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마당
세상을 가늠하는 가장 쉬우면서도 위험한 논리 중 하나는 이분법적 사고일 것이다. 그 세계에는 남성과 여성, 동양과 서양, 승자와 패자만이 있다. 이런 흑백 논리는 다양성과 가능성을 훼손하게 된다.
지금 국내 패션 시장이 이분법적 논리에 지배당하고 있다. K-패션은 세계시장에서 걸음마 단계인데, 국내에서 내수브랜드와 해외브랜드의 구도는 이미 게임이 끝난 듯 느껴질 정도다.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려 현재 양상이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 보면 그 심각성을 깨닫게 된다.
수입 전문 업체 대표는 “요즘은 파리, 뉴욕, 밀라노를 넘어 벨기에, 네덜란드, 핀란드, 심지어 루마니아 같은 동유럽에서도 수입 브랜드를 찾고 있는 국내 관계자를 만난다” 고 했다.
이러한 현상은 국내 백화점들이 ‘얼마나 명품과 수입브랜드를 많이 입점시키는가’로 경쟁하고, 패션 대기업들이 수입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별도의 팀을 가동하면서 이미 예견된 것이다. 사실 기업들이 검증된 브랜드를 도입해 빠른 시간 안에 높은 매출을 올리고자 하는 이윤 추구 활동을 뭐라 탓할 수는 없다.
문제는 바로 ‘쏠림 현상’, 다른 표현으로는 ‘냄비 정신’에서 해답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국내 패션에서 사라져 가고 있는 분야를 보면 문제점이 무엇인지 더 명확하고 극명하게 나타난다.
90년대 후반 여성 정장을 필두로, 남성 정장과 스포츠 그리고 2015년 이후에는 잡화&화장품, 여성복, 캐주얼이 시장을 리드하면서 매출을 견인했다. 이제는 극소수의 브랜드만 남아 있거나 90% 이상이 수입 브랜드로 재편된 PC들이다.
경쟁이 심화되고 우수한 브랜드가 남게 되는 약육강식의 룰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문제는 속도이다.
어느 한 분야가 잘 된다고 하면 전문성을 따지지 않고 너나 할 것 없이 경쟁적으로 뛰어들어 시장은 순식간에 레드오션이 된다. 이후에는 자본과 브랜드력을 갖춘 해외파만이 살아남아 블루오션이 되는 지금의 현실 속에서 국내 브랜드가 얼마나 살아남을지 알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혹자는 각 분야의 몇몇 대형 브랜드를 K-패션 대표주자로 거론하지만, 사실 이는 해외 브랜드를 가지고 와서 라이선스로 전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K-패션은 해외에서 높은 관심을 받고 있는 준지, 우영미, 젠틀몬스터, 또는 최근 부상하고 있는 마뗑킴, 렉토 등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들 패션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언급하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데 지난달 국내에 첫 매장을 낸 ‘슈프림’을 보면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1994년 뉴욕에서 작은 스케이트 보드 가게로 출발한 ‘슈프림’은 희소성과 독창성에 기반을 두고 세계에 7개 매장 만을 운영하고 있다.
탁월한 브랜드 관리 탓에 콧대 높은 럭셔리 브랜드들이 앞다투어 슈프림과 콜라보를 진행했고, 2020년에는 2조가 넘는 금액으로 미국 VF그룹에 인수됐다.
K-패션이 독창성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시간과 사람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기업에 있어서 시간은 결국 자본이다. 이를 견뎌내야 유럽과 같은 럭셔리 하우스도 만들 수 있고, 해외에서 인정받게 될 것이다.
지금처럼 매출이 최우선인 수수료 유통환경과 브랜드의 빠른 리턴을 요구하는 구조가 변하지 않는 한 K-패션은 흑백 논리로 평가받는 반쪽짜리 한계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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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기 메트로시티 전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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