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낙삼의 '포스트 리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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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과 사는 남자' 영화 포스터 |
'왕과 사는 남자(이하 왕사남)'는 넷플릭스가 완연한 시대에 2024년 이후 1,500만이라는 관객을 모으며, 아무리 넷플릭스가 모든 영화를 삼킨다고 해도 소재와 구성, 전개와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면 관객들은 영화관을 찾는다는 교훈을 남겼다. 그리고 나머지 것들에서는 아쉬움을 남겼다.
영화 산업에서 진짜 승부는 영화의 '흥행'이 아니라 '확장'이어야 한다. 1,500만 관객을 동원한 왕의 남자는 분명 한국 영화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또 하나의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왜 이 압도적인 콘텐츠의 흥행은 다양한 분야로의 산업적 매출 확장으로 이어지지 못했는가"라는 것이다.
같은 질문에 대해 1995년 첫 시리즈가 개봉된 토이스토리(Toy Story, 1995)는 정반대의 답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영화와 상품, 유통을 하나로 묶었다. 영화가 개봉되기도 전에 이미 IP(Intellectual property)기반의 상품(Merchandise)들과 유통이 기획, 제작되어 있었고, 관객의 감정이 최고조에 달하는 순간 곧바로 소비로 이어지도록 설계됐다. 영화 제작 단계에서부터 캐릭터 상품과 대표씬이 기획되었고, 글로벌 유통망에는 개봉 전에 상품들이 공급되었으며, 개봉과 동시에 매장에서는 구매가 가능하게 했다. 81분간 상영된 애니메이션은 관람자들의 감정을 만들고 일으키는데 충실했고, 상품들은 그 감정을 돈을 지불하고 회수하는 장치로 구조화한 것이다. 영화가 결과물이 아니라, 거대한 IP 비즈니스의 출발점이 됐다.
이전의 미국 영화, 특히 애니메이션 분야에서도 이런 사례는 찾기 힘들었다. 늘 애니메이션이 먼저 소개되고 그에 대한 반응이 높아지면 적당한 시점에 IP를 활용해 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굿즈를 만드는 구조였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이 구조에 괴리감을 지적하며 무형의 이야기를 유형의 물건으로 남기는 구조, 장난감과 게임, 의류와 인형들에 이러 후속작까지 만들어내는 반복 소비구조를 만들었다. 이미 30년 전의 일이다.
'왕사남'은 관람객들에게 풍부한 감정은 남겼지만, 그 감정을 소비할 수 있는 형태로 전환시키지 못했다. 강력한 서사와 인상적인 캐릭터, 그리고 주목을 끄는 식품은 물론 스타일적인 요소까지 갖추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상품으로 번역하는 과정이 부재하다. 개봉 시점에 맞춰 준비된 상품이 없다. 변변한 굿즈를 찾기가 쉽지 않다. 캐릭터는 이야기 속에 머물렀고, 미장센은 화면 안에서만 소비됐다. 1,400만의 관객은 감동을 안고 극장을 나왔지만, 그 감정을 이어갈 소비의 접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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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과 사는 남자 /사진=쇼박스 |
이번 실기(失機)를 '옛날에도 그랬다', 또는 '아깝다'는 말로, '아쉽다'는 말로만 넘기는 것은 그만두어야 한다. 같은 구조가 너무 오랫동안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K-패션을 포함한 K-컬쳐가 개별 산업에서 콘텐츠와의 연결을 점점 중요하게 생각하고 의도하는 상황에서조차 이런 기회를 놓쳤다는 것은 뼈아픈 일이다,
대안은 분명하다. 첫째, 스토리 단계에서부터 '상품 카테고리'를 동시에 설계해야 한다. 등장인물의 스타일, 색감, 소재, 상징 요소를 미리 분해하고 이를 디자인적인 요소로 활용할 수 있게 발전시켜 놓아야 한다. 의류, 액세서리, 라이프스타일 제품으로 확장 가능한 구조로 설계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협업이 아니라 공동 기획에 가깝다. 처음이 어렵다면 손익분기점(Break-Even Point)을 기준으로 이를 넘기는 순간 바로 작동될 수 있도록 메뉴얼화 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타이밍을 재설정해야 한다. 상품은 영화 이후가 아니라 이전에, 최소한 함께 준비되어야 한다. 개봉 시점, 즉 관객의 감정이 최고조에 달하는 순간 바로 구매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 이 ‘동시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어떤 IP도 매출로 연결되기 어렵다.
셋째, 협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단일 브랜드가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접근은 한계가 있다. 디자이너 브랜드, 편집숍, 온라인 플랫폼, 글로벌 유통사와의 다층적 협업을 통해 하나의 콘텐츠가 하나의 시장을 형성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는 K-패션이 글로벌로 확장되는 데에도 필수적인 구조다.
넷째, 반드시 '상징 상품'을 만들어 소비자들이 집중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소비자는 모든 것을 구매하지 않는다. 대신 하나의 강력한 아이템을 통해 IP에 진입한다. 이 진입 상품이 존재할 때, 이후의 고가 제품과 다양한 카테고리로 확장이 가능해진다.
우리는 콘텐츠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여전히 콘텐츠를 결과물로만 보고 있는가, 아니면 출발점으로 보고 있는가. K-패션은 단순한 디자인 경쟁이 아니라 스토리와 상품, 유통을 동시에 설계하는 산업으로 이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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