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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김홍기의 패션인문학(1)
클래식의 힘은 세다

발행 2017년 11월 24일

어패럴뉴스 , appnews@apparelnews.co.kr

김홍기의 패션인문학(1)

클래식의 힘은 세다




김홍기

국내 패션 큐레이터 1호로 패션을 통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철학의 이슈들을 읽고 말하고 쓴다. ‘팝 쿠튀르 Pop Couture’ 展 및 ‘현대미술, 런웨이를 걷다’와 같은 전시를 기획했고 저서로는 ‘샤넬, 미술관에 가다’ ‘옷장 속 인문학’ 등이 있다. 다양한 매체와의 협업을 통해 패션의 의미를 깊게 알리는데 주력하고 있다.





고전(Classic)이란 과거에 쓰였으나 현재에도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을 뜻한다. 지금 이 순간의 우리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야 한다.
클래식은 클라시쿠스(Classicus)라는 라틴어에서 왔다. 이는 고대 로마 사회의 최상층 계급을 지칭하는 단어로, 전쟁이 났을 때 전함 7척을 국가에 기부할 수 있는 재산을 가진 자들을 뜻하는 단어였다. 여기에서 클래식은 위기로 가득한 인생의 바다에서, 우리 자신을 지켜주는 든든한 함대 같은 ‘원칙과 가치’를 뜻하는 말로 발전했다.
독일의 소설가 괴테는 “인간은 과거를 확장시켜 더 나은 미래를 짓는 존재”라고 말했다. 우리가 애써 과거의 예술적 규범을 배우려고 노력하는 것은, 과거가 현재의 창조 행위에 연결되어 시대의 미적 기준을 만드는데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오래된 생각은 모든 새로운 생각의 어머니이다.
샤넬의 2018년 크루즈 컬렉션은 클래식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패션쇼는 파리 그랑팔레 미술관 2층에서 열렸다. 파르테논 신전의 잔해와 올리브 나무 한 그루,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가 포도주 빛이라 표현했던 지중해 바다의 노을이 무대 한쪽을 장식했다. 무대 위로 찬연한 그리스 문화를 연상시키는 옷들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특정 신체 부위를 강조하기보다 전체적인 인체의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루어내도록 노력했다. 그들의 옷은 재단이나 바느질을 하지 않고 몸에 느슨하게 걸칠 수 있는 형태로 된 것이 특징이었다. 두 장의 직사각형 천을 접어 몸에 걸치고 어깨 부위에 피뷸라라는 옷핀을 사용해 고정했다. 허리와 가슴부위에 띠를 매어 섬세한 주름을 잡아 착용했다. 복식사에서는 이 옷을 키톤이라 부른다. 여기에 히마티온이라는 겉옷을 걸쳐 입었다.
고대의 부유층 여성들은 인도에서 수입한 모슬린으로 만든 히마티온을 걸쳤다. 바람에 나부끼는 반투명의 가벼운 이 옷은 ‘봄날의 아지랑이’라는 뜻의 라틴어 네뷸라(nebula)로 불렀다. 이 면직물은 중국의 비단보다도 비쌌고 무게 당 금값보다도 더 비쌌다고 한다. 여성들의 우아함을 잘 연출할 수 있는 복식으로 신체에 밀착시켜 실루엣을 강조하거나 한 장의 천으로 자유롭고 다양한 형태를 표현하기도 했다.
특히 천을 몸에 걸칠 때 만들어지는 드레이프 주름은 인체의 곡선을 따라 자연스러운 율동감과 은밀한 관능미를 드러내기에 제격이었다. 입는 이의 연출에 따라 다양하게 실루엣을 만들어 낼 수 있었기에 옷의 스타일링은 고대부터 한 개인의 역량 및 상상력을 말해주는 지표가 되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아름다움이란 전체와 부분의 균형과 비례에 바탕을 둔 조화에 있다고 믿었다. 이 조화미를 엘레강스(Elegance)라고 불렀다. 매 컬렉션마다 샤넬의 디자인을 받쳐주는 공방의 노력은 이번에도 가감 없이 드러났다. 플리츠 공방 로뇽에서 만들어낸 섬세한 옷 주름은 생동감 넘치는 음악처럼 다가왔다.
커스텀 주얼리와 단추를 만드는 공방 데뤼에서 만든 손목 커프스엔 영적 지혜와 풍요를 상징하는 물고기, 고대의 사회계층을 나누는 부의 상징인 말, 고대 그리스 시대 유통되던 동전의 양면에 박혀있던 아테나 여신과 올리브 이파리 등을 새겨 넣었다. 아테네의 신조인 올빼미를 이용해 현대적인 감각의 핸드백으로 만들기도 했다. 여기에 사냥의 여신이자 젊은 여인들의 수호자인 아르테미스 여신의 상징인 화살과 화살통은 근사한 브로치로 변했다.
한편 물품 보관과 수납에 사용된 고대의 암포라(Amphora) 항아리의 곡선을 그대로 살려 귀걸이로 만들었다. 샤넬의 이번 크루즈 컬렉션은 신화의 풍성한 상징과 이야기 거리를 녹여낸 수작이다. 고대 그리스의 복식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컬렉션에서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례와 절제, 조화와 단순함과 같은 고전적 가치가 인간의 품격을 지키는 닻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변화를 목표로 하는 패션의 세계에서 자신이 흔들리지 않는 인간임을 증명하기 위해 되돌아봐야 하는 가치. 고전은 우리에게 그 세계를 알려준다. 클래식의 힘은 세다.

/패션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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