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환] 명품과 라이프스타일

발행 2022년 09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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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환의 ‘명품의 탄생’

 

출처=구찌

 

나에겐 회사 동기로 만나 이제는 가장 친한 호모 사피언스가 된 형이 한 명 있다. 그 에게는 불치병이 있는데 이른바 ‘장비빨’이다.

 

어떤 취미가 생기면, 그는 일단 최고의 장비를 갖추는 데 집중한다. 포멀 웨어에 관심 있을 때는 넥타이를 뭉텅이로 샀고, 스키가 취미일 때는 국가 대표급 스키 장비를 갖췄다. 최근에는 골프를 좋아하는데 문외한인 내가 듣기론 해박함이 프로선수를 넘어선다. 이런 고객이 많으면 참 장사하기 쉽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장비빨’과 유사한 성향을 공략하는 전략은 명품 산업에서 종종 발견된다. 골목 상권 침해라 볼 수 있는 명품의 카테고리 확장이 그것이다. 취미(스키, 골프)가 있어야 할 자리에 명품 이름을 넣으면 ‘장비빨’을 가진 고객들은 흔들린다.

 

여성복의 대명사인 디올은 이제 ‘디올옴므’를 넘어 ‘파인주얼리’까지 손을 뻗쳤다. 디올의 고객은 자신이 좋아하는 브랜드의 아이템 확장에 따라 본인의 쇼핑 아이템을 확장한다. 핸드백-여성복-남성복-주얼리가 일반적인 확장 공식이다. 물론 벨루티와 같이 남성 슈즈에서 남성 RTW로 확장하는 경우도 발견되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 카테고리 확장은 명품 브랜드의 특기이자, 요즘 트렌드다.

 

이제 그들이 새롭게 도전하고 있는 카테고리는 홈리빙 즉 라이프스타일이다.

 

펜디와 알마니는 그 역사가 오래되었고 구찌와 디올은 무서운 속도를 내고 있다. 백화점의 남성층과 같이 라이프스타일 플로어도 명품에 공략당할 날이 머지않았다.

 

이러한 변화는 긍정, 부정의 여론과는 상관없이 일어날 현상이지만, 모든 층에 동일 브랜드의 카테고리별 매장이 즐비하게 자리 잡은 백화점은 정말 재미없을 것 같다. 조금이라도 재미있는 백화점이 되기 위해서는 남녀성 의류에서와 같이 세컨티어 명품브랜드와 신진 디자이너를 모은 규모 있는 플랫폼, 즉 멀티숍이 필수적이다.

 

위에 언급한 펜디, 알마니, 구찌, 디올 뿐만 아니라 고객들의 브랜드 인지도나 로열티가 그에 미치지 못하는 세컨티어 명품도 최근 트렌드의 중심인 라이프스타일 아이템을 생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은 백화점에서 라이프스타일 단독 매장을 얻지는 못할 것인데, 이때 명심해야 할 교훈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이다. 기존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와 세컨티어 명품 브랜드가 뭉쳐서 구성한 멀티숍으로 명품의 골목 상권 침범에 맞서야 한다.

 

라이프스타일 멀티숍 탄생의 또 다른 성공 요소는 단기 매출압박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도전하는 백화점의 결단이다.

 

내가 주니어로 갤러리아 명품관에 근무할 때 선배들에게 수없이 들었던 말이 ‘명품관의 MD는 호랑이 등에 탄 MD’라는 것이었다. 호랑이 등에 타서 한 몸이 된다면 누구도 견줄 수 없는 무서운 MD가 되지만, 그만큼 등에서 떨어지기도 쉽다는 뜻이다.

 

남들과 똑같은 MD를 하면 살아남을 수 없었던 갤러리아 명품관의 역사가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이제 나는 현장 실무자 역할이 줄어든 상황이지만, 나의 사랑하는 후배들이 갤러리아 명품관을 재미없는 백화점이 아닌, 재미있는 백화점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래야 모든 층에 같은 브랜드가 들어선 백화점에 서서 식은땀을 흘리는 악몽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니.

 

마침, 어패럴뉴스가 창간 30주년을 맞았다고 하니, 인사 없이 지나치기가 아쉬워 지면을 빌어 몇 자를 보탠다. 22년간 백화점 바이어로 일하며 먹고 사는 일을 도와준 어패럴뉴스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50주년, 100주년이 되도록 건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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