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기] 패션 혁명의 시작, ‘바디 포지티브(Body Positive)’

발행 2021년 10월 22일

어패럴뉴스기자 , appnews@apparelnews.co.kr

김홍기의 패션 인문학

 

출처=women's weekly

 

패션, 인간의 몸을 설계하다

 

패션은 인간의 몸을 규정해왔다. 역사는 각 시대별로 자신의 이상적인 신체미를 갖고 있었다. 고전 그리스 시대, 남성은 건강한 누드를 그대로 드러낸 반면, 여성은 몸에 붙는 주름진 옷으로 신체의 에로틱함을 드러냈다. 여성의 신체가 남성의 것보다 열등하기에 은폐되어야 하며 남성의 신체가 모든 육체의 근간이자 우선권을 갖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한편 로마 시대 여성은 마른 체형을 선호해서 다이어트를 위해 먹고 토하는 일을 반복했다. 자본주의가 발흥하는 중세 말과 르네상스를 거치며 여성은 풍만한 신체를 이상형으로 여겼으며, 17-8세기에 이르러서는 뚱뚱한 여성이 행복과 미의 상징이 되면서 크고 둥근 가슴과 엉덩이를 돌출시키기 시작했다.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는 근대 시민계급의 이념을 담은 자연스럽고 근대적인 육감을 드러낸 인체, 즉 앞으로 돌출한 큰 가슴, 가는 허리, 뒤로 튀어나온 큰 엉덩이를 강조하는 극도로 변형된 신체미를 강조했다. 코르셋은 육체를 억압하면서 자기 훈련을 통해 이상적 신체를 만들기 위한 도구로 이용되었다. 19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복식 개혁 운동은 코르셋으로 자신의 몸을 혹사하던 당대의 관행에 맞서며 여성들도 바지를 입을 수 있는 권리를 얻기 위한 운동이었다.

 

출처=빌리(Billie) 온라인 스토어

 

19세기 복식 개혁의 21세기 버전

 

복식 개혁 운동은 오늘날, 패션계에 불어오는 신체 긍정주의, 바디 포지티브 운동의 원형이다. 바디 포지티브란 사회가 부여한 '이상적인 미적 기준'에서 벗어나, '나를 보이는 그대로 사랑하자'라는 운동이다.

 

바디 포지티브 운동이 패션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거세다. 최근 핀터레스트는 신체 긍정주의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체중 감량 관련 광고를 전면 금지했고, 신체에 수치심을 줄 수 있는 문구를 인용하거나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요즘 필자의 눈에 띄는 브랜드가 있다. 여성용 제모용품을 만드는 빌리(Billie)다. 이 브랜드는 소비재 산업의 병폐였던 핑크 택스(Pink Tax) 문제를 거론하며 등장했다. 핑크 택스란 동일한 상품과 서비스에 대해 여성이 남성보다 더 높은 비용을 지불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전통적으로 여성을 상징하는 색으로 쓰이던 분홍색과 세금을 합쳐서, ‘여성에게만 붙는 세금’ 이란 뜻으로 쓰인다.

 

남성 면도기의 경우 동일 상품임에도 여성들은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한다. 그 제품이 남성의 신체구조와 특징에 맞춰 제작된 지라, 몸의 부드러운 굴곡 선이 많은 여성에게는 사용이 불편하며 효과도 떨어짐에도 피해갈 수 없었다. 빌리는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여성의 신체를 고려한 제품을 저렴하게 개발해 여성 용품 시장을 확대시켰다.

 

출처=Girlfriend Collective 온라인 스토어

 

몸 긍정주의-새로운 시장의 기회

 

패션계는 몸 긍정주의 압력을 전방에서 받고 있다. 그러나 몸 긍정주의를 제품개발과 마케팅의 새로운 철학으로 받아들일 때, 특정 성별과 고정된 신체 유형에 맞춰 지금껏 물건을 만들고 소구한 탓에, 놓치고 있던 다양한 시장이 열리게 된다는 점도 유념하자. 이는 몸에 대한 한층 깊어진 감수성이 열어준 새로운 시장 기회다.

 

휠체어를 타고 패션쇼에 나타난 모델 질 머케이도를 비롯해 성 소수자, 다양한 신체 사이즈를 가진 모델들이 패션 위크에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속가능성 패션으로 잘 알려진 아일린 피셔도 최근 3XL 시리즈를 냈고, 업사이클 패션기업 걸프랜드 컬렉티브(Girlfriend Collective)도 사이즈 체계를 XXS에서 6XL까지 확장했다. 패션산업이 지금껏 고수해온 마르고 젊은 여성에 대한 이미지가 인종 및 성별, 고유하고 다양한 신체의 아름다움으로 대체되고 있는 것이다.

 

바디 포지티브의 영향이 커질수록 패션 이커머스에서 사이즈 큐레이션은 주요한 화두가 된다. 내가 고른 스타일이 실제 비슷한 체형과 입었을 때 어떤 느낌이 나는 가를 명확하게 고객에게 전달할 수 있는 가상 피팅 기술의 혁신과 사이즈 체계의 과감한 변화가 필요하다.

 

현재의 사이즈 체계라는 것도 19세기 후반 기성복과 함께 등장한 틀이 아니던가. 지금 ‘이 순간의 고객’을 생각한다면 그 틀도 버릴 때가 된 것이다. 더불어 지금껏 신봉해온 미의 기준까지 말이다.

 

김홍기 패션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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