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찌라의 ‘기업 읽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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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발란스 |
뉴발란스는 러닝화 트랙스터로 유명세를 타긴 했지만, 70년대 초반만 해도 6명이 하루 30켤레를 생산하던 작은 공방 수준의 브랜드였다.
그런데 이때, 뉴발란스의 인수에 관심을 갖는 이가 나타난다. 의료 기술 회사에 고연봉으로 재직 중이던 짐 데이비스는 뉴발란스가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키드 부부의 집을 직접 찾아간다. 부부는 지금까지의 경영 내용과 1년 뒤 예상 매출까지 투명하게 공유했다.
정작 이를 듣던 데이비스는 자신이 신발 산업에 대한 이해가 없음을 깨닫고 돌아오는데, 부부는 그에게 트랙스터 두 켤레를 선물한다. 데이비스는 돌아와서 트랙스터를 신고 이따금 뛰곤 했다. 그런데 주변의 러너들이 트랙스터를 먼저 알아보기 시작했다. 러너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났던 것이다. 데이비스는 1년간 고심 후, 다시 키드 부부를 찾아가고, 1972년 10만 달러에 뉴발란스를 인수한다. 브랜드를 넘기면서 폴 키드는 이렇게 말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가로 사이즈는 꼭 지키세요.”
데이비스는 마케팅에 집중한다. 이때, 스타벅스 로고를 만든 이로 잘 알려진 디자이너 테리 헤클러가 합류한다. 그는 삐딱하게 기운 ‘N‘ 로고를 만들어 뉴발란스 운동화 전 제품에 적용한다. 또 화려한 이름 대신 숫자로 모델명을 붙이는 방식을 도입했다. 신발의 가치는 소비자가 판단할 일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실제로 320은 32달러, 990은 99달러처럼 당시 숫자는 가격을 의미했다. 현재는 숫자에 기능적 의미가 더해져, '40' 시리즈는 안정성과 쿠셔닝이 뛰어난 컨트롤 슈즈를, '90' 시리즈는 속도를 중시한 스피드 슈즈를 뜻하는 식이다.
또, 헤클러는 잘 뛰는 대학생들을 발굴해 광고모델로 삼자고 제안했고, 이를 계기로 뉴발란스 러닝팀이 결성된다. 팀의 역량은 점점 강화되어, 80년대에는 뉴발란스 소속 피터 파이징거가 올림픽에서 14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뉴발란스는 이를 발판으로 마라톤과 올림픽을 꾸준히 후원하며, 달리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는다.
공교롭게도 데이비스가 보스톤에서 뉴발란스를 인수하던 날은 1972년 보스톤 마라톤 대회 날이었는데, 이때를 기점으로 미국에서는 러닝 열풍이 분다. 뉴발란스는 러닝에 더욱 특화된 모델, 320을 선보였다. 1975년 뉴욕 마라톤 대회에서는 톰 플레밍이 내돈내산으로 구매한 뉴발란스 320을 신고 우승한다. 이듬해에 320은 세계적인 러닝 잡지 ‘러너스 월드’에서 최고의 러닝화로 선정된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6명이 신발을 만들던 작은 회사는, ‘N’ 로고를 박는 직원만 50명으로 늘어날 만큼 성장했다.
하지만 1980년대에 접어들며 뉴발란스는 나이키, 아디다스와의 경쟁에서 밀리는 한편, 무리한 생산 확대로 재정 압박을 겪기도 한다. 이에 대응해 뉴발란스는 구매력 있는 중년층을 타깃으로 삼고, 기능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 전략은 높은 신뢰를 얻는 데는 성공했지만, 덕분에 뉴발란스는 한동안 ‘아재 신발’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됐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놈코어(Normcore)’가 유행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된다. 평범함을 쿨하게 소비하는 이 트렌드는 한국식으로 말하면 ‘꾸안꾸’에 가깝다. 흰 티셔츠에 청바지, 회색 후드집업에 뉴발란스를 무심하게 매치하는 스타일이 유행했고, 이는 생전 스티브 잡스가 즐겨 입던 차림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마크 저커버그, 오바마 전 대통령 등이 찾으며 뉴발란스는 다시 주목받는 브랜드로 떠올랐다.
뉴발란스는 한국에서 특히 사랑을 받았다. 2000년 국내에 직진출 했을 당시에는 매출 250억 원 규모의 비교적 작은 브랜드였지만, 2008년 이랜드가 독점 판매권을 획득하면서 본격적인 성장이 시작된다. 기능성에 트렌드를 더한 마케팅 전략이 주효했고, 2024년에는 연매출 1조 원을 돌파했다. 현재 뉴발란스는 한국 스포츠 브랜드 시장에서도 나이키에 이은 2위를 차지하며, 가장 대중적인 운동화 브랜드로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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