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택] 니트 게이지와 환편, 두려움의 용어를 넘어 창작의 언어로

발행 2026년 03월 08일

어패럴뉴스 , appnews@apparelnews.co.kr

오진택의 '섬유의 민족'

 

이미지=챗GPT

 

수공예 시장이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대량 생산 의류에 대한 피로감, 지속 가능성에 대한 관심, 그리고 '직접 만드는 경험'에 대한 욕구가 맞물리면서 니트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 하나의 문화적 흐름이 되었다. 그러나 초심자들이 니트에 입문할 때 가장 먼저 마주하는 장벽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생소한 전문 용어다. "게이지는 맞추셨나요?", "이 작품은 환편으로 진행합니다"와 같은 문장은 입문자의 의욕을 단숨에 위축시키곤 한다.

 

하지만 니트에서 말하는 게이지와 환편은 결코 전문가만의 영역이 아니다. 오히려 이 두 개념은 니트의 완성도와 구조를 이해하는 핵심 원리이며, 창작자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기본 토대에 가깝다. 용어의 외피를 벗겨내고 그 의미를 들여다보면, 니트는 훨씬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작업임을 알 수 있다.

 

게이지(gauge)는 통상 10cm × 10cm 크기의 스와치를 떠서 그 안에 포함된 코(stitch) 수와 단(row) 수를 측정하는 작업을 말한다. 예컨대 10cm 안에 20코, 28단이 들어간다면 해당 작품의 게이지는 '10cm에 20코 28단'이 된다. 이는 단순한 참고 수치가 아니라, 도안의 모든 치수를 실물로 변환하는 기준점이다.

 

왜 이 과정이 중요한가. 니트는 직물과 달리 실 한 가닥을 연속적으로 얽어 구조를 만든다. 따라서 뜨는 사람의 손힘, 바늘 굵기, 실의 탄성에 따라 밀도가 달라진다. 동일한 도안을 사용하더라도 A는 95cm 가슴둘레의 스웨터를, B는 105cm의 스웨터를 완성할 수 있다. 이 차이를 통제하는 장치가 바로 게이지다.

 

게이지를 맞추지 않은 채 의류를 완성할 경우 발생하는 문제는 단순한 '사이즈 오차'에 그치지 않는다. 어깨선이 처지거나, 소매산이 맞지 않거나, 넥 라인이 들뜨는 등 구조적 불균형이 나타난다. 이는 디자인 해석의 오류가 아니라 물리적 계산의 부재에서 비롯된 결과다.

 

따라서 게이지는 감각을 억압하는 규칙이 아니라, 감각을 수치로 번역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손힘이 평균보다 강한지, 느슨한지, 특정 실에서 어떤 장력이 형성되는지를 객관적으로 확인하는 단계다.

 

환편(丸編)은 원통형으로 편물을 만드는 방식이다. 평면으로 앞판과 뒷판을 각각 떠서 봉제하는 전통적 방식과 달리, 원형 바늘을 사용해 끊김없이 한 방향으로 이어 뜬다. 최근 '심리스(seamless) 니트'가 대중화되면서 환편은 현대 니트 디자인의 표준적 기법으로 자리 잡았다.

 

환편의 가장 큰 장점은 봉제선이 없다는 점이다. 옆선이 사라지면 착용감이 부드러워지고, 구조적 이음새에서 발생하는 두께 차이도 줄어든다.

 

기술적으로 환편은 오히려 단순하다. 모든 단을 겉뜨기로 진행하면 자동적으로 메리야스 조직이 형성된다. 평면 편물에서 겉·안뜨기를 번갈아야 하는 것과 비교하면, 패턴 이해는 더 직관적이다.

 

환편은 또한 생산 공정의 변화를 반영한다. 봉제 과정이 생략되면 시간과 노동이 절감되고, 완성 이후의 수정도 용이해진다.

문제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전달되는 방식이다. 때문에 교육 현장에서 필요한 것은 용어의 축소가 아니라 번역이다. 게이지는 '내 손의 밀도 확인', 환편은 '빙글빙글 이어 뜨기'라고 설명하는 순간, 개념은 훨씬 친숙해진다.

 

전문성은 복잡한 단어를 아는 데서 출발하지 않는다. 개념의 원리를 이해하고, 반복 속에서 몸에 익히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니트 역시 마찬가지다. 한 코의 밀도를 확인하고, 한 단을 원으로 이어가며, 우리는 재료와 대화하는 법을 배운다.

 

오진택 에이엠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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