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고경찬 벤텍스 대표 “블루오션은 없다, 레드오션에서 압도적 기술 우위로 승부해야” 고경찬 벤텍스 대표
발행 2024년 11월 17일
박선희기자 , sunh@apparelnews.co.kr
고경찬 대표는 1960년 제주 고산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 섬유공학과를 졸업하고 코오롱에 입사해 8년간 경험을 쌓았다. 마흔 살이 되던 1999년 기능성 섬유 기업 벤텍스를 설립했다.
고경찬 벤텍스 대표 /사진=최종건 기자
기능성 섬유 기업에서 나노 기술의 화학 소재 기업 변신
수퍼드라이존, 솔라볼, 매직쉴드 등 세계 최고 기술 보유
방산, 수출 등 다각화하며 제2의 창업 성공...내수 영업 강화
[어패럴뉴스 박선희 기자] “소재의 원천기술 개발과 상용화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만, 개발에 성공하면 산업의 근본적 혁신을 이끌어내는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하게 된다.”
스포츠 아웃도어에 기능성 소재를 공급하던 기업에서 세계적인 나노 기술 기반의 화학 소재 기업으로 변신한 벤텍스 고경찬 대표(64)의 말이다.
벤텍스는 나노 기술을 결합해 1초 만에 건조되는 속건 소재, 태광양으로 열을 내는 발열 소재, 항바이러스 악취 저감 소재를 개발한, 명실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기술 기업’이다.
산업계 최고 권위의 기술상인 장영실상을 무려 8회나 수상했고, 보유한 특허와 상표권의 가치가 4천억 원을 넘어선다.
세계 최고 수준의 원천기술을 보유한 강소기업이 됐지만, 2015년부터 2018년까지 벤텍스는 적자를 냈다. ‘숨조차 쉬기 힘든 고통’의 시간 속에서 고 대표는 좋은 기술을 가지고도 왜 사업이 어려운 것인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다 그가 찾은 답은 바로 ‘어디에 팔고 있는가’, 즉 시장이었다.
취재 현장에서는 좋은 기술로 수출을 많이 하는 소재 기업들이 내수 영업에는 손사레를 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이른바 내수의 고질적인 3대 리스크, 부실채권과 클레임, 부실재고 문제 때문이다. 더욱이 섬유 원단 제조업은 전형적인 다품종 소로트 산업이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가진 기업이라 해도 내수에서는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그래서 ‘가격’보다 ‘기술’을 우선하는 해외 시장에 전력을 다하는 것이다.
고 대표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벤텍스는 2018년 말 돌연 방산, 생활화학, 축산 시장으로 사업의 축을 돌린다. 그 결과 체질 개선이 이뤄졌고, 4년 연속 적자가 4년 연속 흑자로 전환됐다.
지난해 판교에 나노 R&D 센터를 갖춘 본사를 새로 마련했고, 성남에 바이오 R&D센터를, 포천에 스마트 팩토리도 구축했다.
글로벌 기업을 압도한 ‘원천기술’
벤텍스 '수퍼 드라이존'이 적용된 전투화 /사진=최종건 기자
고 대표는 “기술 자체보다 기술의 해석이 중요하다. 하나의 핵심 기술을 여러 시장의 용도로 해석하는 능력을 말한다. 벤텍스는 방산, 생활화학(화장품, 마스크 등), 축산으로 분야를 넓히는 동시에 원료, 소재, 기계도 수출한다. 원천기술 하나로 이른바 멀티 애플리케이션과 같은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고 말한다.
2014년부터 시작된 군납 사업은 벤텍스가 글로벌 소재 기업을 기술력으로 압도한 ‘쾌거’다.
국방위에서 진행한 세미나에 발표자로 서게 된 고 대표는 ‘대한민국 기후 환경에 맞는 레이어링 시스템’이라는 주제로 전투복 최적화 시스템을 발표한다. 이때 공개된 소재가 1초 만에 건조되는 수분 제어 기술의 섬유 ‘드라이 존’이다. 이전까지 미국의 고어텍스가 독점하고 있던 우리 군의 전투화가 벤텍스의 고투습 방소 소재로 만든 전투화로 교체되면서 80%의 국산화가 이루어졌고, 연간 100억 이상의 국방비 절감 효과를 낳았다. 벤텍스는 이후 군에 맞는 기술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발열 내의, 침낭, 언더웨어, 방한복, 하계 컴벳 소재를 공급하고 있다.
고 대표는 그 스스로가 연구 개발자다. “블루오션은 없다. 레드오션에서 차별화 제품으로 경쟁사를 무력화시켜라”. 평소 그가 자주 하는 이 말에는 그의 경험, 그의 삶이 녹아있다.
그는 회사를 경영하면서 중앙대학교에서 의학박사를, 성균관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기술 경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성능의 ‘1초 만에 건조되는 섬유’, 드라이존은 폭우와 함께 그에게 왔다. “어느 날 한강 변을 달리다 갑자기 폭우를 만났다. 빠르게 차오르던 물이 배수구를 통해 삽시간에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는데,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섬유 표면에 물리적 배수구를 만들면 섬유가 손상된다. 그래서 나노 기술을 활용해 화학적 배수구를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회상한다.
K방산 수출, 해외 축산 시장 진출도
벤텍스의 태광양 발열 충전재 '솔라볼' /사진=최종건 기자
해외에서 ‘인간이 도달하고자 하는 궁극의 소재’라 극찬을 받은 ‘매직쉴드’는 의대에서 피부를 공부한 효과를 제대로 봤다.
피부 모사 소재라 불리는 ‘매직쉴드’는 세계 최초로 비는 완벽히 막고, 땀은 빠르게 흡수해 말린다. 그 이전, 어떤 글로벌 소재도 해결하지 못한 일이다.
태양광을 이용해 스스로 열을 내는 ‘솔라볼’은 오리털을 대체하는 충전재로 자라, 월마트 공급을 시작으로 중국 원사 제조사에 발열 원료 물질을 공급하기도 했다. 이 기술은 현재 군 방한복과 침낭 소재로도 사용 중이다.
세상에 없던 길을 만들어 온 벤텍스는 이제 또 다른 길을 내려고 한다. 지난해 264억 원의 매출을 냈고, 연구개발, 생산 인프라도 탄탄히 갖춰짐에 따라 내수 영업을 강화하고 수출도 추진한다.
벤텍스의 '솔라볼'과 '매직쉴드'로 제작된 군용 패딩 /사진=최종건 기자
글로벌 대기업의 인지도에 밀려 기술력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코로나 이전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져, 솔라볼과 매직쉴드, 수퍼드라이존에 대한 국내 업체들의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기후 변화가 극심해지면서 기능성 소재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방산의 해외 진출, 항 바이러스 악취 저감 소재의 해외 축산 시장 수출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1~2년 내 기업공개도 추진한다.
고 대표는 “중소기업이 만든 소재, 한국산 소재라는 이유로 저평가되는 분위기가 여전히 있다. 이미 글로벌 수준을 넘어선 K소재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고, 그 가치를 제고시켜줄 정책적 지원도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니클로와 도레이의 사례처럼 제조업과 유통사 간의 성공적인 협업이 이루어지는 생태계가 조성되었으면 한다. 브랜드에는 없는 연구개발과 생산 인프라가 우리에게는 있다.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나노(Nano) : 난쟁이를 뜻하는 그리스어 ‘Nanos’에서 유래됐다. 10억 분의 1m로, 사람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 원자 3~4개 크기에 해당하는 극미세 물질로, 나노 기술은 이를 조작하여 기능성을 생성하는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