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서희] 4차 산업혁명과 예술

발행 2021년 07월 05일

어패럴뉴스기자 , appnews@apparelnews.co.kr

출처=게티이미지

 

지난 주에 나는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 국제 아트페어’에서 ‘4차 산업혁명과 예술’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게 됐다.


20년 넘게 브랜드 사업과 화가 활동을 겸해 온 나는 연관된 사업모델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4차 산업의 대표 모델인 메타버스(현실 세계를 의미하는 universe와 가공, 추상을 의미하는 meta의 합성어로 ‘3차원 가상세계’를 뜻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새롭게 출시되는 편리한 도구들에 평소에도 관심이 많은 나는, 초창기부터 업그레이된 VR 안경을 쓰고 3D 공간을 보는 것을 즐겼다. 처음에는 어지럽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러한 불편함들 대부분은 개선된다. 


세상은 거대한 조직이 다수를 이끌어가는 형세다. 2014년 페이스북은 가상현실을 만드는 오큘러스라는 기술회사를 인수했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바뀐 세상을 한 번 더 크게 바꾸는 이슈로, 다른 공간으로의 이동을 선택했다. 


앞으로 세상 사람은 어떻게 구분 지어질까. 가상현실 안경을 쓴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나뉘어질 것이다. 지금 SNS를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처럼 말이다.


메타버스에서 예술은 어떻게 진화될 것인가는 중요하게 숙고해봐야 할 문제다. 안경을 쓰고 가고자 하는 어느 공간에도 우리는 갈 수 있다. 아이슬란드에 갈 수 있고, 사하라 사막에서 캠핑하고 잘 수도 있으며, 백화점에서 신상품을 직접 고르고 입어볼 수 있고, 아트 페어에 가서 그림을 볼 수도 있다. 


앞으로 가상현실 속에서 우리는 안경을 쓴 삶이 진짜인지 안경을 벗은 삶이 진짜인지, 꿈이 진짜인지 아닌지 혼돈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마치 SNS 친구가 진짜가 아니라 여겨졌다가, 지금은 SNS 친구도 진짜인 것처럼 느껴지는 상황처럼, 진짜와 가짜가 무엇인지 혼란스러운, 온오프의 혼합된 삶처럼 말이다. 


우리의 삶은 IT와 기술의 발전으로 확장되어져 왔다. 그것이 반드시 삶이 풍요로워졌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기술 발전의 한 편에는 인간의 타고난 본능 즉, 타인과의 비교, 질투, 그리고 외로움이 있다. 그것을 어루만지는 반대편의 것들이 나는 예술과 종교라고 생각한다.


어떤 상황에서, 나의 최악과 상대의 최고치를 비교하다 보면 외로움이 드리워진다. 그러나 외로움을 표출하지 못한다. 특히 사회적 위치가 높을수록 호감을 얻지 못할 문제이거나, 사회적으로 불충분한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쉽지 않다. 그러므로 외로움은 모든 인간이 짊어진 공통된 숙명이다. 


최근 미국에서 45세 이상의 사람들에게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그들 중 1/3이 대인관계에서 외로움을 많이 느낀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평소 다른 이의 외로움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외로움을 잘 숨기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인간의 숙명임에도, 사람들은 자신이 외로움을 느낀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그것 자체를 부끄러운 일로 여긴다. 그래서 외로움의 치유는 기술적 치유가 아닌 인간 본성에 대한 예술적 치유로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4차 산업의 세상이 더 진전될수록 사람들의 외로움은 깊어질지도 모르겠다. 외로움이 깊어지면 병이 되고, 우울증, 자살로 이어지면 사회 문제가 된다. 인간이 살았던 모든 시대는 그 시대만의 고유한 문제들을 안고 있었다. 그런데 각기 다른 문제들 속에서 인간들을 어루만지고, 건져 낸 해답은 늘 비슷했다. 그 중 하나가 예술이다. 예술은 인간을 이해하는 수단이고, 삶을 긍정하도록 하는 통로다. 

 

 

오서희 몬테밀라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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