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애] 노라노의 '건달 정신'…샤넬보다 오래된 현역의 비결

발행 2026년 04월 19일

어패럴뉴스 , appnews@apparelnews.co.kr

유미애의 '관찰자 시점'

 

패션 디자이너 노라노

 

최근 기사를 통해 마주한 노라노(Nora Noh) 선생님의 100세 기념식은 변화의 해일 앞에 서 있는 우리에게 죽비 소리 같은 각성을 주었다. 1950년대,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기성복의 길을 개척했던 그녀가 1세기라는 시간을 건너 전한 메시지는 명확하다. "나는 옷을 하면서 우리나라 여성들이 깨어나길 바랐어요."

 

이 한마디는 AI가 불러오고 있는 요동치는 변화의 물결 앞에서 우리가 되찾아야 할 패션의 본질이 무엇인지 정확히 꿰뚫는다.

 

지금 패션 현장은 기술 열병을 앓고 있다. 급변하는 AI 기술 앞에서 매 시즌 창작의 고통을 나누는 현장 종사자들은 직군을 막론하고 자신의 전문성이 휘발되는 듯한 상실감을 느낀다.

 

하지만 선생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달 정신'이라고 말한다. 그녀가 말하는 건달 정신이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자유로운 기개다. 70년 전, '장인의 맞춤복'이 전부였던 시대에 '기계로 찍어내는 기성복'을 도입했을 때도 그녀는 주저하지 않았다. 기술은 그저 도구일 뿐, 그것을 부려 시대를 깨우는 것은 결국 인간의 의지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역시 AI의 속도를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화려한 도구를 부려 어떤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주인 의식'이다.

 

노라노 선생님은 스스로를 가리켜 "샤넬보다 나은 점은 더 오랜 세월 현역으로 있다는 것"이라며 웃음 짓는다. 전설적인 코코 샤넬조차 80대에 멈췄던 그 길을, 선생님은 지금까지도 '현역'의 눈빛으로 걷고 있다.

 

필자는 이 '현역 정신'의 비결을 '인간 중심의 데이터 해석력'에서 찾는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기억하지만, 그 데이터가 향해야 할 '사람의 마음'은 읽어내지 못한다. 선생님이 전통적인 한복을 양단 아리랑 드레스로 변화시켰을 때, 그것은 단순한 디자인의 변주가 아니라 '여성도 자유롭게 활동해야 한다'는 인문학적 맥락의 승리였다. AI라는 알고리즘이 아무리 정교한 도식화를 쏟아내도, 그 옷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어떤 자부심을 줄 수 있을지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현장의 온기를 아는 우리의 몫이다.

 

우리가 지금 느끼는 상실감의 정체는 기술에 밀려나는 두려움이 아니라, '제조'라는 익숙한 문법에서 '의미 부여'라는 낯선 문법으로 이행하며 겪는 존재론적 성장통이다. 70년 전 그녀가 기성복이라는 시스템으로 한국 여성들의 자아를 깨웠듯, 이제 우리는 AI라는 차가운 기술의 시선에서 패션의 서사를 다시 인간의 영역으로 되찾아 와야 한다.

 

백전노장 노라노 선생님이 보여준 '건달 정신'은 우리에게 엄중히 꾸짖는다. 도구에 매몰되어 스스로를 부품화하지 말라고, 기술이 화려해질수록 그 끝은 반드시 '인간의 해방'을 향해야 한다고 말이다. 샤넬보다 더 오랜 세월 현역으로 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어떠한 신기술도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생의 맥락(Context of Life)'을 옷이라는 언어로 끊임없이 직조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100세의 청년 노라노가 여전히 현역의 눈빛으로 시대를 응시하고 있듯, 우리 역시 기술의 심연에 함몰되지 않는 '깨어 있는 주인'이 되어야 한다. 데이터는 어제를 기록하고 AI는 오늘을 복제하지만, 내일의 아름다움에 숨결을 불어넣는 것은 오직 인간의 뜨거운 의지뿐이다.

 

거장(巨匠)이 걸어온 그 당당한 발자국 위에서, 이제 우리는 AI라는 거대한 백지 위에 '인간만이 쓸 수 있는 단 하나의 문장'을 적어 내려갈 준비를 마쳐야 한다.

 

유미애 세원아토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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