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광] 전쟁은 물류를 흔들고, 물류는 사업을 흔든다

발행 2026년 03월 29일

어패럴뉴스 , appnews@apparelnews.co.kr

이재광의 '인생이 패션'

 

이미지=챗GPT

 

전쟁은 언제나 전선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최근 이란 전쟁으로 인해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며 전 세계 해양 운송에 차질이 발생했고, 해운업과 무관해 보이는 산업까지도 유가 상승과 비용 압박의 충격을 받기 시작했다. 컨테이너의 흐름이 막히면 결국 재고와 판매, 현금흐름까지 이어진다. ‘물류’는 일부 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 전체의 혈관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전쟁 때마다 다시 배우게 된다.

 

무엇보다 불안한 점은 이 일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는 데 있다. 빨리 끝날 것 같았던 우크라이나 전쟁이 여전히 진행 중인 것만 봐도, 이란을 둘러싼 전쟁 역시 단기간에 정리될 것이라 낙관하기 어렵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전쟁은 늘 '예상보다 길게' 간다. 그리고 길어진 전쟁은 우리 같은 실무자들에게 '리스크'가 아니라 '일상'이 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막 발발하던 시절, 필자는 LF에서 '바버'를 포함한 글로벌 브랜드 담당 책임자로 일하고 있었다. 매월 회장단 및 사장 월례 보고에 들어가면, 마치 말버릇처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항로 변경, 선적 지연, 입고 차질을 보고할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문장은 늘 비슷했다. "선적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항로가 변경됐습니다. 리드타임이 늘어났습니다." 당시에는 '전쟁이니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 속에서 견딜 수 있었다. 조직도 크고, 버퍼도 있었고, 여러 부서가 함께 막아낼 여력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필자가 운영하는 프랑스 프리미엄 패딩 브랜드 '피레넥스'는 2024년 대비 2025년에 매출이 3배 성장했고, 2026년에는 2025년 대비 다시 3배 성장을 바라보고 있는 시점이다. 당연히 상품 매입 규모도 3배 이상 커졌다. 성장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사업의 스케일뿐 아니라 리스크의 스케일도 함께 커진다. 그 와중에 이란 전쟁이 터져버렸다. 예측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어느 날 갑자기 비용과 일정, 그리고 현금흐름을 흔들기 시작한다.

 

특히 수입 비즈니스에서 가장 무서운 변수 중 하나는 '환율'이다. 물류가 막히고 유가가 오르면, 환율은 더 민감하게 출렁인다. 유가 상승의 파장은 해상운송비에만 머물지 않는다. 물류비가 오르면 원가 구조가 흔들리고, 그 흔들림은 결국 판매가, 마진, 프로모션으로 전이된다. 특히 패션은 시즌 캘린더가 촘촘한 산업이라, 한 번의 지연과 비용 상승이 '이번 시즌 마진'에서 끝나지 않고, 다음 시즌의 바잉과 현금흐름까지 영향을 미친다. 소비자 역시 생활비 압박을 체감하는 순간, 장바구니의 기준이 바뀐다. 같은 가격이라도 '지금 꼭 필요한가'를 더 자주 묻게 되고, 반대로 정말 필요하다고 판단한 아이템에는 더 신중하게, 때로는 더 과감하게 지갑을 열기도 한다.

 

이때 브랜드와 유통은 할인율을 올리는 방식만으로는 답을 찾기 어렵다. 비용이 오르는 국면에서 무리한 프로모션은 단기 매출을 만들 수는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마진과 브랜드 신뢰를 동시에 깎아 먹을 수 있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순히 ‘더 싸게 파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조정할지를 더 정교하게 선택하는 일이다.

 

요즘 필자는 주거래은행 지점장, 실무 담당자와 하루가 멀다고 통화를 하며 최적의 환전 시점과 규모를 논의하고 있다.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규모가 커진 만큼 환위험에 더 크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예전에는 1~2% 변동이 '뉴스' 정도였다면, 지금은 1~2%가 장부에서 꽤 큰 숫자로 바뀐다. 성장의 대가가 '노출'이라는 형태로 되돌아오는 순간이다.

 

물론 대비책은 있다. 가능한 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놓고 준비 중이다. 운송 스케줄을 분산하고, 대금 지급 타이밍을 조정하고, 환전도 나눠서 접근하는 식이다. 다만 이 모든 준비는 결국 '확률을 낮추는 노력'이지 '리스크를 없애는 마법'은 아니다. 대기업이라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기조로 버텨볼 수 있다. 규모의 자금력과 조직의 완충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 같은 작은 기업은 매해가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 리스크를 버티는 힘 자체가 곧 경쟁력이 된다.

 

이럴 때일수록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나누어 생각하게 된다.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촘촘히 준비하고, 할 수 없는 것은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요즘 문득 떠오르는 말이 있다. 흔히 중국 역사 소설 삼국지연의의 등장인물 제갈량의 말로 전해지는 문장이다.

 

"모사재인(謀事在人) 성사재천(成事在天)." 일을 도모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렸지만, 성패는 하늘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무력감에 기대자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계획, 대비, 실행)을 끝까지 하고 나서도, 세상에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태도다. 이 태도가 없으면, 전쟁과 환율과 물류 앞에서 사업은 쉽게 무너진다. 그리고 이런 시기에는, 같은 업을 하는 분들의 얼굴이 자주 떠오른다. 수입 사업을 하시는 모든 분들의 건승을 빈다. 우리 모두는 지금, 마음의 항로까지 흔들리는 시대를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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