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기획 칼럼] 명품 브랜드의 가격 전략, 그 속살을 읽다
김홍기 패션 큐레이터

발행 2021년 09월 01일

어패럴뉴스기자 , appnews@apparelnews.co.kr

백화점과 가격표의 탄생

 

19세기 중엽 탄생한 백화점은 근대 소비를 발명한 기관이다. 백화점은 경제적 수준에 따른 계층(Class) 개념을 이용해 고객을 분류하고, 고객에게 쇼핑을 통해 자신보다 차상위 계층의 라이프스타일을 구매함으로써, 향상된 삶을 살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었다. 백화점 이전에는 소비자는 물건을 살 때마다 애를 먹었다. 제품에 가격표가 없다 보니, 매번 직원과 가격협상을 해야 했다. 가격흥정에 실패해 물품을 사지 못할 경우에도 가게에 협상비를 내야 했다. 백화점과 함께 모든 제품에는 가격표가 붙었다. 가격표는 17세기 퀘이커 교도의 발명품이다. 퀘이커 교도는 사람마다 다른 가격을 받는 것은 비도덕적이라고 생각했다. 19세기 미국 소매업의 혁신을 이끈, 메이시와 워너메이커는 자신의 이름을 딴 백화점을 만들면서 직원들을 자기 일처럼 나서서 흥정을 벌이도록 훈련시키기보다 처음부터 효율적으로 가격표를 부착한다. 이후 가격표가 소비에 미친 영향력은 지대했다.

 

명품 브랜드 로고

 

가격이 곧 인간의 품격?’

 

중산계층이란 개념은 백화점이 만든 창조물이다. 고객들은 사회 내에서 ‘어렴풋하게’ 형성중인 중산계층의 사회적 정체성을 소비를 통해 견고하게 만들고 싶었던 것. 19세기 사회학자들이 가격을 ‘정체성의 닻(Anchor)’이라고 표현하는 건 이 때문이다. 사회가 평준화되고, 유연해질수록 정체성을 만드는 일은 개인에게 중요한 프로젝트가 되었다. 가격은 이 프로젝트를 발전시키는 엔진이자 정체성을 지켜주는 방패 역할을 한다.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소스타인 베블런은 1898년 자신의 고전적 연구서 <유한계급론>에서 가격은 지위와 사회적 위신을 상징하며, 따라서 구매자에게 또 다른 심리적 효용을 제공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가리켜 베블런 효과, 혹은 속물효과라고 한다. 럭셔리의 경우 가격은 그 자체로 제품의 품질이자 고급스러움의 지표가 된다. 특정 상품은 가격이 오를수록 판매가 늘어난다. 벨기에의 명품 핸드백 제조사인 델보는 브랜드의 지위를 재조정하기 위해 가격을 전면적으로 올렸다. 이에 소비자들은 델보 백을 루이비통 핸드백과 동급으로 취급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판매량도 증가했다. 유명 위스키 브랜드인 시바스 리갈은 1970년대 상당한 부진을 겪다가 고급스러워 보이는 라벨을 개발해 출시하면서 20% 가량 가격을 인상했다. 위스키 자체는 똑같은 상품이지만 판매는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일러스트레이터 작가 메간 헤스의 '샤넬'

 

우리가 명품 전도사가 되는 이유

 

프리미엄 제품이나 사치재의 경우에는 이 같은 품격효과가 존재한다. 또한 높은 가격은 인간의 뇌에 위약효과를 발휘한다. 일명 플라시보 효과로 불리는 이것은 환자에게 의학적으로 아무 소용이 없는 약을 처방했음에도 환자의 증상이 개선되는 일을 말한다. 한 실험에서 환자들에게 각기 다른 가격의 진통제가 제공되었다. 한 그룹은 높은 가격의 진통제를, 다른 그룹은 낮은 가격의 진통제를 받았다. 양쪽 다 똑같은 비타민 C 영양제를 받았음에도 높은 가격의 약을 받은 그룹의 환자들은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약효가 좋았다고 대답했다. 반면 낮은 가격의 약을 받은 그룹은 절반만 약효가 있다고 답했다. 이 논리는 명품 브랜드 구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구매자들은 고가의 상품을 구매할 때, 더욱 적극적으로 자신의 소비를 방어하고, 그 이유와 서사를 스스로 만들어낸다.

 

 

샤넬 제품을 구입하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

 

샤넬을 향해 달려라!

 

코로나19의 매서운 여파로 국내 백화점 전체 매출은 전년 대비 9.8 퍼센트가 감소했다. 잡화와 여성 캐주얼, 남성 의류, 아동까지 전 제품군에서 두 자리 숫자의 감소세를 보이는 와중에도 명품 브랜드들만 15.1% 매출이 증가했다. 명품 브랜드들은 매년 3-4%씩 제품 가격을 높인다. 세계 경제와 화폐 가치의 인플레이션에 따른 조치다. 그런데 샤넬의 17-25%에 달하는 가격 상승 폭은 경제 논리를 벗어난다. 샤넬은 매년 두세 차례씩 가격 인상을 단행해왔다. 2017년에 3차례 인상, 2018년에는 4차례 인상, 2019년 3차례 인상, 코로나 사태가 터진 2020년에도 2차례 인상, 올해 2021년에는 이미 7월까지 3차례 인상했다. 그 결과 2017년 700만원 대 제품은 올해 1000만 원을 훌쩍 넘어섰다. 급격한 가격 상승 폭에도 불구하고 샤넬의 매출은 연일 상승곡선이다. 샤넬의 경우 매장을 오픈하자마자 물품구매를 위해 달려가는 ‘오픈 런’을 대행해주는 서비스까지 등장할 정도로 광풍을 불러왔다. 시장의 전체 흐름과 판이하게 흘러가는 상황을 이해하려면 명품 브랜드의 가격정책과 그 토대가 되는 전제가 일반 소비재와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자료출처=필웨이 / 이미지출처=샤넬

 

가격의 심리학

 

소비자는 가격을 토대로 나름의 가정과 연상을 한다. 가격은 제품이 우리에게 제공한 서비스에 대한 믿음을 형성하게 한다는 점에서 가격은 중요한 사회적, 심리적, 문화적 신호다. <소비사회-그 신화와 구조>에서 사회학자 장 보르리야르는 파노플리(Panoply)와 앵베스티스망(Investissement)이란 개념을 소개한다. 이 두 개념을 파헤치다 보면 명품 브랜드의 전략적인 가격정책의 뿌리에 닿게 된다. 파노플리는 프랑스어로 본래 기사의 갑옷과 투구 한 세트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이후 사람들이 어떤 특정 집단과 연대감을 과시하기 위해 구매하는 특정 제품, 특히 명품 브랜드의 쇼핑목록을 뜻하게 되었다.

 

보드리야르는 특정 제품을 구입함으로써 사람들이 특정 계층에 속한다는 환상을 품게 되며 이를 통해 심리적 만족을 얻게 되는 현상을 파노플리 효과라고 명명했다. 앙베스티스망은 프랑스어에서 투자의 개념 외에도 “어떤 대상이나 활동에 심적 에너지를 집중시키다”라는 정신분석학적 의미로도 쓴다. 현대 뇌과학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앙베스티스망은 샤넬 매장에서 밤새워 줄을 서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설명해준다. 패션매장 앞 대기행렬은 고도의 심리전이 펼쳐지는 전쟁터다. 줄서기는 성관계를 예로 들면, 전희 단계에 해당한다. 줄을 서면서 사람들은 흥분하고, 기대한다. 사람들은 매장 앞 줄서기를 보며, 해당 제품의 품질이 더 좋을 것이라 추정한다. 이에 맞추어 기업은 점포 내 줄서기 및 혼잡수준을 관리한다. 점포 내 한정된 공간에서 신체적 혼잡함을 느낄 때, 사람들은 눈앞의 제품이 한정되고, 희귀할 것이라고 믿게 된다. 이때 소비자의 뇌는 희귀한 것을 이번에 취득하지 못할까봐 두려움에 빠진다. 공포심에 근거한 사재기를 뜻하는 ‘패닉 바잉’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출처=샤넬 공식 홈페이지

 

당신만이 날 가질 수 있어!

 

샤넬 핸드백의 공격적인 고가정책을 읽기 위해선 현재 시장을 둘러싼 변화의 요소들을 함께 봐야 한다. 샤넬의 주 고객 중 신혼부부들이 많다는 점을 눈여겨 봐야 한다. 혼수예물로 기존의 보석 대신 명품이 증가하면서 샤넬의 핸드백은 기존의 예물을 대체하게 되었다. 두 번째로 주식투자를 할 때, 사람들이 가장 알고 싶은 정보가 무엇일까? 투자한 주식이 특정 시점에서 어디까지 오를 수 있을까에 대한 예측일 것이다. 샤넬 핸드백에 대한 투자는 매년 상향될 가격에 대한 신호를 보여줌으로써 소비자에게 투자 욕구를 불어넣는다. 고가 브랜드일수록 구매 후 중고시장에서의 재판매가격 유지에 신경을 쓴다. 잔존가치를 보장하기 위해 상품을 다시 사들이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최근 지난 5년 새, 재판매시장(Resale)의 안정적인 확대와 함께 샤넬의 핸드백은 5% 이상의 수익률을 보장하는 인기 품목이 되었다. 시차에 따른 ‘미실현 수익의 가능성’이 큰 투자품목이 된 것이다. 최근 샤넬의 시장전략은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의 그것을 닮아가는 인상을 준다. 역사적으로 19세기 중반 유럽의 귀족문화에 근거해 발전한 에르메스가 장인의 공방에서 고객의 요청에 따라 핸드메이드로 한정 생산을 해왔고, 이로 인해 발생한 독점성에 근거해 고가정책을 유지해왔다. 그런데 20세기 초, 대중 시장을 기반으로 삼아 등장했던 샤넬은 에르메스의 가격정책을 참조해 브랜드의 위상을 재정립하려는 시도를 한다. 에르메스의 엘리트층 고객들을 흡수하려는 것이다. 가격결정력은 회사를 평가하는 의사결정 중 가장 강력한 단일한 요소다. 샤넬의 공격적인 가격전략과 소비자들의 투자 욕구가 맞물려 만들어내고 있는 가파른 나선 구조의 광풍이 어디쯤에서 끝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현재로선 냉각기가 보일 기미가 없다.

 

김홍기 패션큐레이터

 



< 저작권자 ⓒ 어패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많이 본 뉴스 더보기

지면 뉴스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