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애] 패션 업계의 '장인'이라 불리던 이들은 왜 추락했나

발행 2026년 07월 15일

어패럴뉴스 , appnews@apparelnews.co.kr

유미애의 '다른 시선'

 

'뮬라웨어' 매장

 

2026년 6월 26일, 한국 패션 스타트업의 신화이자 예비 유니콘으로 불리던 뮬라가 자사몰을 폐쇄하며 사실상 파산의 길로 들어섰다. 외부 투자 없이 제품력 하나로 연 매출 300억 원을 돌파하고, 정부의 혁신성 인증까지 거머쥐었던 1세대 애슬레저 개척자의 안타까운 결과다. 회생계획안 제출 기한을 13번이나 연장하며 인수 의향자를 찾았으나 채권자인 한아아이앤티와의 상표권 분쟁과 400억 원에 육박하는 누적 결손금의 벽을 넘지 못했다. 법원은 "계속기업가치보다 당장 문을 닫고 재고를 파는 청산가치가 더 크다"며 회생절차 폐지 결정을 내렸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필자의 머릿속을 스친 것은 2010년 역사 속으로 사라진 토종 패션 기업 '쌈지'의 유령이다. 레깅스와 가죽 가방이라는 카테고리의 차이만 있을 뿐, 두 기업의 흥망성쇠는 '독보적인 제품력(프런트엔드)에만 취해 리스크 관리와 경영 효율화(백엔드)를 방치한 기업의 추락'이라는 점에서 소름 돋도록 닮아 있다.

 

: 품질에 대한 집념, 인사이트의 시초

 

초기 뮬라웨어의 성장은 눈부셨다. 경쟁사들이 자극적인 마케팅에 돈을 쏟아부을 때, 뮬라는 자체 공장과 원단 기술력이라는 장인의 집념으로 프리미엄 요가복 시장을 개척했다. 1990년대의 쌈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탈리아산 명품 가방이 최고인 줄 알던 시대에 한국적 미학을 담은 토종 가죽 제품으로 시장을 뒤흔들었고, 아티스트 지원과 딸기(Dalki) 캐릭터 테마파크 등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문화 마케팅의 아키텍처를 선보였다. 두 기업 모두 기술과 감성이라는 확실한 ‘프런트엔드’의 무기를 가지고 시장을 선도했던 패션계의 거인들이었다.

 

亡: 치킨게임의 서막, 골든타임 상실

 

그러나 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뀔 때 거인들은 몸을 무겁게 움직였다. 후발 주자였던 젝시믹스와 안다르가 상장과 대기업 인수를 통해 거대한 자본력을 확보하고 피비린내 나는 마케팅 치킨게임의 포문을 열었을 때 뮬라는 효율적인 경영 전환의 골든타임을 놓쳤다.

 

뒤늦게 무리한 스타 마케팅 경쟁에 뛰어들었으나 이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고 판관비 지출이 매출을 앞지르며 순식간에 완전 자본 잠식에 빠졌다. 이는 과거 쌈지가 본업인 패션의 내실을 다지기보다 아트 마케팅과 무리한 신사업(영화 제작, 테마파크)에 자본을 무분별하게 유출하다 연쇄 부도를 맞았던 실책과 정확히 오버랩 된다. 기술력과 예술성에만 집착한 나머지 금융 리스크 관리라는 백엔드 시스템을 완전히 셧다운 시킨 결과다.

 

: 채권자 잔혹사와 좌절된 매각

 

벼랑 끝에 몰린 뮬라의 마지막 보루였던 기업 회생(M&A) 절차마저 좌절시킨 것은 결국 갉아 먹힌 브랜드 신뢰도와 복잡하게 얽힌 채권 추심 리스크였다. 채권자와의 상표권 소유권 공방과 법적 소음은 잠재적 인수자들을 모두 고개 젓게 만들었다.

 

과거 부도 직전 부실 계열사 지분 매각과 복잡한 채권 채무 관계로 얼룩져 재기의 기회마저 잃어버렸던 쌈지의 마지막 모습이 2026년 뮬라의 청산 과정에서 그대로 재현된 것이다. 아무리 매력적인 네임 밸류를 가졌을지라도 백엔드의 정산 시스템과 리스크 관리가 무너진 기업은 시장에서 더 이상 ‘계속 기업’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냉혹한 증명이다.

 

아무리 독보적인 원단 기술을 가졌고, 아무리 시대를 앞서간 문화적 감성을 가졌을지라도 경영의 통제력을 잃은 기업은 한순간에 모래성처럼 무너진다. 쌈지가 남긴 문화적 향기와 뮬라가 남긴 아름다운 레깅스는 이제 패션 산업의 찬란한 훈장이 아닌, 경영학의 가장 뼈아픈 실패 보고서(Report)로 남게 되었다.

 

유미애 세원아토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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