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 자본주의에서 천사 자본주의로 전환[1]
김호종의 ‘총, 균, 디지털’

발행 2021년 04월 29일

박해영기자 , envy007@apparelnews.co.kr

 

"여성과 노예의 본성은 시민이 되기에 적절치 않다. 그래서 노예제는 자연스러운 제도이고 따라서 선하고 정당하다”. 서양 철학의 시조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제를 공공선으로 봤다. 생산수단으로의 노예 경제는 1863년까지 무려 2000년 동안 지속됐고, 법, 도덕, 종교는 이런 것들을 정당하다 여겼다.

 

현 시대 보편적 인권 개념은 “인간은 그 자체가 목적이어야 하고, 인간의 존엄성은 무엇보다 존중받아야 한다”는 칸트의 인간 존중 철학과 통한다. 하지만 아직도 개발도상국에서 아동 노동과 노동 착취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자유 방임 경제의 도덕적 한계는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ESG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규정하고, 측정하며, 포상하는 가치의 지표가 된다. ESG의 기본 정신인 ‘기업 필로티미(Philos 사랑, Timi 명예)’ 에는 정직, 존엄성, 품위, 이타심, 그리고 고결한 삶이라는 공공선의 가치가 있다.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 중 특히 지배구조(Governance)는 경영진의 의사결정이 전체 주주와 사회 공동체의 이익을 중시하는지에 대한 지표로 공정성과 절차의 투명성을 다룬다는 점에서 가장 중요하다.

 

하버드 정치 철학 교수 마이클 샌델은 그의 명저 ‘정의(Justice)’에서 평등주의자 존 롤스를 통해 부의 독점을 당연시하는 ‘능력 위주 이론’에 질문을 던진다. 예를 들자면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2020년 한 해 동안 상금과 광고 수익으로 660억 정도를 벌었고, 그의 자산은 1조 원에 이른다. 그는 골프 신동이었고 특출한 재능을 갖고 태어났다. 대부분의 재능에는 육성과 개발이 필요하듯, 그 재능을 키워준 훌륭한 아버지가 있었고, 가까이 있는 골프장, 금전적인 지원 등의 좋은 사회, 가정환경이 있었다. 또 4센티 정도의 작은 공을 멀리 보내고, 10센티 정도의 홀에 볼을 넣는 능력에 후한 포상을 주는 시대에 태어난 것도 행운이었다.

 

존 롤스는 ‘타고난 환경과 재능은 노력의 결과가 아니다. 누군가 사회에서 성공했다는 것은 우연히 주어진 선천적, 사회적 환경의 결과이지, 그 자신의 영광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소득, 재산, 기회의 불균형이 ESG 같은 시스템을 통해 공동의 이익으로 전환될 때 분배의 정의가 실현된다고 본 것이다.

 

우연히 결정된 것이라는 점에서 ‘인종의 위계질서’와 ‘부의 위계질서’ 또한 다르지 않다.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시아인을 향한 무차별 테러와 ‘부’라는 단일 기준으로 누군가를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인격의 미성숙’은 동일하다. 대부분의 부자가 부유한 이유는 그저 부잣집에 태어났기 때문이고, 가난한 사람이 평생 가난하게 사는 것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은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현재 우리나라 기업은 부를 물려받은 2세, 3세, 4세 경영으로 바뀌고 있다. 조직은 리더를 닮는다. 특히 한국 기업의 정서는 리더가 법이고, 주주총회나 이사회같은 견제 장치도 브레이크 역할을 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 기업의 공정성과 투명성은 리더의 의식 수준만큼 만 공정하고 투명하다. 그리고 그 투명하게 맑은 물에는 쉬리 같은 특급 인재들이 모여든다.

 

이제 기업은 시장 점유율과 이익 극대화를 넘어 사람과 사회 공동체의 문제를 풀면서 이익을 내야 한다. 생수병 리사이클로 환경에 올인하는 것 외에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오래 실천해온 유니레버나 네슬레 같은 기업의 상생, 윤리, 환경, 준법 사례에서 영감을 얻을 수도 있다.

 

가장 존경받는 기업(World’s Most Admired Companies),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Best Companies to Work For), 세상을 변화시키는 기업(Change the World) 리스트가 해마다 발표된다. 우리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김호종 오쏘엔코 씬다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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