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기] 커뮤니티의 힘
발행 2023년 06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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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기의 ‘패션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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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팟캐스트 / 사진=게티이미지 |
필자는 요즘 팟캐스트에 출연해 패션의 역사를 강의한다. 이곳의 유료 청취자 숫자는 15만 명. 올해 2년째 접어든 신생 커뮤니티치고 그 밀도가 놀랍다. 방송 콘텐츠는 철학과 고전문학, 미술사, 패션, 과학, 그리고 독특한 직업을 가진 이들이 나와 이야기를 푸는 게 다다. 최근에는 만년필 박사라 불리는 출연진 중 한 분이 대기업과 협업을 통해 노트와 연필도 만들었다. 커뮤니티 구성원의 적극적 참여로 상품의 폭이 확대 중이다.
몽고로 떠나는 지질학 여행 프로그램은 공지 하루 만에 마감되었다. 필자도 안경의 역사 강의 후 한국의 40-50대 남성을 위해 선글라스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커뮤니티의 구매력을 믿고 해보기로 했다.
이러한 일련의 경험을 통해 우리 시대의 변모한 마케팅 양상을 본다. 사회학자 미셸 마페졸리는 1988년 출간한 <부족의 시대>에서 전통적 ‘국가’나 거대 구조는 해체되는 반면, 취미나 여가를 통한 친목 집단과 감정적 공동체가 라이프스타일을 재편성하고 있다면서 우리 사회가 개인주의가 아닌 부족주의에 의해 새롭게 구축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충성도가 높은 고객을 제품 개발 과정에 참여시키고 팬들이 브랜드 성장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는 브랜드 숫자가 늘고 있다. 특히 뷰티와 패션 분야에서 부족주의는 성장의 코드가 되었다.
과거 브랜드는 할인 코드나 독점 이벤트 초대를 통해 첫 구매 고객을 단골 구매자로 전환할 수 있었으나, 이제 브랜드는 고객의 지속적 구매를 유도하기 위해 소비자를 브랜드 생태계로 더 깊숙이 끌어들이고 있다. 포화 상태인 시장과 광고비 증가에 직면한 신생 디지털 기반의 뷰티 브랜드들일수록 신규고객을 쫓기보다 탄탄하고 두터운 열성 팬들을 개발하여 매출 및 수익 향상을 도모한다.
에스티 로더의 임원 출신인 레인 크로웰이 2019년 11월에 시작한 클린 뷰티 브랜드인 사이에(SAIE)를 예로 보자. 브랜드명 사이에(SAIE)는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타인을 매혹할 줄 아는 지적인 여자’라는 뜻을 갖고 있다. 젊은 세대들의 어휘와 표현을 모은 온라인 사전에만 등재된 단어다. 그만큼 브랜드의 정체성과 마케팅 전략도 기존과 다르다.
레인 크로웰은 제품기획과정에서 소비자가 실제로 원하는 것이 제대로 담기지 않는다는 점을 통탄하며 고객과의 긴밀한 소통을 위해 '클린 뷰티 크루'라는 비공개 페이스북 그룹을 시작했다. 이 그룹 회원들은 제품이 시장에 출시되기 전에 제품을 사용하고 리뷰하며, 광고 모델을 선정하는 문제에까지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다. 2020년 틴티드 모이스처라이저의 출시를 준비하고 있을 때, 사이에는 그룹 맴버들에게 이 제품의 색조 제품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자원봉사를 요청했고 자발적으로 모인 다양한 피부 톤과 연령대를 대표하는 28명의 '피부색 크루'는 샘플을 사용한 후 자신들의 요구사항들을 화장품 레시피에 포함시켰다. 현재 이 페이스북 그룹은 6,000명의 회원을 가진 커뮤니티로 성장했다. 이 커뮤니티는 곧 브랜드의 핵심 자산이 되었고, 향후 제품라인 개발 및 마케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래서일까? 사이에는 창립자 레인 크로웰의 증조 할머니 사이몬을 모델로 선정했다. 그녀의 나이는 무려 99세. 회사의 차기 모델을 고르는 인스타그램 설문조사에서 압도적으로 지지를 받은 뒤 사이에의 새 모델로 선정된 것이다.
부족(Tribe)은 하나의 아이디어로 연결된 집단이다. 부족의 구성원들은 연결과 성장, 새로운 아이디어, 혁신, 변화를 원한다. 커뮤니티를 기업 성장의 동력으로 삼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브랜드가 서사를 구축하는 전 과정’에 참여해준 대가를 명확하게 지불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전문성이나 기존의 유명세에 기대지 않는 새로운 브랜드 대사들이 등장한다. 화장품 시장의 브랜딩 방식은 이제 완전히 그 판이 바뀌었다. 그러니 대비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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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기 패션 큐레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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