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기고] 타인의 탐스러운 삶은 럭셔리가 된다
김홍기 패션 크리에이터

발행 2023년 09월 03일

어패럴뉴스 , appnews@apparelnews.co.kr

 

 

럭셔리는 어떻게 태어나는가? 16세기 서구를 뒤흔든 향신료와 설탕, 20세기의 프랑스 와인을 생각해보라. 세상의 모든 럭셔리는 새로운 감성과 욕망의 근원이 되는 새로운 문화로의 접근에서 나왔다. 이국적 문화와 상품을 제시할 때 신규시장이 열렸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보지 못한’ 타인의 탐스러운 삶과 문화를 동경한다. 문화는 럭셔리를 이끄는 가장 강력한 엔진이며, 원산지의 작은 문화적 환상이 뒤따른다. 시대별로 문화에 대한 탐닉은 그 양상이 달랐다.

 

18, 19C·, 유럽을 사로잡다

 

18세기는 중국의 시대였다. 중국의 물품이 유럽에 수출되며 이국적인 스타일의 무늬와 텍스타일이 복식과 염색, 건축, 회화, 정원, 가구 등에 영향을 미쳤다. 이를 시누아즈리Chinoiserie라 불렀다. 중국 취향이란 뜻이다. 동양풍의 모란꽃 무늬, 용과 개, 불사조 문양은 중국을 서구에 소개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하며 서구가 동양풍 패턴과 디자인을 받아들이는 이유가 되었다. 중국풍은 일반 인테리어와 가구, 패션 소품, 심지어 차구 세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품으로 파리를 강타한다. 19세기에는 일본적인 모든 것에 대한 집착이 전 유럽을 강타했다. 일본 에도시대가 막을 내리고 구미 열강에게 문호를 개방하며 당시 유럽에 일본의 문물이 전해진다. 일본의 교역 물품인 도자기를 싸던 우키요의 판화는 서민의 생활을 주제로 한 회화의 양식인데, 반 고흐와 모네, 마네, 르누아르 등 화가들은 원근법을 무시한 비대칭적 화면구성, 사물의 배치 방식 등에 매료됐다. 일본의 독특한 미학이 전달된 것이다. 유럽 가정에는 카펫 대신 일본식 깔개, 일본풍 무늬가 새겨진 슬리퍼, 가구와 인테리어가 스며들었다. 집안에서 여성과 남성들은 기모노를 라운지웨어로 입었다.

 

 

한국 문화, 패션을 견인하다

 

최근 필자는 대만 패션위크의 연사로 초청을 받았다. 한국 패션의 힘과 서울 패션위크에 관해 깊은 성찰을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대만과 싱가포르가 K 패션매출의 80%를 차지하는 작금, 이런 주문이 무리가 아닐 것이다. 동남아 시장에서 2019년 대비 한국패션상품 주문량이 10배 이상 늘었다.

 

K패션을 선호하는 이유는 다양한 상품과 스타일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 합리적 가격에 비해 고품질인 점, 무엇보다 한류 스타들이 광고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최근 ‘한복상점 2023’에 들렀다가 한복매장에서 실제로 피팅을 하고 실제 구매를 하는 이들은 주로 외국인들이란 점에 놀랐다. 최근 한국 패션을 보면, 18세기 중국, 19세기의 일본을 넘어 문화적 다양성의 힘을 보탤 나라는 다름 아닌 한국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탐스러운 삶이 우리를 이끌 때

 

한국의 이런 모습은 2차 세계대전의 주축국으로 패전 후 디자인의 이름으로 부활한 이탈리아의 면모를 닮았다. 이탈리아는 18세기부터 프랑스의 생산기지였다. 르네상스 시기부터 축적해온 장인의 제조 기술과 저렴한 노동력은 프랑스 제품보다 합리적 가격과 고품질의 제품을 내놓으며 미국시장과 일본을 사로잡았고, 잿더미가 된 이탈리아의 곳곳은 리얼리즘적인 이탈리아 영화를 통해 알려졌다. 그들의 서사는 영웅보다 소시민의 삶을, 가족애의 방식을 보여주었다.

 

지금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경제적 정의, 사회 환경에 대한 날카로운 논평을 하면서도 성공적인 이유는 이것이 ‘인간의 보편적 삶’이 지향해야 할 서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문화의 면면이 ‘탐스러운’ 삶의 문법으로 각인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디즈니플러스에선 650억을 들인 생활밀착형 히어로물 드라마 <무빙>이 인기몰이 중이다. 강풀의 원작 웹툰은 서구의 슈퍼 히어로물과 다른 결을 가졌다. 무엇보다 한국의 현대사와 그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우리의 이야기’가 서사의 중핵이 되고 한국의 사회적 맥락이 서사적 매력의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탐스럽다’의 탐(貪)은 무언가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함을 뜻한다. 한국의 미학과 서사, 역동성의 면면이 ‘메이드 인 코리아’의 층위에서 여러 갈래 길로 확산되는 이 기적의 순간을 전 세계가 향유하고 있다.

 

김홍기 패션 큐레이터

 



< 저작권자 ⓒ 어패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면 뉴스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