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 2026년 09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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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준의 '스타트업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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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신사 캠퍼스 E1 외관 /사진=무신사 |
벤처/증권 투자 시장에서 쓰는 용어 중 '스타일 업종'이라는 말이 있다.
뷰티(화장품 및 미용) 산업과 의류 패션 산업을 합쳐서 인용할 때 종종 사용하는 단어로, '기호'나 '취향'의 영향을 많이 받는 업종을 통칭한다.
의미로만 보자면 엔터산업이나 드라마, 영화같은, 요즘 뜨거운 'K-컬쳐'까지 확장될 수 있으나, 이번 글에서는 '협의'의 '스타일'인 화장품과 의류에 한정해서 이야기하고 자 한다.
나의 첫 엔젤 투자 역시 공교롭게도 화장품 '미미박스'였다. 당시는 증권사의 고유계정운용팀(PI투자부서)에 근무하던 2013년 무렵이었는데, 우연히 구독형 상거래 모델(subscription commerce)이 우리나라에도 등장했다는 말을 듣고, 연락처를 뒤져서 찾아가 미팅을 했다.
당시 나는 이 회사의 창업팀과 사업모델에 반해서, 바로 회사에 투자를 해 보고 싶다고 보고했다. 내 바로 위 본부장님은 "만약 네 돈이라면, 매출도 없이 사업계획만 있는 회사에 투자하겠나?"라고 호통을 치며 반대했다. 그런데 이 말이, 내 돈으로 직접 투자한 첫 번째 엔젤 투자가 미미박스가 된 이유가 됐다.
그때 호통을 쳤던 본부장님은 최근 모 증권사 대표가 되셨다. 지금은 종종 만나 벤처/스타트업 투자에 대해 활발히 논의하는 사이가 됐는데, 내가 엔젤/스타트업 투자를 시작하는데 큰 도움(?)을 주신 분으로 평생 남게 됐다.
이후 증권사에서 나와 독립한 내가 첫 번째 바이아웃(Buy-out) 자문을 담당한 회사도 화장품 ODM이었다. 창업자와의 인연으로 맡게 된 딜이 성사된 후 거의 8~9년 동안 열 배 가까이 성장한 이 회사는 현재는 탄탄한 중견기업으로 밸류업에 성공했다. 뒤이어 나는 드디어 화장품 '브랜드' 스타트업에 투자하게 된다.
첫 번째 투자회사는 아주 작지만 중동이나 러시아 등 주류 화장품 기업들과의 경쟁이 상대적으로 덜한 국가들에 집중한 영업전략을 가진 회사였는데, 투자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화장품 비상장사와의 합병으로 원금 정도만 회수했다.
두 번째 투자한 회사는 연쇄 창업가(entrepreneur)의 재창업 스타트업으로, 후속 투자(follow-on) 거듭 진행하면서 현재도 적극 지원 중이다.
화장품에 대한 투자는 이렇듯 활발히 해 왔는데, '스타일' 업종의 다른 한 축인 패션은 어땠을까.
지금까지 투자 및 회수를 완료한 딜은 1건에 불과한데, 진지하게 검토한 딜들을 모두 포함하더라도(무신사의 세컨더리 딜(구주 매매 딜)이나 스노우피크어패럴의 감성코퍼레이션의 전환사채 딜도 검토했었지만, 무신사는 2020년 당시 이미 1조 밸류가 넘는 유니콘이었고, 감성코퍼레이션은 스노우피크를 막 시작하는 단계이긴 했지만 이미 상장회사였기 때문에 두 사례 모두 스타트업/벤처투자 딜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서너 건에 불과한 것 같다.
그렇다면 나의 스타트업/벤처투자 이력이 유별나게 화장품에 편중되고 패션의류업은 멀리해 온 것일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내 주위의 스타트업 투자자들과 그동안의 스타트업/벤처 투자시장을 가만히 살펴보면, 이러한 화장품업에 대한 투자편중은 전체 시장에서 관찰되는 현상이다.
그럼 이러한 차이를 유발하는 근본 원인이 존재할까? 모든 투자가 그렇듯이 천편일률적으로 하나의 요인이 유발하는 현상은 당연히 아닐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젊은 창업가 비중의 차이가 여러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화장품 브랜드의 경우 사실 화장품 전공자들의 창업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적다. 화장품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마케팅 능력을 가진 창업가들의 성공 스토리를 흔히 접할 수 있다.
때문에 화장품 브랜드 창업의 극초기라 하더라도 어떤 기준을 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부각되는 차별화 지점을 제시한다면 투자자들은 주저하지 않고 투자를 집행한다. 이미 여러 차례의 성공 사례들을 직관했으므로.
그런데, 의류 패션업종에는 그 샘플 수가 충분치 않다. 물론 패션업종을 화장품업종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두 업종 모두 특출한 성능보다 '기호' 및 '취향'에 의존하는 마케팅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한 경향을 지닌다.
물론 몇 년 전의 골프붐을 타고 엄청난 성장세를 구가한 골프 의류나, 상장하기 전의 기대감이 높았던 피스피스스튜디오의 사례가 있지만, 화장품업종의 성공 사례들에 비하면 그 기간도 너무 짧았고, 피스피스스튜디오는 상장 후 극심한 주가 침체로 시가 총액 1천억 하회라는 부정적인 사례가 되고 말았다.
그러한 관점에서 9월 7일에 들려온 무신사의 상장예비심사 청구 소식은 의류패션업종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이벤트라고 생각한다. 무신사의 스토리는 야놀자의 스토리와 비견될 만큼, 드라마틱한 요소를 모두 갖춘, 스타트업에서 대기업이 되기까지의 성공 사례 중 하나다.
창업자의 성장 스토리와 지금 시장에서의 압도적인 위치 등을 감안하면 의류패션업종에 대한 투자 심리에 다시 불을 지필 수 있는 트리거가 될 수도 있다.
현재 패션 투자 생태계에는 젊은 창업자의 성공 스토리라는 역전만루 홈런이 절실히 필요하고, 그러한 상황에서 타석에 무신사가 등장했다.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한 뒤 45일간 심사하고 결과를 내놓게 되는데, 1달 정도는 심사가 연장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10월 말이나 11월 초에 상장심사결과가 나올 것이다.
이후 6개월 이내에 상장을 위한 증권신고서를 제출해야 하므로, 무신사라는 성공 사례가 증권시장에 등장하는 것은 2027년 초가 될 것이다. 상장에 이르기까지 무신사의 여정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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