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용] 올리브영의 미국 도전, 10년 전과 무엇이 달라졌나

발행 2026년 06월 11일

어패럴뉴스 , appnews@apparelnews.co.kr

엄지용의 '물류로 세상 보기'

 

이미지=챗GPT

 

K뷰티의 첫 번째 미국 열풍은 조용히 사라졌다. 2010년대 초반, 더페이스샵과 스킨푸드 같은 로드샵 브랜드들이 한인타운에 매장을 냈고, 닥터자르트는 세포라 입점으로 존재감을 알렸다. 하지만 너무 많은 브랜드가 비슷한 컨셉, 비슷한 가격, 비슷한 패키지로 쏟아지면서 미국 현지 소비자는 빠르게 피로해졌다. 해외 미디어가 'K뷰티 피로(K-Beauty Fatigue)'라는 말을 쓸 정도였다.

 

CJ올리브영도 그 시기를 비껴가지 못했다. 2014년 미국 법인을 출범했지만 단 하나의 매장도 열지 못하고 철수했다. 그리고 약 10년이 지난 5월 29일, 올리브영은 캘리포니아 패서디나에 첫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다. 미국 전용 온라인몰도 같은 날 런칭했다.

 

이번엔 뭐가 다를까. 입지부터 다르다. 패서디나점이 들어선 콜로라도대로 일대는 LA 동북부를 관통하는 고소득 라이프스타일 상권이다. 바로 옆에 애플스토어가 있고, 도보 1~2분 거리에 룰루레몬과 알로 요가, 티파니앤코 매장이 밀집해 있다. 10년 전 한인타운 중심의 접근과는 출발점 자체가 다르다.

 

첫 번째 붐이 이미 한국 제품을 사용하고자 하는 교포, 혹은 한국 문화에 관심 있는 소수 소비자를 겨냥했다면, 이번엔 주류 프리미엄 소비자를 정면으로 조준한다. 이미 K뷰티는 미국 소비자들에게 친숙하고, 그 자신감은 CJ올리브영이 선택한 미국 매장의 입지에서부터 느껴진다.

 

상품 구성도 다르다. 패서디나점은 약 400개 브랜드, 5,000여 개 상품 중 80% 이상을 K브랜드로 채웠다. 아누아와 토리든, 롬앤 등 국내에서 검증된 인디 브랜드들이 전면에 나선다.

 

첫 번째 붐 당시 대형 로드샵 브랜드의 각개전투와는 구성과 결이 다르다. CJ올리브영이 자체 전개하는 PB를 비롯하여 K뷰티 브랜드들이 연합전을 펼치고 있다. 올리브영과 함께 가는 브랜드들은 이미 아마존과 틱톡샵에서 글로벌 팬덤을 선(先) 구축한 뒤 오프라인으로 확장하는 지금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또 하나의 열쇠는 PB다. 올리브영 미국 사업은 바이오힐보, 웨이크메이크, 브링그린 등 자체 PB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국내 직매입 상품 마진율이 약 45% 수준인 반면, PB는 50~70%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미국의 높은 임대료와 인건비, 주(州) 간 물류비를 감당하려면 구조적으로 PB 의존도를 높일 수밖에 없다는 게 크로스보더 커머스 물류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여기에 얹혀진 것이 통합 물류다. 올리브영이 3월 캘리포니아 블루밍턴에 구축한 약 1,100평 규모의 서부 통합 물류센터는 단순 배송 거점이 아니다. 올리브영은 세포라 매장 내 'K뷰티 존' 입점 브랜드를 대상으로 물류 전 과정을 책임지는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개별 브랜드가 소량 수출 시 부담하는 물류비와 관세·통관 비용을 올리브영이 흡수하는 구조다. 2024년 시행된 미국 화장품 규제현대화법(MoCRA) 대응도 포함된다. PB로 물류 인프라를 선점한 뒤, K브랜드 전반의 미국 진출을 지원하는 'K뷰티 미들 벤더' 포지셔닝이다.

 

10년 전 실패의 본질은 현지 인프라도, 데이터도 없이 유통망만 내세운 데 있었다. 올리브영은 이번 패서디나점에서 수집한 고객 반응과 운영 데이터를 기반으로 향후 출점 전략을 고도화한다는 계획이다. 서부에서 시작해 중남부, 뉴욕 등 동부권으로 확장하는 로드맵이다. 물류센터도 최대 5,000평까지 확장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K뷰티의 두 번째 미국 붐은 분명 첫 번째와 다른 조건에서 시작됐다. 수많은 K뷰티 브랜드들이 디지털로 팬덤을 선점했고, 올리브영은 그 위에 오프라인 쇼케이스와 물류 인프라를 얹는다. 각개 전투가 아니라 통합 운영 인프라가 중요한 게임이다.

이 구조가 지속 가능하려면 올리브영이 미국에서 국내와는 다른 관계를 설계해야 한다. 국내에서 올리브영은 브랜드 성장의 필수 관문이지만, 동시에 높은 수수료와 운영 조건으로 '갑'에 가깝다는 인식도 공존한다. 백지 상태에서 시작하는 미국 시장에서는 그 관계를 다시 써야 한다.

 

첫 번째 붐이 '과잉'으로 사라졌다면, 두 번째 붐의 열쇠는 '신뢰'다. 이미 막대한 트래픽과 인프라를 구축한 국내와는 다르게, 글로벌에서는 앞서 시장을 개척한 브랜드들의 힘이 올리브영에게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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