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디렉팅 리더십’의 재건

발행 2023년 09월 18일

오경천기자 , okc@apparelnews.co.kr

 

(왼쪽부터)코오롱FnC '아카이브앱크' / LF '던스트' / 삼성물산패션부문 '샌드사운드'

 

코오롱, LF, 삼성 등 벤처式 브랜드 육성으로 DNA 이식

창의적이고 유연한 뉴 제너레이션 디렉터들 글로벌 질주

 

[어패럴뉴스 오경천 기자] 2019년 7월 코오롱인더스트리FnC부문은 ‘프로젝트그룹’이라는 사내 벤처 개념의 조직을 만들었다. 빠르게 변화하는 패션 시장의 트렌드와 새로운 환경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자 기존과는 다른 조직 운영의 시험에 들어간 것이다.

 

이 조직의 핵심은 기동력, 즉 빠른 의사결정이다. 복합한 결제 구조를 가진 일반적인 패션 조직과는 달리 젊고 간결한 구성을 통해 탄력적인 실행을 목표로 한다. 실무자 중심의 수평적 팀 문화를 바탕으로 브랜드별 독자적인 책임과 권한을 갖는다.

 

업계에서는 패션 사업에 대해 흔히 ‘오너 사업’이라고 이야기한다.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상황에 따른 판단력과 추진력 등 감각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패션 기업들은 정형화된 시스템을 기반으로 조직원들의 성과와 책임에만 의존하고 있다. 패션의 브랜딩과 영속성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디렉팅 리더십은 부재인 경우가 허다하다.

 

최근 패션 업계는 신흥세력들이 급부상하고 있다. 인터넷의 발달과 스마트폰 시대를 거치며 판로는 다양해졌고, 시장의 진입 장벽도 낮아졌다. 이로 인해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획력을 가진 뉴 디렉터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기존 패션 비즈니스의 틀에서 벗어난 유연한 사고와 시각으로 국내는 물론 글로벌 시장까지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다.

 

사진=볼디스트

 

코오롱FnC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프로젝트그룹을 만들었다. 아카이브앱크, 24/7(이사칠) 등 2개 브랜드를 시작으로 하이드아웃, 아모프레, 볼디스트, 더카트골프, 리멘터리 등 줄줄이 신규 사업을 내놓고 있다.

 

그리고 올해 아카이브앱크, 24/7, 하이드아웃 등 3개의 브랜드가 사업부 소속으로 편입됐다. 충분한 시장성 점검이 끝났고, 본격적인 확장이 가능하다는 판단.

 

‘더카트골프’도 대표적인 성과다. 2020년 런칭해 3년 만에 국내 골프 시장의 대표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작년 월평균 40억 원 이상의 거래액을 기록했다.

 

이러한 조직 문화는 기존 조직에도 영향을 미친다. 코오롱FnC의 각 사업부는 과거와는 다르게 유연한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으며, 이러한 결과는 매출성장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미래의 성장 동력은 ‘콘텐츠’에 앞서 속도와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디렉팅 리더십’이라는 판단이 들어맞았다.

 

이러한 변화는 코오롱FnC만이 아니다. LF와 삼성물산패션부문 등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LF는 2019년 사내벤처 육성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자율적이고 전문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한 지배구조 체계를 확립해 빠르고 유연한 벤처의 문화와 정신으로 급변하는 환경에 대응하고 경영 효율성을 높인다는 전략이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던스트’다. LF는 ‘던스트’ 육성 2년여 만에 자회사 씨티닷츠를 설립하고 분리해 본격적인 육성을 시작했다. 지난해 씨티닷츠가 올린 매출은 265억 원.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지만 40억 원의 수익을 내는 등 성장과 효율을 동시에 이뤄내고 있다. 올해 1분기에는 전년 동기간 대비 47% 증가한 81억 원을 기록했다. 연 매출은 400억 원 이상이 기대된다.

 

LF는 씨티닷츠를 통해 남성복, 여성복 등 신규 사업을 추가로 런칭하며 기업의 미래성장동력을 확보하는 플랫폼으로 육성하고자 한다. 특히 국내는 물론 글로벌 온라인 플랫폼으로 유통을 확대하는 등 기존과는 다른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삼성물산패션부문은 전략기획실 산하에 신사업개발팀을 만들고, 신규 사업 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샌드사운드, 디애퍼처 등이 대표적이다. 기동력을 기반으로 빠른 실행과 성과가 이어지고 있다.

 

한 패션 업계 관계자는 “세계화를 시작하고 있는 국내 패션 산업에서 독창적인 브랜딩 전략은 주요 과제이며, 이를 위한 디렉팅 리더십은 필수다. 그동안 국내 패션에서 부재였던 디렉팅 리더십을 다시 주목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사진=파타고니아

 

“새로운 명품의 기준은 독창성과 창의성”

 

유통에서 브랜딩의 시대로

 

국내 패션 산업은 90년대를 전후로 맞춤복에서 기성복 시대로 바뀌었다. 패션 프랜차이즈화가 시작됐고, 이는 ‘누가 더 잘 만들어서 많이 파느냐’의 생산과 마케팅, 유통의 경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지금, 산업에서는 한 단계 진화된 기성복 시대를 요구하고 있다. 치열한 무한 경쟁 시대를 마주하고 있는 패션 시장에서 소비자들과의 지속적인 호흡을 위한 브랜딩이 강조되고 있다.

 

브랜딩이란 소비자와 소통하며 브랜드에 대한 가치와 이미지를 부여하는 모든 과정을 말한다. 예를 들어 ‘탄산음료’ 하면 ‘코카콜라’가, ‘콘솔 게임’ 하면 ‘닌텐도’가 떠오른다. 패션에서는 친환경의 아이콘 ‘파타고니아’, 모자의 아이콘 ‘MLB’와 ‘뉴에라’ 등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이러한 브랜딩은 사업이 지속 가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며, 또 같은 소재, 같은 공장에서 제품을 만들더라도 나만의 가격 기준을 만드는 힘이다.

 

중요한 것은 브랜딩에는 지속적인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 특히 새로운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젊은 세대들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브랜딩에 대한 투자가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 ‘나이키’와 ‘코카콜라’ 등 전 세계를 대표하는 브랜드들이 마케팅에 가장 많이 투자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패션 업계의 꼭지점인 명품들도 새로운 소비층 공략을 위한 차별화된 브랜딩 전략에 주목하고 있다. ‘베트멍’의 공동 설립이자 ‘발렌시아가’가의 CD를 맡고 있는 뎀나 바질리아는 “명품의 기준이 장신정신과 품질에서 이제는 독창성과 창의성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독보적인 품질과 명성을 앞세운 품격과 권위적인 브랜딩이 아닌 소비자들의 원하는 트렌디한 브랜딩 전략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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