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찌라의 ‘기업 읽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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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소된 차량에서 멀쩡하게 발견돼 주목받은 스탠리 텀블러 |
전소된 차량 안에서 살아남은 텀블러…틱톡 8천만 뷰의 주인공
협업, 한정판 마케팅이 오픈런과 웃돈 붙은 중고 거래로 이어져
2023년, 틱톡에 무려 8천만 뷰를 찍은 영상이 있다. 차량 화재로 차 전체가 전소된 현장에서 유일하게 멀쩡하게 살아남은 것이 있었으니, 바로 컵홀더에 꽂혀있던 스탠리 텀블러였다. 심지어 안에 든 얼음도 그대로였다. 스탠리는 이를 놓치지 않고 차주에게 새 텀블러와 함께 자동차까지 선물해 바이럴 마케팅으로 연결했다.
창립자 윌리엄 스탠리 주니어가 세상을 떠난 뒤, 스탠리는 여러 번 주인이 바뀌었다. 그러다 2002년, 시애틀 기반의 PMI(Pacific Market International)가 스탠리를 인수한다. PMI는 글로벌 공급망 전문 기업 HAVI 그룹의 자회사로, 락앤락처럼 식음료 용기 위주로 제품을 생산하던 회사였다.
당시만 해도 스탠리는 ‘작은 캠핑 용품 브랜드’ 정도였다. 브랜드를 상징하는 해머톤 그린 컬러는 우리나라의 국방색을 떠올리게 하고, 투박한 디자인은 여성 소비자의 눈길을 끌지 못했다. 코로나19 이후 아웃도어 활동이 늘며 매출이 소폭 증가하긴 했지만, 2019년 연 매출은 약 7천만 달러, 한화로 약 1천억 원에 불과했다. 그런 스탠리가 2023년 7억 5천만 달러, 10배 넘는 성장을 기록한다.
전환점은 2016년 출시된 ‘퀜처(Quencher)’ 텀블러다. 스탠리의 여느 모델처럼 큰 인기를 끌지 못했던 이 신제품은 곧 단종이 결정된다. 그런데 미국의 주부 애슐리 르슈어가 이 제품에 푹 빠지며 이야기가 달라진다. 단종 소식에 아쉬움을 느낀 그녀는 스탠리에 직접 연락했고, 회사는 “그렇게 좋아한다면 대량 주문해 직접 판매해 보라”는 제안을 건넨다. 일종의 공동구매 권유였다. 마침 애슐리는 소비자 리뷰 커뮤니티 ‘The Buy Guide’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녀는 잘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고, 통장에 있는 돈을 다 끌어와 주문서를 넣었다. 그리고 며칠 만에 5천 개의 퀜처를 완판한다. “아침에 스탠리에 얼음을 넣고 출근했는데 저녁까지 그대로였어요”라는 그녀의 멘트가 SNS에서 터지며,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간 것이다. 퀜처는 지금은 스탠리에서 가장 잘 팔리는 제품이 됐다.
2020년, 스탠리는 크록스 출신 테런스 라일리를 CEO로 영입한다. 그는 Z세대를 공략하던 크록스의 전략을 스탠리에 적용했다. 컬러는 다채로워졌고, 힙한 브랜드와의 협업과 한정판 마케팅도 시도했다. 인기 컬렉션은 1인당 구매 수량을 제한했는데, 이는 매장 오픈 런과 웃돈 붙은 중고 거래로 이어졌다. 크록스의 ‘신꾸’(신발 꾸미기) 문화는 스탠리의 ‘텀꾸’로 확장됐다. MZ세대는 텀블러에 손잡이, 주머니, 액세서리까지 꾸미며 인스타그램에 자랑했다. 차량 전소 사건을 바이럴로 연결한 주인공 역시 라일리였다.
스탠리의 부활은 ‘디토 소비’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유명인의 소비를 그대로 따라 하는 트렌드로, ‘Ditto’는 라틴어로 ‘나도’라는 뜻이다. 스탠리는 이제 단순한 보온병이 아니라, 취향과 소속감을 표현하는 상징이 됐다.
스탠리는 ‘할아버지의 보온병을 손자가 캠핑에서 쓰는’ 원조 브랜드에서, 오늘날 Z세대의 텀블러 취향을 선도하는 대표 브랜드로 재탄생했다. 과거의 헤리티지를 성공적으로 재해석해 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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