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근의 디지로그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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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회 MDF 패션 디자인 공모전 최종 심사 테스트 현장 /사진=엠디재단 |
얼마 전 MDF 패션디자인 공모전 최종 심사 현장을 찾았다. 현장에서 나는 K패션의 디자인과 완성도가 빠르게 성장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부 브랜드는 이미 파리와 밀라노 쇼룸과 패션위크, 글로벌 편집숍과 온라인 플랫폼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고 있었고, 디자인 감각뿐 아니라 패턴, 봉제, 소재 활용, 디테일과 스타일링의 수준도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만큼 높아졌다. 마케팅과 브랜딩 실행력 역시 이전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세련되고 수준이 높아지고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하나의 물음표가 남았다.
'이 브랜드는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가?'
뛰어난 디자인이 곧바로 뛰어난 브랜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패션은 한 번의 작품으로 끝나는 ‘창작’이 아니라 하나의 관점이 제품과 이미지, 공간과 고객 경험을 통해 반복되고 축적되는 '비즈니스'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브랜드들과 경쟁할 때 K브랜드가 마지막 순간에 넘지 못하는 9부 능선이 있다면, 그것은 디자인 테크닉이 아니라 '브랜드의 세계관'일 수 있다. 브랜드 세계관은 흔히 말하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보다 넓고 근본적인 개념이다. 아이덴티티가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이라면, 세계관은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답한다.
인간과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아름다움과 불완전함, 젊음과 나이 듦, 몸과 옷의 관계를 어떻게 해석하는가. 무엇을 아름답다고 여기고 무엇에 불편함을 느끼는가. 지금의 시대에서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꾸려 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일관된 관점이 디자인 원칙이 되고, 소재 선택과 실루엣, 캠페인 이미지, 매장 공간, 고객을 대하는 태도까지 이어질 때 비로소 하나의 브랜드 세계가 만들어진다.
세계관은 멋진 브랜드 소개문이나 시즌 콘셉트 한 줄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브랜드가 반복해서 제기해 온 문제, 포기하지 않는 제작 원칙, 고객이 실제로 경험하는 장면과 시간이 쌓여 형성된다. 오리지널리티 역시 어느 날 발견하거나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축적되는 것이다. 원조란 단순히 아무도 하지 않은 것을 처음 선보이는 브랜드가 아니다. 수많은 모방과 변주가 등장해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그 출처를 떠올리는 브랜드다.
생성형AI는 디자인 리서치, 이미지 생성, 컬러와 스타일 변주, 트렌드 분석, 콘텐츠 제작과 고객 개인화에 이르기까지 패션 비즈니스의 거의 모든 영역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많은 시간과 비용, 숙련된 기술이 필요했던 작업도 이제 누구나 일정 수준 이상으로 수행할 수 있다. AI는 지식과 기술의 평균을 빠르게 끌어올린다. 그러나 평균적인 완성도가 높아진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평균적인 미감과 표현 역시 널리 확산된다는 의미다. 누구나 그럴듯한 이미지와 세련된 문장, 완성도 높은 콘셉트를 만들 수 있게 되면 시장에는 더 많은 콘텐츠가 쏟아지지만 브랜드들은 오히려 서로 비슷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콘텐츠 생산비용이 낮아질수록 희소해지는 것은 '만드는 능력'이 아니다. 무엇을 만들 것인지, 왜 만들어야 하는지, 그리고 왜 반드시 이 브랜드여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관점이다.
AI도 브랜드 스토리를 만들고 특정 스타일을 조합하며 그럴듯한 세계관을 문장과 이미지로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AI가 만들어낸 세계관은 기본적으로 이미 존재하는 수많은 데이터와 표현을 확률적으로 재구성한 결과다. 반면 강력한 브랜드 세계관은 한 인간이 살아온 시간과 경험, 결핍과 욕망, 불편함과 질문에서 출발한다. 때로는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취향과 집착, 모순과 상처까지 그 안에 들어간다. 패션은 바로 그러한 비이성적인 감정과 감각을 사회가 공감할 수 있는 형태로 전환하는 산업이다.
AI가 세계관의 표현을 도울 수는 있다. 그러나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에 분노할 것인지, 무엇을 위해 불편과 손해를 감수할 것인지까지 대신 결정해 주기는 어렵다. 최소한 지금의 AI는 세계관의 창조자라기보다 인간이 만든 원본을 탐색하고 변주하며 확장하는 도구에 가깝다. 따라서 AI에게 빈 화면에서 브랜드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해서는 안 된다. 먼저 인간이 브랜드의 원본을 만들고, AI가 그 원본을 더 빠르고 넓게 변주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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