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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 더현대 서울엔 ‘장강(長江)의 푸른 물’이 흐른다

발행 2023년 05월 30일

박선희기자 , sunh@apparelnews.co.kr

 

사진=게티이미지

 

사람의 몸은 2D가 아니고, 3D다. 앞뒤만 있는 게 아니라 옆도 있고, 모든 선은 곡선이다. 그래서 동그란 몸통과 팔, 다리의 입체감을 잘 살린 옷은 사람의 몸을 근사해 보이도록 만든다. 그 기술이 다름 아닌 입체 패턴이다. 눈에는 예쁜 보세 옷이 막상 입었을 때 영 별로인 이유는 입체 패턴이 아니기 때문이다.

 

컬러는 자연에 가까울수록 고급스러워 보인다는 사실도 언젠가 깨닫게 된 것인데, 그 색감은 염료보다 염료를 먹이는 원단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이따금 유럽 브랜드의 컬러에 감탄하며, 왜 우리는 저 컬러만큼은 따라가지를 못할까 궁금했었는데, 그 결정적 이유 중 하나가 유럽의 비옥한 땅에서 나는 풍부한 천연 소재 덕분이라는 사실을 지금은 알고 있다.

 

결국 잘 만든 옷의 결정적 요소는 패턴과 소재인 것이고, 좋은 패턴과 소재의 옷은 당연히 가격이 비싸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고, 인건비와 재료비를 치러야만 ‘좋은 옷’은 완성된다.

 

이러한 짧은 직업적 지식과 믿음을 가진 기자가 오랜만에 더현대 서울에 갔다. 자사몰과 직영점 하나로 대박을 냈다는 여성복 브랜드가 더현대 서울 매장에서만 연 매출 100억 원을 바라본다고 해서 직접 확인하러 갔다. 온 동네를 넘어 해외에서까지 찾아온다는 더현대 서울 지하 2층에 모여 있는, 요즘 월 매출 수억 원을 올린다는 소위 ‘라이징 스타’들도 직접 보고 싶었다.

 

우선 그 100억 원을 내다본다는 매장에 갔다. 매장 행거에 걸려 있는 옷은 50벌이 채 되지 않았다. 시착을 해보겠다 했더니 번호표를 줬다. 그리고 한 번에 단 두 벌만 착용해 볼 수 있다고 했다.

 

매장에는 20대 초중반 여성 고객들이 많았다. 그들은 이 운영 방식을 이해하는 듯 했는데, 거기에 다른 큰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오프라인 매장이 없다 보니 고객이 몰리고, 피팅룸은 한정되어 있다 보니 그런 방도를 만들어낸 것이다.

 

옷은 딱 이랬다. 기존 영캐주얼 대비 절반 가격의 ‘여성스러운’ 옷이다. 아, 이 시장이 얼마나 오랫동안 비어 있었던가.

 

펑퍼짐한 오버핏의 유니섹스 캐주얼, 백화점 여성복의 품질과 가격의 비대칭, 보세의 참을 수 없는 저렴함. 그 사이에서 방황해 온 2030 여성들의 팬덤이 이 브랜드의 신드롬급 인기의 원인이라는 판단이 내려졌다.

 

여전히 그 브랜드의 매출이 이해가 안 간다면, 백화점 2층 영캐주얼의 메인 고객이 40~50대라는 얘기가 20년 전부터 상식이었다는 사실을 돌아보면 된다. 그러니 브랜드 브로셔에 적힌 메인 타깃 ‘20대’들은 모두 어디에 있었겠나.

 

사실 상품은 아슬아슬했다. 냉정히 말해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에 있는 느낌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 상품에 그 가격은 납득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옆옆에 삼성의 ‘구호플러스’가 있다. 레거시 기업이 ‘요즘’ 브랜드를 만들어 성공시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옷을 입어봤다. 역시 프로들. 당연히, 100억을 바라본다는 브랜드 대비 가격은 두 배다.

 

열 곳이 넘는 매장에 손님처럼 머무는 동안 흥미로운 풍경들이 눈에 박혔다. 10대 남자아이들이 떼를 지어 쇼핑하는 모습을 내가 지난 20년간 백화점에서 본 적이 있었던가. 소울풀한 캐주얼을 멋지게 소화한 엄마와 딸, 아들이 옷을 신나게 옷을 고른다. 엄마는 기자 또래의 X세대, 아이들은 Z세대일 터이다.

 

지하 2층 공간 전체에 가득한 힙한 감성, 흥겨운 분위기도 신용카드를 꺼내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같았다. 손님을 졸졸 따라다니며 숨 막히게 하는 판매사원은 없었다. 그들은 모두 ‘쿨’했고, 바빴다.

 

X세대가 20대 중후반이 되던 2000년대 초중반 국내 캐주얼 시장은 빅뱅 수준의 폭발적 성장을 이뤘다. MZ가 주역이 된 지금 영패션 시장이 그 비슷한 국면을 맞고 있다.

 

사장님은 회식 자리에서 늘 말씀하셨다. “장강의 푸른 물은 뒷 파도가 앞 파도를 밀어내며 흐른다”고.

 

박선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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