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 한섬의 한계는 국내 레거시 패션의 한계다

발행 2023년 11월 23일

박선희기자 , sunh@apparelnews.co.kr

 

사진=한섬

 

나의 옷장에는 한섬의 옷이 꽤나 있다. 값비싼 한섬의 옷을 자주 사서가 아니라, 해를 거듭해서도 입어지는 유일한 국내 브랜드가 한섬이기 때문이다. 소재가 좋고, 봉제가 꼼꼼하고, 스타일이 유치하지 않으니, 10년이 넘도록 입는 옷도 있다. 소비자로서도, 패션 전문지 기자로서도 20년 넘는 시간 동안 이를 대체할 브랜드나 기업을 나는 찾지 못했다.

 

한섬의 옷들보다 더 비싼 해외 브랜드 제품을 간간이 살 기회가 있었지만, 그들 누구도 한섬보다 옷을 잘 만든다는 느낌을 주지는 못했다. 물론 명품급 의류를 살 일은 거의 없었으니, 비교 대상에서 제외한, 나의 주관적 평가다.

 

패션은 피곤한 장사다. 가계 가처분 소득의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먼저 받고, 날씨에 따라서도 실적은 들쭉날쭉한다. 그런데 지난 3년간의 변화는 그런 정도가 아니었다.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 직전까지 갔고, 원부자재를 비롯한 생산 비용이 치솟았다. 이자율과 물가 상승은 소비 심리를 얼어붙게 하고 있다.

 

고가 의류를 주로 파는 한섬은 그나마 경기 상황에서 자유롭다. 그러니, 좋은 수입 원단을 주로 써서, 잘 만들어 받을 만큼 받아온 한섬은 품질도 가격도 하향보다는 상향을 고수하는 전략을 택했을 것이다. 옷의 가격이 비싸진 건 당연하다.

 

그런데 팬데믹 기간 내수 소비 집중, 엔데믹 이후의 보복 소비는 그야말로 짧게, 지나가 버렸다. 2021년과 2022년 매출도, 이익도 두 자릿수 점핑했던 한섬은 올해 3분기 매출 5.1%가 줄었고, 영업이익은 무려 73%가 줄어, 작년 3분기 326억 원이던 것이 88억으로 쪼그라들었다. 영업이익률이 9.6%에서 2%가 된 것이다.

 

한섬은 그 원인으로 매출 감소와 신규 투자를 들고 있다. 원가 상승에 따른 생산비 부담이 늘고, 소비 심리 위축이 예상되자 올들어 한섬은 물량을 줄였다. 그런데 매출이 예상보다 더 줄다보니 영업이익이 감소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섬은 88년부터 97년까지, 우리 경제가 연 10% 가까운 성장률로 부흥을 달리던 시대에 연달아 4개 여성복을 런칭하며, 백화점 브랜드 시대를 연 장본인이다.

 

이미 20년도 전에 소재실의 전문 디자이너들을 통해 원단을 직접 개발했다. 트위드 원단 하면 ‘샤넬’을 떠올리지만, 한섬의 충성 고객들은 한섬이 직접 개발한 트위드 제품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여성복 업체들 대부분이 가방이나 신발을 외주 업체의 OEM으로 공급받아 팔 때 한섬은 잡화사업부를 만들었다. 잡화 브랜드 사업이 흥행하진 못했지만, 각 의류 브랜드의 구색으로 개발된 잡화 라인은 꽤 자리를 잡았다.

 

외환위기를 겪은 이후 생산비 절감을 위해 이곳저곳이 해외로 생산지를 이전할 때도, 당시의 정재봉 사장과 문미숙 감사는 생산 공장 대표들을 불러, “우리는 해외로 나가지 않는다”며 가족처럼 격려했다. 생산 현장의 관계자들도, 백화점 판매사원들도 한섬의 소속임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런 한섬이 올해의 위기를 단기적 상황으로 끝내버릴지는 지켜볼 일이지만, 기자의 생각은 다른 차원으로 나아간다.

 

2012년 1월 당시 정재봉 한섬 사장은 현대홈쇼핑에 자신의 지분 34.6%를 4200억 원에 매각했다. 당시 한섬의 주가는 3만550원으로, 현대홈쇼핑은 60% 할증된 가격에 경영권을 사들였다. 그런데 지금 한섬의 주가는 1만9천원, 올들어 최고점을 찍었을 때도 2만8,550원이었다. 시가총액은 4680억 원으로, 11년 전 현대홈쇼핑의 인수금액과 현재의 시가총액에 큰 차이가 없다.

 

현대홈쇼핑이 인수 당시 주당 가격의 160%에 지분을 사들인 것은 미래 확장성을 염두엔 둔 판단이었을 것이다. 15%도 안 되는 부채비율, 10% 수준의 영업이익률, 웬만한 변수에는 흔들림조차 없던 매출과 이익률, 그래서 당시 3만 원까지 올랐던 한섬의 주가에 대해서도 저평가되어 있는 우량주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현대의 기대와 달리, 현재 시장이 평가하는 한섬은 지난 11년간 그 확장성을 증명하지 못했다. SK로부터 인수해 한섬이 양수받은 브랜드들의 부진은 핑곗거리가 되지 못한다.

 

한섬의 역사에는 한국 패션 산업의 빛과 그늘이 모두 드리워져 있다. 정체성이 부족하다는 비판, 내수라는 한계에 갇힌 확장성 부재를 한섬 역시 돌파하지 못했다.

 

지금까지는 한섬의 능력 부족이기보다, 우리 패션 산업의 지리적, 시대적 숙명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압축 성장기, 유통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해야 했던 산업 환경에서 한섬도 자유로울 순 없었다. 명품에 버금하는 품질은 구현하지만, 끝내 벗어나지 못한 카피 브랜드라는 오명도 산업의 유산을 물려받지 못한 자들의 선택이라면 선택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숙명론이 더는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그 사이 내수 시장의 성격도, 국가 이미지와 국제 비즈니스 환경도 상전벽해 수준으로 달라졌다.

 

한섬은 이제 보여줘야 한다. 여기까지가 한섬의 한계라면 이는 국내 레거시 패션의 한계다. 이 시대를 돌파해야만 한섬은 한국 패션의 ‘클래식’이 될 수 있다.

 

박선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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