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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26년 0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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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찌라의 ‘기업 읽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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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케아 |
스웨덴 남부에 위치한 인구 70여 만의 스몰란드. 일년에 절반이 눈보라가 몰아치고 땅은 척박해 농사를 짓기가 쉽지 않은 지역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스몰란드 사람들은 성실함과 절약, 근검한 태도를 몸에 익히게 되었다.
이케아의 창립자 잉바르 캄프라드는 바로 이 스몰란드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절부터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성냥, 크리스마스 장식, 씨앗, 펜, 시계같은 소품을 팔았다. 이윤을 많이 남기기 위해 멀리 가서 싸게 사오는 법도 익혔다. 1943년, 열일곱살의 캄프라드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정식 회사를 세운다. 회사 이름은 자신의 이름 잉바르에서 I, 캄프라드에서 K, 태어난 농장 엘름타리드에서 E, 살고 있던 동네 아군나리드에서 A를 따 지었다. IKEA의 탄생이다.
이케아는 처음에 시계, 넥타이, 양말 같은 잡화를 우편으로 발송했다. 지금으로 치면 온라인 쇼핑몰인 셈이다. 캄프라드는 2차 대전 후에 유럽을 휩쓸었던 나일론 스타킹까지 인기 품목을 조달했다. 사업은 빠르게 성장했고, 몇 년 뒤 캄프라드는 그동안 모은 돈을 투자해 오래된 가구 공장을 사들인다. 그리고 오늘날 이케아의 상징인 전략들을 도입하며 가구 시장의 역사를 새로 쓴다.
먼저 캄프라드는 다른 품목을 포기하고, 가구에 집중했다.스웨덴은 1946년부터 주거 안정을 위해 100만 호의 주택을 공급한다. 스웨덴 인구가 1,042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거의 모든 국민에게 집을 제공한 셈이다. 집이 갑자기 넓어지자 가지고 있던 가구는 작게 느껴졌다. 스웨된 정부는 집을 꾸미는 합리적인 방법과 멋진 취향을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그린 스웨덴 화가 칼 라르손이 주목받은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이케아는 저렴한 가격으로 가구 수요를 뒷받침하면서도 스웨덴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했다. 특히 스몰란드의 꾸밈없고 단순하면서 자연지향적인 스타일을 내세웠는데, 이 스토리텔링은 전세계로 뻗어 나가 ‘북유럽 스타일’로 굳어진다.
참고로 이케아의 제품명은 독특하다. 난독증이 있는 캄프라드가 제품명을 쉽게 기억하려고 초기부터 사람 이름이나 도시 이름을 제품에 붙였기 때문이다. 원래는 앙투아네트, 밀라노, 텍사스 같은 영어식 이름을 사용했다. 그런데 1970년대 글로벌로 수출을 시작하면서 이케아는 전략적으로 ‘Made in 스웨덴’ 이미지를 강화한다. 빨간색이었던 로고는 스웨덴 국기 색깔인 노랑과 파랑으로 바꾸고 카탈로그에는 무스, 바이킹 같은 상징적인 그림을 넣었다. 제품명 역시 빌리 책장, 칼락스 선반, 뽀엥 암체어처럼 스웨덴어를 강조했다.
두 번째는 쇼룸 전략이다.당시만 해도 가구는 마음껏 만져보거나 앉아보고 살 수가 없었다. 비싸고 오래써야 하는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사기 전까지 편한지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캄프라드는 쇼룸을 실제 방처럼 꾸며놓고 고객이 사용해 보게 했다. 심지어 앉아있는 고객에게 야생화 엑기스를 꿀에 절인 스웨덴 전통차를 내어줬다. 이케아는 동네 사랑방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케아를 찾았다. 이케아의 매뉴얼에는 쇼룸에서 오래 머무는 사람을 제지하지 말라는 규정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중국에 이케아가 오픈했을 때는 어르신들이 모여 종일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케아는 도리어 편하게 쉴 수 있는 시니어존을 만들고 커피까지 무료로 제공했다.
무엇보다 이케아의 핵심은 조립 전 상태로 판매하는 ‘플랫팩’이다. 카탈로그 촬영을 위해 가구를 차에 싣다가 공간이 부족하자, 다리를 분리했다가 다시 조립한 일이 계기가 되었다. 여기에서 착안해 조립 전의 납작한 상자째로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완제품은 하나만 비치하고 나머지는 박스째로 적재함으로써 공간을 아낄 수 있을뿐만 아니라 조립, 포장, 물류, 배달의 모든 비용이 줄었다. 번거로울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고객들은 직접 가구를 완성하는 과정을 오히려 즐겼다. 이 전략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스웨덴 가구 업체들은 이케아의 대량판매, 저렴한 가격을 두고 동업자 의식이 없다며 반발했다. 이케아를 가구협회에 받아주지 않고 가구 박람회에도 출품을 금지했다. 불매운동, 표절시비, 하청생산 중단, 원목 공급 중지까지 서슴치 않았다. 캄프라드는 좌절감에 알콜에 중독되기까지 한다.
결국 1960년대 캄프라드는 이케아의 생산공장을 모두 인건비가 저렴한 동유럽으로 옮긴다. 동유럽의 낮은 인건비와 풍부한 목재 자원을 활용할 수 있었고 이는 이케아의 원가 경쟁력을 결정적으로 끌어올렸다. 오늘날 이케아는 전 세계 63개 시장에서 480여 개의 매장을 운영하는, 세계 최대 홈퍼니싱 리테일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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