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광의 '인생이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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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카페 '아프니까 사장이다' 캡처 |
최근 JTBC의 기업회생 신청 소식과 축구협회를 둘러싼 여러 이슈를 보며, 조직의 가장 위에서 내려지는 의사결정이 얼마나 큰 파급효과를 만드는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하나의 결정은 때로는 재무제표를 흔들고, 산업 생태계를 흔들며, 국민적 관심과 애정마저 차갑게 식게 만든다. 결국 톱 매니지먼트의 판단은 단순히 회사 안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그 결정의 여파는 임직원, 협력사, 소비자, 팬, 나아가 사회 전체로 번져나간다.
필자는 20년 가까이 대기업에서 일하며, 직급이 올라갈수록 의사결정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차근차근 배울 기회가 있었다. 첫 회사와 세 번째 회사는 매우 체계적인 보고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의사결정을 위해 세부적인 보고자료를 만들고, 여러 차례 수정하고, 숫자와 근거를 촘촘히 준비해야 했다. 실무자였던 입장에서는 자료를 만들고 고치는 데 상당한 시간을 쓸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과정이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수집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리스크를 점검하고, 논리를 정리하는 훈련은 분명 유의미했다. 조직이 큰 만큼 실수의 비용도 크기 때문에, 충분한 검토와 보고 체계는 필요하다. 다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런 생각도 들었다. 과연 그 정도로 많은 정보가 실제 의사결정에 모두 필요했을까. 혹시 우리는 결정을 위해 자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료를 만들기 위해 결정을 미루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두 번째와 네 번째 회사는 분위기가 달랐다. 보고자료는 최소화되어도 괜찮았고, 의사결정은 훨씬 빠르게 이루어졌다. 특히 마지막 회사에서는 자료가 많아야 두 장 정도였고, 때로는 구두 보고만으로도 중요한 결정이 내려지곤 했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방식에도 분명한 장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고서의 완성도보다 중요한 것은 의사결정권자가 이미 충분한 맥락을 이해하고 있느냐였다. 리더가 시장과 숫자, 현장의 감각을 몸으로 알고 있다면, 긴 자료 없이도 빠르고 정확한 판단이 가능했다.
지금 독립해 사업을 하면서 새삼 느끼는 점은, 모든 의사결정이 옳을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사업은 언제나 불확실한 미래를 전제로 판단하는 일이다. 오늘 가장 합리적으로 보였던 선택이 내일은 틀린 결정이 될 수도 있고, 충분히 고민한 전략이 예상치 못한 변수 앞에서 무너질 수도 있다. 결국 의사결정이란 정답을 고르는 일이 아니라, 불확실성 속에서 감당 가능한 방향을 선택하는 일에 가깝다.
그래서 더 중요한 것은 '완벽한 결정'이 아니라 '최대한 합리적인 결정'이다.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모으되, 정보의 양에 매몰되지 않아야 한다. 다양한 의견을 듣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결정을 미뤄서는 안 된다. 빠르게 결정하되, 단순한 직감이나 권위에 기대서도 안 된다. 좋은 의사결정은 자료와 경험, 숫자와 감각, 속도와 숙고 사이의 균형에서 만들어진다.
톱 매니지먼트의 어려움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의사결정권자는 언제나 마지막 판단을 해야 한다. 충분히 듣고, 충분히 고민하되, 결국 결론은 자신이 내려야 한다. 조직의 크기가 커질수록 그 결정의 영향도 커진다. 회사의 방향, 직원들의 생계, 협력사의 계획, 고객의 신뢰가 그 판단 위에 얹힌다. 그래서 톱 매니지먼트는 단순히 권한을 가진 자리가 아니라, 더 큰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자리다. 의사결정이 잘못되었을 때 그 피해는 결코 의사결정권자 한 사람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조직 안팎의 많은 사람들이 그 결과를 함께 감당하게 된다. 그렇기에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더 신중해야 하고, 더 겸손해야 하며, 자신의 판단이 만들어 낼 파장을 끝까지 상상하려는 책임감이 필요하다. 그래서 의사결정권자의 컨디션은 단순한 개인 문제가 아니다. 체력, 집중력, 감정의 안정성까지 모두 판단이 품질에 영향을 미친다.
'아프니까 사장이다'라는 이름의 카페가 있다고 들었다. 이름만 들어도 웃음이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사업을 한다는 것은 결국 매일 판단하고, 매일 감당하고, 매일 책임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기업 안에서는 시스템이 나를 보호해 주었지만, 사업을 시작하고 나니 모든 결정의 끝이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매일 느낀다.
미국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이렇게 말했다. "성공한 비즈니스를 볼 때마다, 그 뒤에는 누군가의 용기 있는 의사결정이 있었다(Whenever you see a successful business, someone once made a courageous decision)."
리더의 일은 정답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도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리는 일이다. 그 선택이 늘 맞을 수는 없다. 때로는 후회가 남고, 때로는 예상과 다른 결과를 마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충분히 보고, 깊이 생각하고, 가능한 한 건강하고 안정된 상태에서 결정을 내리려는 태도는 끝까지 지켜야 한다. 필자를 비롯해 오늘도 수많은 결정을 내려야 하는 모든 사업자들의 건승을 빈다. 의사결정의 무게는 무겁지만, 그 무게를 감당하는 사람들이 결국 조직과 시장을 앞으로 움직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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