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기] 문화, 패션을 움직이는 엔진

발행 2021년 12월 09일

어패럴뉴스기자 , appnews@apparelnews.co.kr

김홍기의 패션 인문학

 

출처=K-Fashion wearing a new future(해외 홍보원 간행 2012년 1월)

 

라이프스타일, 도시의 힘

 

매년 패션위크가 열리는 도시들은 새로운 트렌드를 선포하는 장소로 추앙받는다. 그들이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파리만 해도 루이 14세가 통치하면서 유럽의 각 궁정에 유행 패션을 제시할 힘을 갖게 된 것이다.

 

17세기 파리는 문화의 힘이 어떻게 패션의 원동력이 되는지 보여준다. 루이 14세는 국력은 ‘도시’에서 나오고, 도시를 만드는 힘은 라 모드(La Mode: 유행)에서 온다고 믿었다. 유행은 지속적으로 ‘새로움’을 사회 안에 불어넣는 장치다. 이를 위해 현대 마네킹의 효시인 판도라라 불리는 미니어처 인형에 파리의 최신 유행을 입혀 유럽 각국에 보냈다.

 

패션 매거진도 당시 최첨단의 동판인쇄를 이용해 발간했고, 유적지 설명으로 채워진 다른 나라의 여행 가이드북에 비해 파리는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녹여낸 여행책을 만들었다. 그 속에는 오늘날의 핫플레이스, 당신이 죽기 전에 맛보아야 할 요리, 헤어 스타일을 바꿀 수 있는 곳 등의 소제목이 붙었다.

 

이러니 유럽의 여행객들은 파리의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하는 게 평생소원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파리에 대한 ‘서사’가 만들어졌다. 이를 통해 파리는 도시 내 패션 제조업이 성황을 이뤘고, 우수 장인만 선별해 만든 동업조합이 생겼으며, 예술 문화계의 트렌드를 이끌었다. 이탈리아가 원조였던 오페라와 발레는 파리의 발명품으로 인식될 정도였다.

 

포르투갈과 스페인, 스웨덴, 독일 등은 프렌치 스타일을, 배워야 할 삶의 표준방식으로 모방했다. 타인의 탐스러운 삶은 모방하고 싶은 라이프스타일이 된다는 패션계의 명언을 이보다 정확하게 반영하는 역사적 사례도 없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인기를 끌던 당시, 한국 패션의 힘을 해외에 홍보하기 위해 2012년 나는 ‘K-Fashion wearing a new future’라는 책을 영문으로 썼다. 이때만 해도 우리는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란 구호에 갇혀 한국 전통 모티브와 색감을 적용한 패션을 소개하기 바빴으며, 결과적으로 한국패션은 이국적 매력이 담긴 에스닉 패션의 일부로 서구에 소개되었다. 한마디로 서구가 상상하는 동양의 이미지를 재현하는 오리엔탈리즘에 묶여버렸다.

 

 

출처=BTS 공식 트위터, 아마존 '오징어게임' 제품

 

패션이 한류를 넘으려면

 

이후 시간이 흘렀고, K-팝은 세계를 흔들고 있다. BTS는 유엔총회에서 사랑의 메시지를 전했고, 블랙핑크는 유튜브 최다 구독자 그룹을 갖게 되었으며, 드라마 오징어 게임과 지옥은 넷플릭스 1위를 차지했다. 미국의 인기 TV 프로그램 ‘The Masked Singer’는 한국 ‘복면가왕’의 포맷을 수입했다.

 

최근 한국의 문화 자본은 K-팝을 넘어 패션 산업과 융합하고 있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열기는 패션계로 번져서 미국 아마존에서 판매되는 오징어 게임 관련 상품이 2만 개인데 그 중 절반이 옷이다. 로맨틱크라운, 어피스오브케이크 등 다양한 브랜드가 한류 콘텐츠를 등에 업고 해외 진출에 성공했다. 이들은 특정 채널을 사용하지 않고 고객과 직접 만나는 DtoC 방식으로 브랜드를 알리고 있다.

 

패션산업은 한류 콘텐츠를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 해답을 구하기 전에, 20년 전까지 아시아에만 머물던 한류 콘텐츠가 어떻게 세계인의 마음을 얻게 되었나 하는 질문부터 해야 한다.

 

최근 런던 킹스 칼리지의 국제관계학 교수 라몬 파체코 파르도는 포츈(Fortune) 지의 기고문에서 이 질문에 “소셜 미디어와 보편적인 소재의 융합”이라고 답했다. 과거 지역 및 문화별 필터링이 존재했던 전통 미디어에선 문화적 장벽을 넘기 어려웠지만, 소셜 미디어를 통해 한국의 콘텐츠는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면서 힘을 얻었다.

 

여기에 드라마 오징어 게임, 기생충과 같은 영화, BTS의 음악 모두 빈부격차와 차별, 공정, 사랑과 같은 전 세계적으로 등장하는 보편적 주제를 다루었다. 다만 가치를 전하는 서사의 맥락에 한국적 상황만 녹여낸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삶에서 직면한 것을 풀어낸 멜로디와 서사가 세계적 공감을 얻은 것이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은 한국도 세계의 중요한 구성원이며, 지구적 문제를 선한 영향력으로 이끌고 싶은 일원임을 소통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최근 각 기업들이 만들기 시작한 브랜디드 콘텐츠도 이런 사회적 공감을 담아내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홍기 패션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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