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찌라의 ‘기업 읽어드립니다’
1913년 겨울, 사무실에서 식은 커피 마시다 아이디어 떠올려
스테인리스 벽 사이 진공 상태, 열 전달 막는 ‘텀블러’ 개발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는 한국만의 문화가 아니다. 더운 날씨와 맞물려 미국에서도 달콤한 아이스 음료가 떠오르고 있다. 미국 스타벅스에서 아이스 음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3년 40% 미만이었지만, 2021년에는 무려 75%까지 치솟았다. 컬러풀한 시럽과 토핑을 더한 아이스 음료로 주목받는 커피 브랜드 더치브로스(Dutch Bros)가 스타벅스를 위협하며 급부상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런 변화에 맞춰 미국 텀블러 시장도 급격히 성장했다. 미국식 텀블러는 장거리 운전에서 아이스 음료를 장시간 즐기는데 포커스 하고 있다. 보통 1L 이상의 대용량에, 차량 컵홀더에 들어갈 수 있도록 아래가 잘록하고, 빨대가 달려 있는 디자인이 특징이다. 이 시장의 중심에는 100년 넘은 브랜드, ‘스탠리(Stanley)’가 있다.
2023년 스탠리의 연 매출은 7억 5천만 달러(약 1조 원)로, 4년 전인 2019년과 비교해 10배 이상 성장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해머톤 그린’이라는 국방색 보온병으로 캠핑족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브랜드가 파스텔톤으로 환골탈태하고 MZ세대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 중심에는 ‘텀블러의 원조’라는 헤리티지가 있다.
스탠리의 시작은 19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립자 윌리엄 스탠리 주니어는 예일대 법학과에 진학했지만, 당시 급부상하던 전기 산업에 매료되어 학업을 중단하고 돌연 공장 엔지니어에 뛰어든다. 그는 교류 변압기를 개발하며 당시 직류 기반의 전력 체계에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왔고, 에디슨과 함께 일할 만큼 촉망받는 과학자였다. 특히 1886년, 세계 최초로 상업용 교류 전력 시스템을 구축해 도시 전체에 전기를 공급하는 데 성공하면서 교류 방식이 실용적이고 안전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게다가 조명, 소켓, 램프 등 총 129개의 특허를 보유했던 그는 1912년 미국 전기공학회(AIEE)의 에디슨 메달을 수상했고, 미국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도 이름을 올린다. 1890년 창립한 스탠리 일렉트릭 제조회사 GE(제너럴일렉트릭)에 매각하기도 했는데 그야말로 천재 엔지니어이자 사업가였다.
1913년 겨울, 윌리엄은 자신의 연구실에서 식은 커피를 마시다 문득 생각했다. “보온병은 왜 유리로만 만들지? 스테인리스로 만들면 더 안전하고 오래가지 않을까?” 그는 자신이 보유한 금속 가공 기술을 활용해, 세계 최초로 스테인리스강 이중벽 구조에 진공 단열을 적용한 보온병을 개발한다. 두 벽 사이에 공기를 제거해 진공 상태를 만들어 열전달을 막는 방식으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기술이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텀블러’라 부르는 제품의 시초였다.
처음에는 주로 노동자들이 도시락과 함께 따뜻한 점심을 먹기 위해 찾았다. 이후 내구성이 뛰어나 낙하나 압력에도 끄떡없던 이 보온병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조종사에게 지급되었고, 이후 전 부대에 보급되며 ‘미군의 보온병’으로 불리게 된다.
1915년 윌리엄은 ‘스탠리’라는 회사를 창립해 본격적인 상업화에 나서지만, 아쉽게도 그가 회사의 성장을 직접 지켜본 시간은 길지 않았다. 회사를 세운 지 1년 만인 57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후 1921년 스탠리는 다른 기업에 인수되며 창업자의 손을 떠난다. 흥미로운 건 그의 아들 해롤드 스탠리는 아버지의 사업을 잇기보다는 금융계로 향해, JP모건의 손자와 함께 ‘모건 스탠리’를 공동 창업한다. 한 집안에서 산업과 금융 두 축을 상징하는 인물이 각각 나온 셈이다.
스탠리는 이후 수십 년간 ‘보온병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지만, 한동안은 아웃도어 캠핑 브랜드라는 정체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최근 결정적인 전환점이 등장하면서, 전혀 다른 궤도로 진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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