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애의 '관찰자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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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챗GPT |
이른 더위가 기승을 부린 주말, 지인의 리빙 브랜드 런칭에 맞춰 성수동 매장을 다녀왔다. 오랜만에 마주한 활기찬 거리 풍경이었지만, 그 화려함의 이면을 들여다보며 마음 한구석에 무거운 질문이 남았다. 과거 붉은 벽돌 사이로 아방가르드한 신진 디자이너들의 쇼룸이 보석처럼 박혀 있던 골목들이, 이제는 거대 패션 플랫폼의 플래그십 스토어와 대형 팝업스토어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디자이너 브랜드들의 독립적 영토이자 트렌드 인큐베이터였던 성수동이 온라인 유통 권력을 쥔 거대 플랫폼들의 오프라인 전초기지로 급격히 재편되는 모습에서 묘한 이질감이 든다. 이는 단순한 상권의 변화가 아니라, 플랫폼 자본주의가 물리적 공간마저 규격화하는 서막이다.
플랫폼 비즈니스의 핵심은 효율성이다. 온라인 플랫폼은 철저히 클릭 수와 구매 전환율이라는 데이터 알고리즘에 의해 움직인다. 문제는 이 효율성의 문법이 성수동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그대로 이식되면서, 패션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다양성'이 급격히 메말라가고 있다는 점이다.
온라인 플랫폼에 최적화된 알고리즘은 대중적인 취향과 이미 검증된 상업적 히트작만을 상단에 노출시킨다. 플랫폼이 장악한 성수동의 거리 역시 이 알고리즘의 오프라인 복사판이 되어가고 있다. 치솟는 팝업 임대료와 운영비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대형 플랫폼의 자본적 지원을 받거나, 가시적인 매출 데이터를 증명해 낸 소수의 스타 브랜드뿐이다. 결과적으로 골목마다 고유한 색채를 뽐내던 인디 브랜드들은 변두리로 밀려나고, 어디를 가나 대동소이한 브랜드와 굿즈 위주의 팝업으로 획일화되는 '큐레이션 필터 버블(Filter Bubble)'에 갇히게 되었다.
이러한 독점 구조가 고착화될 때 발생하는 가장 큰 비극은 데이터와 유통 권력의 심각한 비대칭성이다. 플랫폼이 오프라인 공간을 독점하면, 매장을 방문한 수많은 고객의 행동 패턴과 체류 시간 등 고부가가치 오프라인 데이터는 모두 플랫폼의 백엔드(Back-end) 시스템으로 흡수된다. 개별 브랜드는 공간을 채우는 매력적인 콘텐츠를 제공하고도, 플랫폼 생태계를 유지해 주는 일종의 하위 '콘텐츠 공급자(CP)' 역할에 머물게 된다.
롱테일(Long-tail) 법칙이 작동하며 다양한 틈새 브랜드가 공존해야 할 패션 생태계가, 플랫폼이라는 거대 아키텍처 안에서 철저한 승자독식(Winner-Take-All) 구조로 재편되는 것이다. 신진 디자이너들이 실험적인 시도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진 생태계에는 결국 지속 가능한 미래가 있을 수 없다.
성수동의 진정한 매력은 규격화된 플랫폼의 UI가 아니라, 골목마다 숨겨진 날 것 그대로의 아날로그 서사와 다양성에 있다.
우리는 이미 신사동 가로수길이나 이태원 경리단길 등 수많은 '무슨 무슨 길'들의 탄생과 몰락을 목격했다. 고유한 문화적 생태계가 거대 자본의 공습으로 획일화되는 순간 대중은 미련 없이 떠났고, 정체성이 사라진 공간의 유효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플랫폼의 표준화된 그리드(Grid)가 골목의 고유한 생태계를 지워버릴 때 브랜드의 수명은 단축되고, 패션 산업의 다양성은 고사하고 만다.
거대 플랫폼의 공습 속에서 K-패션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힘은 플랫폼의 시스템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도구로 부릴 줄 아는 브랜드 고유의 자생력에 있다.
이제 브랜드들은 거대 플랫폼의 영토가 된 공간에서 살아남기 위해, 유통을 넘어선 자신만의 '독립된 데이터 스펙'을 쌓아야 한다. 거대 유통망에 의존하지 않고도 코어 팬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디지털 D2C(Direct to Consumer)' 시스템을 강화해야 할 때다.
거리가 플랫폼의 화면처럼 규격화되는 순간 소비자는 떠난다는 엄중한 경고를, 이미 사라진 수많은 '길'들이 소리 높여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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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미애 세원아토스 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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