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용의 '물류로 세상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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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제미나이 |
대화에서 결제까지. 카카오와 네이버가 올해 나란히 내세운 에이전틱 커머스의 목표다. 같은 문장을 쓰지만, 두 회사가 선택한 입구는 달랐다. 목적지가 같아도 출발점이 다르면 도착하는 경로도, 만나는 고객도, 만들어내는 데이터도 달라진다. 에이전틱 커머스 시대, 어떤 플랫폼이 우리 비즈니스에 더 유리한지 판단하려면 이 차이부터 이해해야 한다.
카카오의 전략은 카카오톡이라는 메신저 안에서 탐색부터 발견, 결제까지 커머스의 흐름을 완결하는 것이다. '카나나 인(in) 카카오톡'은 그 핵심에 있는 AI 에이전트 서비스다. 이용자가 별도로 요청하지 않아도 그동안 나눈 대화 맥락을 읽고, 일정 관리와 정보 검색, 상품 및 장소 추천을 수행한다. 질문에만 답하는 것이 아니라 AI가 먼저 말을 거는 ‘선톡’ 방식이 특징이다. 실제로 카나나 내부 상호작용의 60% 이상이 이 선톡으로 시작된다는 게 카카오의 설명이다. AI가 단순 응답자가 아니라 대화를 여는 주체로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구조적 강점은 분명하다. 카카오톡 5천만 이용자가 매일 주고받는 대화에는 구매 의도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주말에 뭐 먹을까"라는 대화가 음식점 예약으로, “생일 선물 뭐 살까”라는 메시지가 선물하기 결제로 이어지는 흐름이다.
그런데 여기서 구조적인 질문이 하나 생긴다. 카카오 선물하기는 다양한 카테고리를 아우르는 플랫폼이 아니다. 선물하기 맥락을 벗어나면 추천할 수 있는 상품군에 한계가 있고, 대부분 판매자 입점 방식으로 운영되기에 서비스 품질을 균일하게 통제하기도 어렵다. AI가 추천하는 상품이 구색과 가격, 서비스 측면에서 타 쇼핑 플랫폼 대비 뒤떨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카카오의 입구는 '대화'
카카오가 버티컬 커머스 파트너십에 공을 들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 연동 중인 파트너는 패션의 무신사, 뷰티의 올리브영, 프리미엄 상품의 현대백화점 등이다. 카카오는 카카오톡의 압도적인 트래픽과 대화 맥락 기반의 고객 접점을 제공하고, 버티컬 업체들은 상품 풀과 물류·CS 운영 역량을 제공한다. AI는 그 중간에서 대화 흐름을 읽고 적절한 추천을 연결하는 역할을 맡는다. "내일 출근할 때 입기 좋은 룩 추천해줘"라는 한 마디가 무신사 상품 추천으로, "건성 피부에 맞는 선크림 알려줘"가 올리브영 인기 상품 제안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이 모델이 제대로 작동하면 카카오는 선물하기의 구색 한계를 넘어 생활 전반의 구매 의사결정을 대화로 해결하는 쇼핑 에이전트를 구축할 수 있게 된다. 카카오가 이를 ‘헤드리스 커머스’로 표현하는 이유다. 기존 앱 중심의 서비스 구조에서 인터페이스와 기능이 분리되고, 카카오톡 대화창이 모든 버티컬 커머스의 프론트엔드가 되는 그림이다.
다만 시장의 시선은 아직 유보적이다. 카나나 인 카카오톡의 확산 속도가 기대보다 더디다는 평가가 나온다. 헤드리스 생태계로의 전환에 대한 파트너사들의 전략적 저항도 여전히 존재한다. 자체 트래픽을 기반으로 광고 수익을 창출하는 버티컬 업체 입장에서는 카카오톡으로 트래픽 통제권을 넘기는 것이 쉬운 선택이 아니다. AI가 먼저 말을 거는 선톡 구조가 편리함을 제공할 수도 있지만, 과도한 상업적 개입으로 인식될 경우 사용자 피로를 키울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카카오는 연내에 결제까지 완료되는 에이전틱 커머스를 선보이겠다는 목표를 내걸었지만, 실현까지의 거리는 아직 남아 있다.
네이버의 입구는 '검색'
네이버는 다른 경로로 같은 목적지를 향한다. 자체 쇼핑앱 ‘네이버플러스 스토어’ 앱 내 AI 브리핑으로 검색 경험을 바꾸고, 쇼핑 에이전트로 탐색에서 추천까지 연결하고, 지난달 출시한 AI 탭으로 대화형 검색을 본격화했다. 발견과 탐색의 단계에서 이용자를 잡아두고, 그 흐름을 결제까지 끊김없이 이어가는 전략이다.
네이버가 강조하는 핵심 경쟁력은 두 가지다. 국내 1위를 자부하는 60만 판매자 네트워크, 그리고 결제를 포함한 커머스 가치사슬 전반의 인프라 내재화다. 네이버는 결제 인프라 연동 여부에 따라 광고 전환율이 2배 가까운 격차를 보인다는 것을 자사 데이터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검색에서 시작해 결제로 완결되는 흐름이 광고 효율에도 직접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실제로 1분기 광고 매출 성장분 중 AI 기여도는 50% 이상을 기록했다.
지표의 질도 눈에 띈다. AI 브리핑의 후속 질문 클릭 수는 출시 초기 대비 10배 이상 확대됐다. 쇼핑 에이전트를 통해 유입된 방문자의 재방문자 수는 출시 대비 4배 이상 증가했다. 아직 초기이지만 일반 검색 대비 높은 전환율을 기록하고 있다는 네이버 측 설명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네이버는 오프라인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N페이 커넥트 단말기를 통해 오프라인 거래 데이터를 끌어당기고, 이를 온라인 검색·쇼핑 데이터와 통합해 추천 모델을 고도화하는 구조다. 온라인에서 쌓아 올린 경쟁력이 오프라인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 구조는 쉽게 따라올 수 없는 차별화된 생태계가 될 것이라는 게 네이버의 판단이다.
한계도 있다. 쇼핑 에이전트는 아직 ‘가이드’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네이버 스스로 인정했다. 서비스마다 적용되는 버티컬 모델의 고도화 작업이 진행 중이고, AI 브리핑 광고의 본격 수익화는 하반기로 예정돼 있다.
두 회사가 각자의 방식으로 에이전틱 커머스를 설계하고 있지만, 소비자의 실제 행동은 아직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글로벌 커머스 인텔리전스 플랫폼 크리테오가 올해 1분기 발표한 소비자 트렌드 리포트에 따르면, 한국 소비자가 AI를 활용하는 방식은 비교(45%), 발견(40%), 할인 탐색(31%) 순이었다. 구매 자체를 AI에 맡기는 비중은 아직 낮다. 크리테오 측은 이를 두고 "AI를 통해 구매 여정이 짧아진 것이 아니라, 더 확대되고 연장됐다"고 표현했다. AI에서 탐색하고, 실제 구매는 밖에서 한다는 뜻이다.
더 흥미로운 데이터도 있다. 여러 소매 사이트의 상품 정보를 통합해 제공하는 LLM을 신뢰한다는 한국 소비자 응답은 43%에 달했지만, 특정 소매 사이트가 제공하는 AI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7%에 불과했다. AI 추천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낮지만 특정 플랫폼, 예를 들어 카카오나 네이버가 운영하는 AI의 추천은 신뢰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한국 소비자 안에는 플랫폼 AI의 진정성에 대한 의심이 이미 내재화돼 있다.
이는 카카오와 네이버 모두에게 던져지는 질문이다. 두 회사는 각자의 플랫폼 안에서 탐색부터 발견, 결제까지 완결하는 구조를 만들려 하고 있다. 그런데 소비자는 특정 플랫폼의 AI 추천을 신뢰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플랫폼이 설계한 흐름과 소비자가 실제로 움직이는 방향 사이의 간극이 아직 크다.
결국 에이전틱 커머스의 승패는 누가 더 정교한 AI를 만드느냐의 경쟁이 아닐 수 있다. 소비자가 이미 신뢰하는 AI 생태계 안에서 자사 상품이 어떻게 발견되고 추천되느냐, 즉 SEO 다음의 GEO(Generative Engine Optimization) 경쟁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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