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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기] 젠더리스(Genderless)의 시대

발행 2023년 03월 16일

어패럴뉴스 , appnews@apparelnews.co.kr

김홍기의 ‘패션 인문학’

 

대서양 횡단에 성공한 최초의 여성 비행사 아멜리아 에어하트

 

1971년이 되어서야 프랑스의 공립학교 여성 교사들이 바지를 입을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된 점을 생각해볼 때, 생 로랑의 바지정장은 젠더의 경계선을 확장하면서 여성들에게 새로운 옷의 서사를 쓸 기회를 부여한 사건이다.

 

중세 말에서 르네상스에 이르는 시기, 서구는 의상을 통해 성별을 정교하게 표현하는 기술을 만들었다. 남자의 바지, 여자의 치마는 중세 말부터 시작된 자본주의의 결과물이었다. 상공업 중심의 문화와 축적된 자본은 ‘변화하는’ 세계를 주도하는 세력을 남성에게 쥐어주려 했다. 반면 중세부터 기독교가 사회윤리로 정착되면서, 여성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확산되었다.

 

중세의 교부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와 아퀴나스는 남녀에 따른 성별 분업을 전제하면서 가부장제와 성차별을 인정했고, 이브의 원죄를 갖고 태어난 여성은 남성의 부속적 존재로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르네상스 시절, 남성은 반바지를 입고, 자신의 강건한 다리를 자랑했지만, 여성은 하체를 감추기 위해 긴 길이의 치마를 입어야 했다. 여기에는 여성의 신체를 보는 당시의 관점이 녹아있다. 여성의 몸은 ‘죄인’인 이브의 몸과 같기에 은폐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중세에도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순응하거나 가부장제의 협력자로 살기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성 역할을 거부하며 남성지배에 도전한 여성들이 있었다. 이들은 남장을 하고 전쟁에 나가 싸우거나 교회의 억압에 맞섰다.

 

의상의 선택에서 성별을 둘러싼 싸움은 중세 말 이후로도 지속되었다. 19세기에 들어오면서 여성들은 전통적으로 남성복의 요소였던 넥타이와 바지, 모자 등을 차용해 자신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이미지들을 만들어갔다.

 

20세기 초, 성별 복식구분의 경계를 깬 것은 여성 비행 조종사들이었다. 이들은 극한조건에서의 비행을 위해 입었던 비행복을 대중화하고, 성별 구분이 없는 옷의 미를 전파했다. 특히 세계 최초로 대서양 횡단비행에 성공한 미국의 아멜리아 에어하트는 자신의 이름으로 패션 브랜드를 만들어 활동성이 좋은 옷들을 선보였고, 그녀가 입은 점프 수트는 이후 지속적으로 여성의 대안 복식으로 재해석되었다. 1960년대는 패션에서 성별의 경계선이 와해되는 기점이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로 ‘남성성의 위대한 포기’란 시대정신에 맞추어 수수하고 절제된 의상을 채택했던 남성들은 1960년대 공작혁명(Peacock Revolution)을 통해 화려한 색상과 디자인의 옷을 다시 입기 시작했다.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 데이비드 보위와 같은 당시의 대중 가수들은 화려한 꽃무늬 셔츠와 높은 굽의 힐을 신고 무대에 섰고, 1966년 이브 생 로랑은 여성들을 위한 턱시도 수트를 발표했다.

 

1971년이 되어서야 프랑스의 공립학교 여성 교사들이 바지를 입을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된 점을 생각해볼 때, 생 로랑의 바지정장은 젠더의 경계선을 확장하면서 여성들에게 새로운 옷의 서사를 쓸 기회를 부여한 ‘사건’이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성별 고정관념을 없애려는 시대적 흐름은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20세기 초 옷에서의 양성의 매력을 표현하려는 앤드로지너스를 넘어,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성별의 차이를 지우려는 젠더리스룩, 이분법적인 성 역할과 개념에서 벗어난 중립적 자아에 초점을 맞추는 젠더 뉴트럴과 같은 어휘들이 등장했다.

 

루이비통은 2016년 초 남자 배우 제이든 스미스를 여성복 모델로 기용하여 젠더리스룩을 선보였고, 같은 해 자라(Zara)는 공식 홈페이지에 ‘무성의, 성별 구분이 없는’이란 의미의 ‘언젠더드(Ungendered)’라는 신규 의류 라인을 출시했다. 2017년 2월 밀라노 F/W 패션위크에서 구찌는 남녀 모델을 한 무대에서 혼합시킨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최근 남성복 라인을 전개하기 시작한 미우미우는 젠더의 유동성을 컬렉션의 기저에 담았다.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패션의 젠더리스 현상은 젊은 세대에서 두드러진다. 글로벌 광고회사 제이월터 톰슨의 2016년 통계를 보면 Z세대 소비자의 56%가 자신의 성별을 고려하지 않고 쇼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상을 선택하는 기준은 한 시대, 사회의 변화하는 미의식은 물론 사회가 새롭게 포용하고 가꿔나가려는 가치관을 보여준다. 어떤 옷을 입을 것인가를 선택하는 문제는 실은 세상을 바꿔나가는 ‘은밀하고 강력한’ 힘인 것이다.

 

 

김홍기 패션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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