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용의 '물류로 세상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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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리 경영 실적 현황(출처: 컬리) |
컬리가 드디어 첫 연간 영업이익 흑자를 냈다. 2025년 컬리의 연간 영업이익은 131억 원. 분기 흑자가 아니라, 연간 기준으로도 이익을 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동안 컬리는 “새벽 배송 모델은 구조적으로 돈을 벌기 어렵다”는 시장의 의심을 끊임없이 받아왔던 회사였기 때문이다.
컬리가 설명하는 흑자의 이유는 비교적 명확하다. 신선식품을 중심으로 한 주력 사업이 안정적으로 성장했고, 뷰티·패션·리빙 등 카테고리 확장이 이어졌다. 여기에 마켓플레이스(3P)와 풀필먼트 서비스(FBK, Fulfillment By Kurly), 네이버와 함께 선보인 컬리N마트 같은 신사업이 거래액 확대를 이끌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컬리의 지난해 거래액은 3조 5,000억 원을 넘기며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성장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 설명만으로는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컬리는 과거에도 매출과 거래액이 꾸준히 성장했던 회사였다. 문제는 그 성장의 상당 부분이 물류비와 운영비 증가로 다시 빠지면서, 좀처럼 이익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특히 신선식품 중심의 새벽 배송 모델은 물류 인프라 투자와 운영 비용이 크기 때문에, 매출이 늘어난다고 해서 곧바로 수익성이 좋아지는 구조가 아니었다.
그래서 이번 컬리의 연간 흑자를 이해하려면 질문을 조금 바꿔볼 필요가 있다. 얼마나 많이 팔았나가 아니라, ‘늘어난 주문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구조가 되었나’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실제 컬리의 이번 실적을 보면 거래액 성장뿐 아니라 매출원가율 개선과 주문 처리 효율화 같은 운영 지표 개선이 함께 나타난다.
결국 이번 흑자의 핵심은 단순히 상품을 더 잘 팔았다는 데 있지 않다. 컬리의 물류와 운영 구조가 매출 성장과 함께 이익이 따라오는 형태로 바뀌기 시작했다는 점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리고 이 변화의 중심에는 컬리가 지난 몇 년 동안 다듬어온 물류 체질 개선이 자리하고 있다.
그렇다면 컬리는 물류 구조를 어떻게 바꿨을까. 핵심은 크게 두 가지다. 물류 운영 효율을 끌어올린 것, 그리고 그 물류 인프라를 외부 거래까지 받아들이는 구조로 확장한 것이다.
먼저 운영 효율 측면에서 컬리는 지난 몇 년 동안 김포, 평택, 창원 물류센터를 확장하며 물류 거점 운영을 고도화해 왔다. 주문 처리 프로세스와 작업 동선을 개선하고, 물류센터 운영 효율을 높이는 작업이 이어졌다.
그 결과 이번 실적에서도 물류 효율 개선의 흔적이 숫자로 나타난다. 컬리는 지난해 매출원가율을 전년 대비 1.5%p 낮췄고, 판관비 증가 폭은 0.2%p 수준에 그쳤다. 거래액이 늘어났는데도 비용 증가 속도는 상대적으로 느렸다는 뜻이다.
이 변화의 배경에는 물류 거점 재편도 있다. 컬리는 과거 장지동 물류센터를 폐쇄하고 평택과 창원 중심의 물류 운영 구조로 통합하면서 물류 생산성을 끌어올려 왔다. 자동화 설비와 운영 효율화를 통해 주문 처리 비용을 낮추는 작업이 이어졌고, 이는 매출이 늘어날수록 비용 부담이 커지는 구조를 완화하는 역할을 했다.
여기서 더 중요한 변화는 물류 인프라의 역할이다. 과거 컬리의 물류센터는 사실상 컬리가 직매입한 자체 상품을 처리하기 위한 역할에 가까웠다. 새벽배송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인프라였지만, 그 자체로 수익을 만들기 어려운 구조였다. 컬리 입장에서 물류는 ‘비용’이었기 때문이다.
컬리는 최근 몇 년 동안 이 물류 인프라를 거래 확대의 기반으로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3년 8월 시작한 판매자 대상 풀필먼트 서비스인 FBK다. FBK는 판매자가 컬리 물류센터에 상품을 입고하면 보관, 재고 관리, 포장, 배송까지 컬리가 대신 처리해 주는 구조다. 이 모델이 확장될수록 물류센터는 단순한 비용 인프라가 아니라 물류 서비스 수익을 늘리는 플랫폼 인프라가 된다. 서비스 증대로 인한 거래액 증가는 덤으로 따라온다.
실제로 컬리에 따르면 FBK를 포함한 3P 거래액은 지난해 54.9% 성장했다. 패션, 주방용품, 인테리어 등 다양한 상품이 컬리 플랫폼으로 유입되면서 물류 인프라의 활용 범위도 함께 넓어지고 있다.
여기에 네이버와 함께 시작한 컬리N마트 같은 협업 모델도 물류 인프라 활용도를 높이는 흐름에 포함된다. 서비스 출시 이후 컬리N마트의 월평균 거래액은 매달 50% 이상 증가하며 전체 거래액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컬리N마트 네이버 플러스 멤버십 고객들이 새롭게 컬리를 이용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물류 측면의 규모와 밀도의 경제를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정리하면 컬리는 물류비를 단순히 줄이기보다 물류를 수익 창출 창구로 더 많이 활용할 수 있는 구조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변화가 바로 컬리의 연간 흑자를 가능하게 만든 물류 측면의 핵심 배경이다.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이 구조가 과연 지속적인 성장까지 만들어낼 수 있을까하는 것이다. 컬리의 물류는 여전히 쿠팡과 비교되곤 한다. 전국 단위 물류망, 더 늦은 주문 마감 시간, 더 많은 상품을 처리하는 규모까지. 물리적인 인프라 규모만 놓고 보면 쿠팡이 한발 앞서 있다는 평가가 많다. 컬리 역시 이 격차를 단기간에 따라잡겠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대신 컬리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쿠팡처럼 가장 큰 물류망을 만드는 대신,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효율적인 물류 구조를 만들고 그 위에 거래를 쌓는 전략이다. 신뢰 기반 큐레이션 중심 상품 전략, 멤버십 기반 반복 구매 유도, 그리고 FBK와 같은 물류 서비스 확장까지. 이 모든 전략의 공통 기반을 마치 백화점스러운, 컬리만의 상품 브랜딩으로 만들어내고자 한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남아 있다. FBK와 3P 거래액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전체 거래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제한적이다. 컬리N마트 역시 이제 막 시작한 실험 단계에 가깝다. 3P 브랜드와 네이버 트래픽이 늘어날수록, 컬리 본진 거래를 잠식할 가능성도 함께 커진다. 점차 개선되고는 있지만 3년째 한 자릿수에 머무는 매출 성장률(2023년 2%, 2024년 5.7%, 2025년 7.8%) 역시 풀어야 할 과제다.
그래서 컬리의 연간 흑자는 끝이 아니라 시작에 가깝다. 그동안 버티는 기업이었던 컬리가 이제는 버는 기업으로 넘어가는 첫 번째 관문을 통과했을 뿐이다. 앞으로 컬리는 물류를 통해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 그 과정을 함께 살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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