몰라도 신세계는 이 인사를 올 초, 혹은 작년부터 준비했을 것이다.

 

신세계와 현대의 신규 점포가 혁신의 대안처럼 미디어에 오르내리고, SSG닷컴과 한섬닷컴이 공중파 광고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사이 롯데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질 않는다.

 

대신 고 신격호 회장 탄생 100주년을 맞아 롯데그룹이 기념관을 열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현재의 회장님은 “국가 부강과 이웃을 이롭게 하고자 했던 선대 회장의 기업 정신을 이어가자”는 기념사를 남겼다고 한다.

 

박선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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