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기] MZ세대를 사로잡는 ‘노스탤지어’의 힘

발행 2022년 10월 25일

어패럴뉴스기자 , appnews@apparelnews.co.kr

김홍기의 ‘패션 인문학’

 

출처=마리떼 프랑소아 저버

 

최근 미국의 시인인 존 쾨닉이 쓴 <모호한 슬픔의 사전 The Dictionary of Obscure Sorrows> 이라는 책을 읽었다. 우리는 때때로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할 단어가 없음을 발견할 때가 있다. 이 책은 설명하기 어려운 모호한 감정을 정의한 후 편집한 사전이다. 이 사전에 소개된 단어 중 필자의 눈길을 끈 단어가 아네모이아(Anemoia)이다. 이는 ‘경험해보지 않았던 시대에 대한 향수’를 뜻하는 말이다.

 

최근 MZ세대들 사이에서 블랙핑크의 제니가 입은 마리떼 프랑소아 저버 청바지가 인기다. 9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에게 익숙한 브랜드가 MZ세대에겐 아예 새로운 브랜드로 인지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90년대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이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출시되며 상위권에 올랐고, 아재 정서가 가득했던 을지로는 젊은 세대를 통해 ‘힙지로’로 변모한 지 오래다.

 

이 현상은 한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 패션 소매업체 제이크루(J.CREW)는 젊은 고객을 유입하기 위해 61세의 배우 줄리언 무어와 76세의 배우 다이언 키튼, 비행기 사고에서 살아남은 여성 축구팀의 이야기를 다룬 TV 시리즈 황색재킷(Yellow Jacket)의 주인공인 올해 45세의 멜라니 린스키와 함께 광고 캠페인을 찍었다. 이번 캠페인의 모토는 ‘전통의 현대적 재해석(Heritage Made Modern)’으로, 1990년대 인기를 향유한 옥스퍼드 셔츠, 니틀 풀오버, 클래식 바지 등을 다시 출시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출처=구찌 트윈스버그(Gucci Twinsburg) 패션쇼

 

사실 노년의 배우와 셀럽,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소품을 광고에 사용한 것은 제이크루만이 아니다. 코치(COACH)는 53세의 제니퍼 로페즈를 기용했고, 패션쇼 무대를 과거의 향수가 듬뿍 담긴 드라이브인 극장 형태로 만들기도 했다. 셀린(CELINE)은 이미 2015년에 당시 81세인 여성 작가 조앤 디디언을 기용해 그녀의 문학적 이력과 브랜드 역사를 융합시켰다. 이를 통해 여러 세대를 관통해 ‘자신만의 미감’을 성취한 여성들의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써 클래식의 의미를 부각시키는데 성공했다. 물론 젊은 소비자들도 영 세대의 패션 브랜드에 노년의 모델이 나올 경우, 오히려 ‘나도 저렇게 아름답게 늙어갈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고 한다. 이는 광고 후 조사를 통해 밝혀진 내용이다.

 

왜 MZ세대는 경험해보지 않았던 시대를 향수할까. 이것을 잘 이용한 디자이너가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알레산드로 미켈레이다. 그는 기이한 무늬(print)와 패턴, 그래픽을 패션에 접목해 조용한 모범생이나 기술 마니아들이 입는 괴짜 같은 복장이라는 뜻의 긱 시크(Geek Chic)를 보여주었다. 미켈레가 1960년대에서 80년대까지 과거의 지층에서 캐낸 영감은 재미와 놀라움을 선사했다. 또한 소비자들은 기존 관행에 얽매이지 않는 색다른 시선을 그의 작품에서 찾아냈고 그의 시선을 통해 자기 연출의 기회를 만들어냈다. 1960년대에서 80년대를 살아낸 이들은 그의 옷에서 ‘지금보다 더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과거’를 회상하며 현재는 결핍되어 있는 ‘행복과 안정’이라는 일종의 정서의 닻을 발견한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황금시대의 환상(illusion of golden age)이라고 부른다. 놀라운 것은 정작 그 시대를 살지도 않았던, 어린 고객들도 이 환상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는 점이다. 물론 추억을 팔 때는 조심해야 한다. 올해 로에베(Loewe)는 컬렉션을 위해 일본의 추억의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토토로를 사용했다가 강력한 소비자 반발에 부딪혔다. 고객들은 이 캠페인을 생각 없이 추억의 ‘오려 붙이기’에 올인한 게으른 마케팅 정도로 생각한 것이다. 노스탤지어란 ‘고향을 잃어버린 이들의 가슴앓이’이다. 특정 시대를 살아낸 이들의 집단적 기억 속에 살아있는 따스한 환상을 되살려내야 하고, 진정성을 갖고 이 기억을 오프라인에서도 실현할 때 비로소 성공에 이르는 마케팅 전략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김홍기 패션 큐레이터

 



< 저작권자 ⓒ 어패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면 뉴스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