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찌라의 ‘기업 읽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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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라 X 엔더슨벨 팝업스토어 /사진=최종건 기자 cjgphoto@apparelnews.co.kr |
1975년 자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등장했다. 당시 자라는 앞으로 옷은 한 철만 입고 버리면 된다면서 트렌디한 옷을 저렴하게 무한정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그 시절, 그 말은 혁신적이었다. 하지만 2019년 17세 소녀 그레타 툰베리가 UN정상회의에서 채 입지도 못하고 버려지는 패스트 패션 업계의 문제를 지적했을 때, 소비자들은 SPA를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실제로 SPA의 등장 이후 전 세계 의류 시장 생산량은 2배 이상 증가했다. 매년 전 세계적으로 1000억 벌 이상이 생산되며 미처 팔리지 못한 15~45%의 옷들은 폐기되고, 이중 73%가 매립되거나 소각된다. 브랜드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을 우려해 기부하거나 재사용하지 않고 태우는 것이다. 2020년 UN에 따르면 패션업계는 전 세계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8~10%를 차지한다.
자라는 재고를 매우 낮게 유지하기 때문에 다른 브랜드에 비해 과잉생산이 적은 편이지만 패스트 패션을 이끌었고 여전히 많이 생산한다는 점에서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점점 폐기되는 의류와 탄소에 불편함을 갖기 시작했고, SPA의 대표격인 자라와 H&M이 타격을 입었다. 자라는 2020년 매출이 30% 하락했다.
한편 2008년 중국에서 등장한 글로벌 패션 브랜드 쉬인은 초기의 자라와 유사한 전략을 택했다. 직접 디자인을 하지 않고 발 빠르게 베낀 것인데, 이번에는 패션쇼가 아니라 SNS였다. 트렌드가 감지되면 즉각 디자인을 복제해 10일 이내에 제품을 출시한다. 1년간 자라가 4만 종을 출시하는 동안 쉬인은 무려 150만 종을 내놓는다. 쉬인은 자체 공장 없이 수많은 소규모 하청업체와 협력해 소량 생산하며, 판매 데이터를 분석해 실시간으로 생산량을 조정한다. 직접 생산을 하지 않으니 재고 부담이 적고, 중국의 저렴한 인건비와 원자재 비용, 여기에 오프라인 매장 운영 비용까지 줄이면서 자라와 비교해도 턱없이 낮은 가격대의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SPA 업계는 인플레이션과 공급 비용 상승으로 이미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쉬인의 등장으로 더욱 큰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2022년에는 쉬인이 글로벌 매출에서 자라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특히, 쉬인이 중국 시장에서는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놀라운 성과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2022년, 창업주 아만시오 오르테가의 딸 마르타 오르테가가 자라의 모기업 인디텍스의 이사회 의장에 취임하며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패스트 패션에서 벗어나 보다 고급스러운 브랜드로 포지셔닝을 전환한 것이다. 2018년에는 밀리터리 & 유틸리티 룩을 콘셉트로 한 SRPLS(Surplus, 서플러스) 라인을 선보였으며, 이후 유명 디자이너를 영입해 제품의 품질을 한층 끌어올렸다. 이에 따라 기존의 패스트패션 전략을 깨고, 연간 두 차례 컬렉션을 발표하며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있다. 또 이전에는 시도하지 않았던 화보와 영상을 제작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강화하고, 프리미엄 소재와 한정판 디자인을 적용하면서 가격도 자연스럽게 상승했다. 또, 전 세계 1,200개 매장을 폐쇄하고 온라인 판매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함이다.
한편 자라는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내세웠다. 2025년까지 모든 의류를 100% 지속 가능한 소재로 제작, 2030년까지는 사용하는 섬유의 100%를 환경 영향이 낮은 소재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유기농 면, 재활용 폴리에스터, 텐셀 등 친환경 소재를 사용한 'Join Life' 컬렉션을 선보였다. 또 일부 국가에는 매장 내 의류 수거함을 설치해 고객들의 의류 재활용을 돕고 있다. 자라의 온라인사이트에서는 중고 거래를 하거나 기부하고, 수선을 맡길 수도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자라는 최근 실적이 반등하고 있다. 2023년 54억 유로의 순이익을 기록하며 사상 최고의 실적을 달성했다. 쉬인에게 매출 1위 자리를 내준 지금, 자라는 계속해서 기존의 스마트한 물류 전략을 이어가면서도 브랜드 가치를 높여갈 수 있을까.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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