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낙삼] 패션의 가치를 재창조하는 ‘패션 온 디맨드’

발행 2021년 10월 28일

어패럴뉴스기자 , appnews@apparelnews.co.kr

최낙삼의 ‘포스트 리테일’

 

1995년 우리나라에 케이블 TV가 방송을 시작하면서 VOD(Video On Demand)라는 서비스가 제공되기 시작했다. 통신망을 통해 사용자가 요구하는 영상을 사용자가 원하는 시간에 제공해 주는 맞춤 영상 정보 서비스인 VOD는 ‘주문형 비디오 조회 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빠르게 확산됐다. 이전까지 방송 영상은 공중파 사업자들이 자신들의 필요와 분석에 따라 편성해 일방적으로 송출하면 시청자들은 그 시간에 맞춰 수신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VOD는 당시만 해도 당연하게 여겼던 ‘시청자가 원하는 개별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서는 방영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개념이, 고객 가치 창출의 한계라 인식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에 착안, 전화 회사들이 경쟁적으로 연구·개발해 냄으로써 일방적 송출이 아닌 ‘시청자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통신의 하나’로 방송을 변모하게 했다.

 

패스트 패션 브랜드 로고

 

코로나 이전의 패션업계는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의 시대였다. 이들은 소비자들의 수요나 반응과는 상관없이 자신들이 짜 놓은 프로그램에 의해 쉴 새 없이 새로운 제품들을 쏟아 냈다. 다양한 스타일과 상반된 소재, 반짝거리는 스팽글이 달린 옷들은 단숨에 세계 패션 시장을 장악했다. 이들은 ‘재생산은 없다’는 모토로 ‘있을 때, 봤을 때 구매하라’고 외쳤다. 환경문제가 대두되자 이들은 관련 규제가 비교적 허술한 저개발 국가로 생산처를 옮기며 값싼 노동력을 기반으로 ‘대량 생산’과 ‘저렴한 옷값’으로 자신들의 여전함을 과시했다. 그러는 동안 패션산업은 과잉 소비와 과잉 생산의 배후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고 환경은 물론 때때로 인권의 파괴자로 지목되기에 이른다. 맥킨지에 따르면 패션 산업은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10%를 차지하고 있고 여전히 어린이와 여성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

 

팬데믹은 패스트 패션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줬다. 집에 묶인 소비자들이 옷을 사지 않자 창고에는 재고가 넘쳤고, 저개발 국가의 공장들이 폐쇄되면서 공급망에 문제가 발생했다. 기업의 지속 가능은 물론 고객의 가치창출에 한계점이 드러난 것이다.

 

패션업계에 새로운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환경과 인권 문제는 물론 공급망 해결을 위한 ‘온디맨드(On Demand)’방식이 용기 있는 브랜드들에 의해 선택되고 있다. 주로 스타트업들이 주도하고 있는 이 방식은 패션 온 디맨드(Fashion On Demand)라고 불러야 할 듯하다.

 

온디맨드란 제품이 필요할 때만 만드는 생산 방식으로 구매가 확정되면 이후 생산이 진행된다. 전체 생산 과정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관리되는데, 구매가 먼저, 생산은 나중이며 물건은 팔린 만큼만 만든다.

 

원활하게 옷을 판매하기 위해 짧으면 6개월에서 1년 전 해외 공장에 주문을 넣던 코로나 이전의 생산 모델과는 반대로 철저하게 수요 중심으로 움직인다. 주문이 들어오면 주문서를 제조 공장에 보내고, 제조 공장에서 옷이 만들어지면 옷은 창고를 거치지 않고 바로 고객에게 배송된다. 재고가 있을 수 없다.

 

출처=THE KIT

 

미국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 레베카 밍코프(Rebecca Minkoff)와 ‘당신은 이미 충분한 베이직 아이템을 가지고 있다’고 고객을 설득하는 '더 키트(thekit)'는 온디맨드 제조업체인 레저넌스 컴퍼니(Resonance company)를 통해 디자이너 라인 제품을 온디맨드 방식으로 생산하고 있다.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한 프린팅 기술을 개선해 프린팅에서 의류제조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는 온디맨드 제조업체인 구텐(gooten)은 물론 패스트 패션을 대표하는 H&M그룹의 산하 데님 브랜드인 위크데이(Weekdsy)도 3차원 스캐닝 기술 회사와 손잡고 온디맨드 방식을 실험 중이다.

 

온디맨드 방식을 시도하는 새로운 패션기업들은 전통적인 의류 제조 공정보다 잉크와 물의 사용을 30% 이상 줄일 수 있다. 레저넌스 컴퍼니는 흰색 원단만을 사용하고 디지털 인쇄를 통해 색상과 무늬를 입힌다. 로봇이 프린트된 부분만 커팅함으로써 버려지는 옷감도 획기적으로 줄였다. 또 생산 기지를 본국으로 회귀시키는 리쇼어링shoring)을 통해 자국 내 사라진 패션 공급망을 재구성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패션산업이 서서히 그 방향으로 움직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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