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배너 이미지

데스크 칼럼 - 회장님은 대리점을 먹여 살리지 않았다

발행 2021년 06월 24일

박선희기자 , sunh@apparelnews.co.kr

 

지금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하지만, 80년대 초 처음 생겨나기 시작한 의류 대리점, 프렌차이즈 매장은 패션 유통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사람들에게 의류 ‘브랜드’를 각인시키고, 대중화를 견인했다.

 

이랜드가 80년대 초 프렌차이즈 유통을 도입할 당시만 해도 의류 유통의 70% 가량을 재래시장이 담당했다. 대형유통은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몇 곳에 있는 백화점이 유일했고, 부자들만을 위한 유통이었다. 당시 한국 시장은 대기업과 글로벌 브랜드, 그리고 동남대문 새벽시장에서 물건을 떼다 파는 보세 및 양품점이 다여서 프렌차이즈 방식 자체를 상상하기 어려웠다.

 

대기업조차 한국에서 프렌차이즈는 불가능하다며 고개를 저었지만, 박성수 이랜드 회장은 프렌차이즈야 말로 한국에 적합한 유통이라며 현지화에 골몰했다. 그 결과 재고를 본사가 책임지고 매장 통제권을 갖는 한국식 프렌차이즈가 만들어졌다.

 

이는 당시 갑과 을로 고정되어 있던 제조업자와 유통 간의 파트너십이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개념을 만들어냈고, 본사의 중앙 통제를 통해 브랜드의 일관성을 유지하도록 함으로써 위탁 유통의 문제점을 해결했다.

 

이때 만들어진 한국형 프렌차이즈 유통의 혁신성은 지금도 유효하다.

 

상품 관리, 매장 이미지, 가격 관리 등을 본사 통제 하에 일관성 있게 운영하면서도 최고의 효율을 낸다. 그 이유는 대리점주들은 직원이 아니고 ‘주인’이기 때문이다.

 

월급을 받는 직원과 대리점 점주의 판매 노력, 단골 관리, 본사와의 소통 의지를 비교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반대로 외국처럼 물건을 완사입해 가격, 상품을 유통이 마음대로 운영하는 경우와 비교해봐도 마찬가지다. 한 마디로 직영점과 완사입 매장의 장점만을 결합해 만들어진 것이 한국형 의류 프렌차이즈다.

 

여기에 더해 국내 시장의 특수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일부 도심에 사람들이 몰려서 산다. 지금은 그런 도심엔 다 백화점이나 쇼핑몰, 대형마트가 들어서 있지만, 그 아래 지역은 여전히 프렌차이즈가 의류 유통의 핵심 기능을 담당한다. 그 곳 지역 사람들에게 대리점은 곧 ‘브랜드’다. 중장년을 대상으로 한 캐주얼 브랜드들이 건재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80, 90년대 이랜드 대리점주들은 다 건물주라는 말이 있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광역 상권을 주름잡는 ‘기업형 대리점주’들이 국산 브랜드의 대형화, 캐주얼 시장의 붐업을 이끌었다.

 

그리고 2005년 이후부터는 여성 어덜트, 중저가 골프웨어의 중대형 매장들이 급속히 증가했다. 그만큼 패션 유통 산업의 발전에서 대리점, 프렌차이즈의 역할은 지대했다. 지금도 국내 패션 유통 시장의 30% 이상을 여전히 대리점, 프렌차이즈가 차지한다는 분석도 있다.

 

다만 경제 수준이 높아지면서, 경쟁은 그만큼 치열해져 단위당 효율은 크게 떨어졌다. 그것이 바로 흔히 말하는 ‘저성장’이다. 저성장에 진입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성장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제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전과는 다른 해법, 혁신이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경제 수준이 높아져 저성장이 된 우리나라 핵심 상권에는 이제 중소 대리점의 자리가 없다. 글로벌 SPA, 대형 멀티숍, 스포츠, 대형 직영점들의 차지다. 그리고 웬만한 상권은 인근의 백화점, 쇼핑몰, 대형마트, 직영점, 대리점들이 한데 뒤엉켜 경쟁한다. 예전의 건물주 신화는 이제 없다.

 

그렇다고 프렌차이즈의 역사가, 대리점의 역사가 끝날까. 천만의 말씀이다. 대리점이 떠받히고 있는 시장은 여전히 크고 건재하다. 지식의 밑천 없이, 시대의 흐름을 타고 성공한 기업들 중 그 성공의 반할은 대리점주의 공으로 돌려야 할 곳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지금 시대가 바뀌어, 예전 그 방식으로 ‘더’ 성공하기가 힘들게 되자, 일부 회사들이 대리점주의 고혈을 짜내고 있다. 반품 기준을 할인가에서 정상가로 바꾸어 부가가치세를 가로채고, 이중가가 일반적인 상황에서 로스 상품을 정상가로 쳐 받겠다는 본사의 억측을 전하는 대리점주들의 하소연과 분노 가득한 목소리가 귀를 떠나지 않는다.

 

앞에서는 점주를 고객 모시듯 칭송하던 회장님의 속내는 사실 ‘내가 당신을 먹여 살린다’였나 보다. 본사와 점주는 주종 관계가 아니다. 공지조차 없이 대리점 운영 정책을 바꾸고, 그냥 따르라고 말해도 되는 관계가 아니다. 엄연한 협력 상대다.

 

회장님은 빌딩을 사들일 게 아니라 밸류 체인, 유통의 혁신, 디지털라이제이션에 투자했어야 했다. 덩치 키우기에 골몰해 시대착오적인 M&A를 반복하고 실패하는 사이, 세상의 문법은 완전히 바뀌었다.

 

누가 누구를 먹여 살렸는가, 지금 위기의 실체는 누구로부터 비롯된 것인가. 개인사든 경영이든, 남 탓을 하기 시작하면 답이 없다. 내리막이다.

 

 

박선희 편집국장

 



< 저작권자 ⓒ 어패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카카오톡 채널 추가하기 버튼
광고배너 이미지 광고배너 이미지 광고배너 이미지 광고배너 이미지
광고배너 이미지 광고배너 이미지 광고배너 이미지 광고배너 이미지

지면 뉴스 보기

지면 뉴스 이미지
지면 뉴스 이미지
지면 뉴스 이미지
지면 뉴스 이미지
지면 뉴스 이미지
지면 뉴스 이미지
지면 뉴스 이미지
지면 뉴스 이미지
지면 뉴스 이미지
지면 뉴스 이미지
지면 뉴스 이미지
지면 뉴스 이미지
지면 뉴스 이미지
지면 뉴스 이미지
지면 뉴스 이미지
지면 뉴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